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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Nov 29. 2022

지나간 시간을 다시 불러낸들

줄리언 반스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지나고 나면 모든 순간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좋았던 순간은 물론 나빴던 순간까지도. 기억의 편집과 왜곡, 그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힘든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서 주어진 상황을 나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도 때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자기 최면이다. 그마저도 없다면 이 현실을 살아내기가 어려울 것 같다. 


문제는 회상에 그치지 않고 이미 지나간 시간들을 지금으로 불러내 다시 사는 것이다. 그런다고 무엇도 바꿀 수 없다. 아니, 한 번 지나가면 결코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에 그때를 더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돌아갈 수 있어도 그때와 비슷한 결정을 했을 거면서, 그때는 내가 딱 그 수준이었으니까. 


하여 지나간 순간은 지나간 그대로 두어야 한다. 지금으로 불러내 봤자 달라질 것도 없고 오히려 회한만 쌓이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2011년 맨부커상 수상 작가인 영국 출신 작가 줄리언 반스(Julian Barnes)는 그의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이것이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의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미래를 꾸며내고, 나이가 들면 과거를 꾸며낸다."

누구나 조금씩은 과거를 또는 미래를 자신의 시선과 잣대로 분식한다. 젊은 시절에는 살았던 날이 얼마 되지 않고 다가올 날들이 길어 미래에 대한 꿈을 꾸기 마련이다. 이상을 지향하고 조금만 노력하면 비루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무모한 희망에 불과했는지를 깨닫게 되겠지만. 그렇다고 꿈을 버릴 수 없다. 


나이가 들어서는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길어지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더 이상 젊지 않고 신체 활력도 떨어지는 시기, 미래를 계획하기에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뭘 도모하기가 쉽지 않다. 당연히 자신이 살아온 시간들을 돌아보는 시간이 늘어난다. 


그때 참 좋았지! 하면서 지금보다 별로 낫지도 않았던 과거를 좋게 생각한다. '나 때는 말이야~~' 소위 젊은 세대에서 기성세대를 칭하는 꼰대 문화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들에게는 지금이 불만스럽기만 하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모든 것이 못마땅하기만 하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후 척박한 광야에서 자유인으로 사는 것보다 이집트 노예 생활이 좋았다고 불평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렇게 젊은 사람들은 다가올 미래를 꾸며내고, 나이 든 사람들은 지나간 시간을 나름의 방식으로 꾸며내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삶을 잘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솔직히 직시하고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언제나 지금 이 순간만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모두 내 마음과 의지대로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시간들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직 지금 이 순간뿐이다. 살아온 시간이나 살아가야 할 날들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것만이 내 삶에 덜 실망하는 방법이다. 그 유일한 방법은 현재를 충실히 살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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