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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l 12. 2022

무엇인지 무엇이었는지 무엇일 수 있는지

최유수/사랑의 목격


최유수 작가의 <사랑의 목격> 책은 얇지만 사랑과 관련된 주옥같은 글들이 쓰여 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솔직히 모르겠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 세월이 나에게 다 가르쳐주지 못한 것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이미 여러 번 일러주었지만 내가 우매해서 깨닫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고. 책의 첫 문장이 이렇게 시작된다.


"믿음은 존재를 증거한다. 신을 믿는 사람이 신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랑을 믿는 사람이 사랑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고로 나는 사랑을 말하기 위해 사랑의 존재를 믿는다. 증명하기 위해 믿는 것이 아니라 체감하기 위해 믿는다.


평생을 다 써도 내가 사랑의 존재를 증명해 내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굳이 증명하려고 하고 싶지도 않다. 사랑에 대해 써야 한다면, 증명을 목적으로 쓰고 싶지 않은 것이다. 다만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이 신을 믿어 온 것처럼 무구한 자세로 사랑을 믿을 것이다."




결국 믿음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신이나 사랑이나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대상이나 관념에 실체를 부여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필요한 것 역시 믿음이다.


나에게 그런 믿음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었는지 생각해 봤다.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사랑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면 나도 예외는 아니었으니까.


믿음이 전제되지 않은 사랑은 제대로 된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뜨거웠던 초기의 애정이 식으면 그 사랑을 지탱하는 힘은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나온다. 오래된 연인이나 부부들이 어느 순간 서로에게 심드렁해지지만 그래도 여전히 함께 하는 이유는 세월과 함께 쌓인 정,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다 읽지 못하고 책장을 덮었다. 무거워진 마음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지난 삶이 부끄러웠다. 돌아가서 다시 시작할 수도 없고. 스스로를 책망하는 시간만 길어져 간다. 최근 나는 삶의 ‘의미’와 그리고 지난 세월과 충돌하고 있다. 그래봤자 언제나 패자는 나지만. 그의 다른 책 <무엇인지 무엇이었는지 무엇일 수 있는지>에 나오는 이 글처럼.


"잠 못 이루는 상념들이 밤의 외곽으로 모여든다. 그곳은 개별적으로 소란스럽다. 희망을 주절거리는 이들과 절망 속의 쾌감에 중독된 이들이 눈빛을 교환한다. 한결같이 진지한 태도는 이제 쉽게 외면당한다. 누구나 사랑에 관한 글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아무도 자신의 사랑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근래에 나는 의미와의 싸움에서 계속 진다. 왜 우리는 타협적일 수밖에 없는가. 왜 마지막은 죽음이어야 하는가. 무엇인지, 무엇이었는지, 무엇일 수 있는지. 나는, 너는, 그리고 우리는."


맞다. 우리는 사랑에 대해 남의 이야기는 들으려고 하지만 정작 자신의 이야기는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부끄럽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시 회고하기 객쩍어서 그런지도 모르고.


그렇더라도 나만이 볼 수 있는 곳에라도 써봐야 한다. 쓰다 보면 지금보다 조금은 정직해질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쓰고 있는 사람은 분명히 알고 있다. 읽을 때보다 쓸 때 우리가 사랑에 더욱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을.”


오늘도 나는 여기에 쓸 수 없었던 내 이야기들을 마음 한구석에 썼다. 곧 지울지 모르지만, 무거워진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길 바라며.




"타인의 생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으므로 우리는 모든 관계 속에서 오해를 경험한다. 상처를 입거나 단념하게 되고, 때로는 스스로 고독을 선택한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는 바로 그것을 극복하려는 태도일 것이다."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어떤 일이든 그 일에 대한 만족감의 최대치는 내가 정할 수 있는 것이므로 애초에 연연할 필요도 없었다. 만약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욕심이 과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누가 뭐하고 해도 나는 나의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라면 잠시 제자리를 걸어도 좋다."


“밤이 되면 하루의 여백을 버리지 않고 차곡차곡 모았다. 일주일의 끝에는 너를 만나는 하루가 기다리고 있었다. 겨울의 여백이 봄으로 서서히 칠해지듯 그 하루 동안 나의 여백은 너로 칠해질 것이었다.”



<최유수 _ 무엇인지 무엇이었는지 무엇일 수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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