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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an 19. 2023

일기 쓰기

어느덧 1월 중순. 가끔 사무실 창밖 풍경을 바라볼 때가 있다. 대개는 퇴근 무렵 차가 막히는지를 확인하다가 풍경까지 보게 되는 경우다. 한동안 뿌연 연무로 주변 풍경이 흐렸다. 겨울 특유의 차가움과 뒤섞여 상실감이 느껴졌다. 잠시 보다가 이내 시선을 거두는 일이 잦았다. 


며칠 전에는 눈발이 잠시 날리더니 이내 그쳤다. 덕분에 오랜만에 파란 하늘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춥지만, 파란 하늘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뭉게구름까지 얹혀 있으니 거리 풍경만 빼면 겨울이 아닌 것 같다. 사는 것이 여전히 팍팍해지지만 맑게 갠 하늘을 보면서 한숨 돌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었다.

오늘 읽었던 책에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이렇게 말한다. "문장 속에 있는 말은 사전 속에 있을 때보다 더 아름다워야 한다." 박제된 사전 속의 말을 살아 숨 쉬게 하는 것이 문장의 힘이다. 마찬가지로 생각 속에 있는 말보다 실제로 하는 말이 더 아름다워야 한다. 물론 생각이 결국 말이 되니 좋은 생각을 하도록 노력해야겠지만.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생각'만큼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없다. 생각은 보이지 않으니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나쁜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고백컨대, 나는 좋지 않은, 부정적인 때로 비관적인 생각을 훨씬 더 많이 한 것 같다. 이런 생각부터 고치자고 마음먹고 해 본 것이 글쓰기, 일기를 쓰는 것이었다. 


만화가 이현세는 "어떻게 하면 좋은 만화를 그릴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일기를 쓰세요. 우리가 일기를 훔쳐볼 때 재미있는 이유는 그 안에 이야기가 진실하기 때문이죠. 매일 일기를 쓰면 내 안의 참된 나를 만나 성장할 수 있습니다."


돌아보니, 어른이 되어서도 일기를 한동안 썼던 것 같다. 대개는 외롭거나 쓸쓸한 마음이 들 때, 힘든 상황일 때였다. 어렸을 때는 노트에다 연필로 썼고, 그때는 쓰고 싶어서 쓴 게 아니라 학교에서 쓰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썼다. 그러니 딱히 기억나는 내용도 없을 수밖에. 


어른이 되어서는 공부로 혹은 일로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 한동안 일기를 쓸 수 없었다. 생각할 틈도 없이 살았던 시기였다.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없으니 내면의 성장은 정지되었다. 




본격적으로 일기를 쓰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지나서였다. 내 뜻과는 무관하게 외부의 상황으로 좌절과 절망스러운 시간을 보낼 때였다. 주로 한탄조의 글들. 지금 다시 보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왜 그런 결핍의 시기가 되어야만 비로소 글을 쓰게 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이승우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괴롭거나 억울하거나 부끄럽거나 참담한 것들이 일기에 적힌다. 사랑하고 있는 동안은 일기를 쓰지 않는다. 사랑을 얻지 못해 괴롭거나 사랑을 잃고 슬퍼지면 일기를 쓴다. 이것은 일기쓰기가 곧 나름대로의 견디기의 처세, 치유의 방편이었음을 상기시킨다." 


일기, 즉 글쓰기는 나를 견디는 나름대로의 방편이었던 셈이다. 지금 와서 그때 일기를 보면 부끄럽거나 참담한 사연들이 많았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어려움에 대한 토로, 그렇게 글쓰기를 통해 나를 견뎌야 했다. 


그때의 모습도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든 또 다른 나였으니 그 시절의 일기를 다시 보면 내가 한심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안쓰럽기도 하다. '그렇게 너는 그 시절을 견뎌왔구나...'


한편 중요한 일이 있었을 때 메모하다가 그게 일기가 되기도 한다. 기억하고 싶은 사건들이나 일들, 중요한 사람을 만난 일들이 소회 비슷한 형태로 일기에 담겼다. 과거를 돌아보기에 일기만큼 좋은 자료도 없다. 기억에 한계가 있으니 뭔가 기록해 놓지 않으면 희미해지거나 잊히고 만다. 




일기의 장점은 그 내용이 진실하다는 거다. 아무도 보지 않는 일기에 거짓말을 써놓거나 과장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일기를 다시 읽어보면 그 시절의 '나'를 만날 수 있다. 상황이든, 마음이든 내 진심이 담겼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일기를 쓰든 쓰지 않든, 중요한 건 결국 '진실'을 담보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진실한가?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스스로를 속일 때, 양심의 소리를 애써 외면하거나 무시할 때이다. 진심이 담긴 일기는 이에 저항하는 나름 좋은 방법이다. 



일기는 보통 밤에 쓴다.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고 그날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면서 쓰게 되는데, 팀 페리스는 <Tools of Titans>에서 좀 다른 방법을 제시한다. 


성공한 사람들 중에는 아침 시간에 일기를 쓰는 사람이 꽤 있었다는 것. 그래서 그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그 시간을 유용하게 보내는 방법 중에 하나로 아침 일기쓰기를 추천하고 있다. 


"일기는 피곤한 하루의 마무리가 아니라 활기찬 하루의 시작을 위해 쓸 때 가장 효과적이다. 시작이 활기차면 하루가 몰라보게 달라진다. 밤의 일기 내용도 확 달라진다. 그런 하루가 모여 성공하는 삶이 된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밤이든, 새벽이든 다시 일기를 써볼까 한다. 살아가면서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단 한 가지 만이라도 하면 긍정적인 시선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그중에 일기도 좋은 방법이다.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 날들이란 무엇일까. 

결국 그것은 그녀가 스스로 호흡하지 않고 

자신의 모습으로 살지 않았다는 것이리라. 


일기를 쓰지 않게 된 것은 단지 피곤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모습으로 살지 않았기에 

'기록해야 하는 자신의 모습이 없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후지와라 신야 _ 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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