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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Nov 25. 2022

사람이 꽃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데

이사라 / 사람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꽃이 꽃을 사랑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사랑스럽게 다가가는 동안

꽃은 그 자리에서 서로 눈빛으로 사랑한다


그렇게 서로에게

어떤 순간에도 그렇게

자기들 사랑의 방법이 있다


그러니

내가 너에게

다가갈 수 있어서

만질 수 있어서 쓰다듬을 수 있어서

그렇게 살아갈 수 있어서


사람은 그냥 갈 수 있어서


남몰래 혼자 떠나려고 하는 세상에

네가 있지 않아서

사람이 꽃이 아니길

참 다행이다


<이사라 _ 사람>  

이사라 시인의 시집 <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에 수록된 '사람', 이 시가 가슴에 와닿았던 이유는 무생물인 꽃과 달리 서로에게 다가가는 것으로 사랑을 시작하는 우리가, 그에게 더 이상 다가갈 수 없어서 그를 만지거나 쓰다듬을 수 없어서, 꽃과 같이 자신이 있던 그 자리에서 눈빛으로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었다. 


꽃은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랑을 할 수 있겠지만 육체를 가진 우리는 그럴 수 없다. 그럼에도 꽃과 같은 방법으로 사랑해야 한다면 그 마음이 어떨지, 안타까움을 넘어서 괴롭지 않을까. 그냥 시간이 우리를 무디게 하려니 하고 넘기면 좋으련만. 하물며 꽃도 벌이나 바람의 도움으로 사랑을 전하지 않는가.


세월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우리를 끊임없이 속박하는 굴레들, 속절없이 흘러간 시간. 2022년도 이제 한 달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이게 뭔가 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남은 기간 딱히 달라질 것도 없을 것 같다. 달리 내가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여 시인은 사람이 꽃이 아니길 다행이라고 하지만, 나는 차라리 사람이 아닌 꽃이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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