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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an 18. 2023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

넷플릭스 드라마

얼마 전부터 평소 안 보던 우리 드라마(대표적으로 '나의 해방일지', '재벌집 막내아들', '빈센조')를 자주 봤다. 드라마를 보면서 느낀 점이 한 둘이 아니지만 대표적으로 우리나라 드라마도 무척 재밌다는 것과 그럼에도 드라마를 오래 볼 건 아니다!!라는 거다. 그동안 드라마를 잘 안 본 건, 바쁘기도 했지만 한 번 보기 시작하면 계속 봐야 한다는 것이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2시간 남짓이면 다 보는데 드라마는 최소한 16부작은 되니 그걸 다 보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어쩌랴?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나 넷플릭스 시리즈물을 보지 않으면 대화에 낄 수 없으니, 세상을 등지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자의 반 타의 반 보게 되었던 것이 시작이었다. 


무엇보다 드라마를 보고 나면 잔상이 남아 자꾸 생각이 난다는 거다. 시리즈를 이어가려면 다음 회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게 만들어야 할 테고, 그러려면 내용이 자극적일 수밖에 없다(예컨대, 숭중기 주연의 '빈센조'도 사람을 죽이는 장면이 너무 많이 나와 나중에는 부담이 되었다). 당연히 현실감이 떨어지는데도 오히려 그 점 때문에 더 보게 된다. 오래 보면 현실과 괴리된 채 드라마 속에서 헤매게 될 것 같았다. 그런 점 때문에 이젠 그만 봐야지 하고 마음먹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이제는 AI까지 등장해서 어떻게 알았는지 SNS나 검색 화면에 드라마의 소위 '명장면'을 알아서 추천해 준다(요즘 송혜교 주연의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가 인기라고 하던데,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 너무 많이 등장한다. 보면 중간에 끊을 수 없다고 해서 아직 보지 않고 있다. '학폭' 등 잔인한 장면 등이 나오는 것도 걸리고). 호기심에 잠깐 보고 있으면 2-30분이 훌쩍 지나가는 건 일도 아니다. 


드라마나 영화에 몰입하다 보면 영화 속 세상이 현실인 양 착각하게 되는 것도 문제, 괴로운 일이 있으면 잠시 현실을 잊게 만든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지만 마치 드라마 속 이야기가 현실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좋다고 보기도 어렵다. 장장 몇 편에 달하는 시리즈물을 보느라 주말에 소위 '집콕'을 했다는 무용담?을 월요일에 종종 듣고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정도의 차이지 나도 다르지 않은 것을 보면서 씁쓸해지기도 했다. 


시간은 잘 가지만 시간의 밀도는 점점 떨어지고, 그렇게 보낸 시간은 인생에서 블랭크처럼 빈 공간으로 남고 만다. 가끔 '멍 때리기'를 하기 위해, 복잡한 생각을 지우기 위해 그런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자주 그러면 곤란하다.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본다고 그 경험이 내 경험으로 남지도 않는다. 기억할 추억은 없고, 배우가 주인공인 드라마나 영화만 기억난다면 그것도 좀 그렇다. 내 삶의 주인공은 여전히 나 자신인데 말이다.


가장 큰 문제는 드라마 속 이야기를 소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사라지고 만다는 것, 다소 지루하게 살아야 생각도 하고, 책도 읽고 뭔가 주체적인 경험을 쌓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게 안 되는 거다. 드라마를 보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자칫 그 과정에서 내가 소외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싶은 것일 뿐. 내가 주체인 삶을 살지 않으면 점점 바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세상이 문제가 아니라, 언제나 내가 문제였다.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

물론 그렇다고 내가 드라마에 완전히 몰입해서 하루 종일 드라마나 시리즈물을 본 건 아니다. 아프다는 핑계로 집에 있으면서 몇 편 본 거니까. 그것도 틈틈이 보는 정도였다. 다음에 어떻게 될지 궁금했지만 참았다. 안 그러면 밤새도록 봐야 할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이제는 섣불리 시작하지 않으려고 한다. 


혹시 보더라도 모리 준이치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 풍의 잔잔한 일본 영화나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리즈물(대표적으로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한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를 다시 시작해 보려는 정도다. 


다행인 것은 넷플릭스에 일본 영화나 드라마가 이제 제법 올라온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리틀 포레스트>도 계절별로 있다. 어제는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을 보면서 스르르 잠이 들었다. 정말 좋은 드라마다. 나에게 부족한 잠을 주었으니까. 내용도 잔잔하고 감동적이다. 갈등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 갈등마저도 서로에 대한 사랑과 배려로 얼마든지 치유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리틀 포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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