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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Nov 13. 2022

여전히 중요한 존재라는 생각에 빠져

존 윌리엄스 / 스토너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의 주인공인 윌리엄 스토너는 장차 장인이 될 사람인 호러스 보스트윅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다.


"자신이 아직 제대로 출세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많은 남자들이 그렇듯이, 그도 유난히 허영심이 강했으며 자신이 아주 중요한 존재라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젊은 시절 품었던 야망을 포기하지 못한 채 자신이 살았던 그 시대를 여전히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 그들이 꿈꿨던 출세였다. 이제는 더 이상 중요한 존재가 아님에도 여전히 나는 중요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 출세 또한 한 줌의 재에 불과한 것인데도. 


자신의 경험을 절대시하고, 내가 아는 게 전부라고 믿는, 권위도 없으면서 권위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을 소위 '꼰대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말은 듣지도 않고 자신의 경험과 알고 있는 것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믿음 속에서 살아간다. 그들의 경험 또한 시대를, 무엇보다 자신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 특히 자신이 경험했던 시절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들은 말한다. '나는 지난 시절 중요한 일을 해왔고, 지금도 그런데 왜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느냐고, 너희들은 틀렸다고. 그러니 너희들은 나한테 배워야 한다’고. 


듣는 사람들은 말한다. ‘당신은 더 이상 중요한 인물이 아니라고, 우리 조직이나 더 나아가 이 시대를 이끌어갈 사람은 더더욱 아니라고. 당신이 말하는 경험담은 한물간 아무 쓸모도 없는 무용담에 불과할 뿐이라고.’ 


그래서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겸손하고 자기보다 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출세를 해야 한다고. 그런 성품과 자질이 없다면 섣불리 중요한 자리에 올라가선 안된다고. 내 경험과 앎을 남에게 강요해선 안된다고. 나이가 든다는 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스스로를 내려놓는 것이라고.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개 출세한 사람들 중에는 남보다 권모술수에 능하고, 자신을 실력 이상으로 포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득세하는 건 당연하다. 반면 실력은 있지만 천성적으로 그게 잘 안 되는 사람들도 있다. 조용하게 묵묵히 자신이 맡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출세 또한 그들이 쉽게 차지할 몫이 아니다.

나이가 들면 어떻게 사는 게 바람직한 삶일까.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삶의 흐름에 자신을 조용히 맡기는 것, 나보다 다른 사람들이 더 나을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 남은 인생을 그나마 지혜롭게 사는 비결이 아닐까. 패배주의 아니냐고?


자신이 처한 현실을 알고 이를 받아들이는 것과 어떤 일을 하기도 전에 뭘 해도 난 실패할 거라는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는 패배주의는 다른 것이다. 패배주의에 빠져서는 곤란하지만, 삶의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는 것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배워야 할 삶의 지혜라고 생각한다.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삶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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