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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an 21. 2023

버 림

몇 년 전 신문을 보다가 LG전자가 계속 적자를 내고 있는 휴대폰 사업을 접을지 모른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한때는 큰 이익을 내면서 효자 노릇을 했지만, 삼성과 애플이라는 거목이 버티고 선 휴대폰 시장에서 더는 버틸 수가 없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새것을 얻으려면 갖고 있는 것을 버려야 한다. 수용할 스페이스에 한계가 있고, 모든 것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버려야 할 때 버리지 못하면 나중에 버려도 별 효과가 없거나 무의미하다. 더 나아가 의지 또한 뒷받침되어야 한다. 


관성대로 살면 편하지만, 나중에는 너무 무거워져 힘들어진다. 덜어내고 버리기 위해선 스스로를 도려내는 아픔도 감수해야 한다. 혁신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돌아보니, 내 삶에도 버릴 것투성이다. 무엇보다 불필요한 감정들이 문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살면서 마음속에 쌓아두었던 좋지 않은 감정들. 애써 외면하고 살았지만 그런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 마음에 병이 들고 말았다. 


분노, 원망, 서운함, 자기 비하... 헤아리면 끝도 없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마음의 상태에 달려 있으니 먼저 내 마음과 감정부터 점검해야 한다. 물론 그 감정들도 나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더 버리기가 어렵다. 왠지 끝까지 같이 가야 할 것만 같다. 집안이 더럽고 어지러우면 불필요한 물건을 정리하고, 청소를 하듯 마음도 그렇게 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보이지 않으니 방치하기 쉽다. 



또 하나 버릴 것이 있다. 검찰을 떠난 지 햇수로는 3년이 넘었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내가 아직도 검사 티를 못 버렸다고 한다. 여전히 공무원 마인드로 살아간다고. 경직된 사고와 삶의 자세를 지적하는 것일 것이다. 좀 더 유연한 사고를 해야 하는데 여전히 그렇지 못한 나를 바라보면서 답답하고 때로 힘들기까지 하다. 하물며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다. 

새해에는 이런저런 결심을 한다. 어차피 지키지도 못할 거고, 결심이 한 달을 넘기기도 어려울 것 같다. 하여, 올해는 뭘 하려고 하지 말고 무엇을 하지 말 것인가. 뭘 얻을 것인가를 욕망하지 말고 뭘 버릴 것인가를 궁구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다짐한다. 


그런 마음으로 집안을 보니 버릴 물건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런, 내 마음부터 정돈하고 버릴 것을 버리고 비워내야 하는데, 여전히 외부에서 그 대상을 찾고 있으니,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고 피식 웃고 말았다. 


요 며칠 힘들고 지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삶의 흐름은 그대로인데, 그 흐름에 대한 해석이 문제였다. 절망스러운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절망하는 내가 문제였던 거다. 이 글을 쓰면서 이렇게 다짐해 본다. 원치 않는 상황은 누구에게나 닥치는 거라고. 어서 다시 시작하라고. 이 상황은 결국 지나갈 거라고. 이겨내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능력까지 얻게 된다고. 올해 나는 나를 버려 스스로를 혁신할 수 있을까. 



정리를 하다 보면 깨닫게 된다. 

정리의 가장 큰 효용은 ‘치유’라는 것을. 

물건이든 마음이든 

무질서한 삶의 기록들을 지우고 비워내면 

그 빈 공간을 미래로 나아갈 새로운 에너지로 

채울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새해, 정리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전설리,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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