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과 반성, 그 사이에서

by 서영수

그들이 하는 말을 일부러 들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간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해서 아침부터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다. 몽롱한 정신을 깨우기 위해 커피를 마실 겸 사무실을 나선 것은 출근 시간이 지난 얼마 후였다. 바람도 쐴 겸 사무실 커피가 아닌 카페에서 내린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이미 출근 시간이 지난 터라, 거리는 한산했고 카페에는 한두 명의 사람들만이 커피를 주문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디에도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는 없었다.


잠시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려던 참에 몇 명의 나이 든 노인들이 카페에 들어서서 자리를 찾았다. 마침 그가 앉은 자리 근처였다. 가벼운 등산복 차림에 나이는 60세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들이었다. 서로 반말을 하는 것으로 봐서 친구 간처럼 편한 사이로 보였다.




그들의 화제는 주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였다. 출산율이 최저라서, 정치가 혼란스러워서, 경제가 어려워서, 사회 분위기가 침체되어 있어서 걱정이라는 것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자기만 안다고 그들의 모습을 성토하고, 자기들이 살 때는 이러지 않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경청할 말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말도 있었다. 이제는 은퇴해서 별다른 역할이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니, 그들 입장에서 지금 이 상황이 안타까울 만했다. 어떻게 만든 나란데, 이렇게 흘러가게 방치할 수 있겠느냐는 말. 그렇다고 이제 와서 뭘 어떻게 해 볼 수도 없고. 마치 그들이 이 나라를 세운 사람들 같았다.


딱히 틀렸다고 하기도 어려웠다. 그도 한때는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 당장은 속이 시원할지 몰라도,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뒤부터는 그런 말을 하거나 그럴 기회가 있어도 다른 사람들과 이런 유의 화제를 놓고 말을 섞지 않았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입 닫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묵묵히 해야 한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무엇도 바뀌지 않는다.'라는 것이 어느덧 그의 신념 비슷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언제부턴가 뉴스를 보지 않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신문을 보긴 하지만 정치면이나 사회면은 제목만 보고 건너뛰기 일쑤였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알게 되면 더 답답해지기 때문이었다.


어느덧 커피 잔은 비워져 가지만, 그들은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일 때문에 일어나야 했다. 피곤함은 가셨지만 뭔가 답답함이 느껴졌다. 마음이 불편했다.




사무실로 돌아가는 내내 그들이 한 말이 그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들이 말한 대로 세상이 문제인 것은 맞다. 하지만 뭔가 빠진 부분이 있었다. 그들이 비판하는 세상 역시 그들이 살았던 세상이고 지금도 살고 있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그들도 지금 이 상황에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성과와 성장만을 위해 치달았던 사회, 오직 1등만이 살아남고 나머지는 유령과 같은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사회, 사회적 약자나 어려운 사람을 배려하기보다는 내심 나 몰라라 했던 사회, 소위 명품으로 휘감은 사람들만이 대접받는 사회... 기성세대인 그들 또한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 일말의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비판만 하고 있는 것이 맞는 일이 아니라고 여겼다.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모임에서 누구를 만나든 남 이야기뿐이다. 그가 최근 몇 달 사이에 스스로 모임을 만들지도 않고 퇴근하면 곧장 집으로 가서 산책을 하고 책을 읽는 등 칩거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사람들을 만나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도 피곤한 일이고, 그런 이야기에 내 의견이랍시고 뭘 말하는 것도 역시 답답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화제라는 것도, 어떻게 하면 강남에 아파트를 사고, 주식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는지, 온통 돈 이야기에다 어떻게 하면 인맥을 쌓아 힘이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뿐이었다. 어쩌면 이 사회를 살고 있는, 아니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다수의 사람들의 관심사가 그런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TV 뉴스를 본 것도 벌써 오래전, 온통 남 탓, 상황 탓을 하는 것이 싫었다. 어쩌다 뉴스를 보게 되면 ‘그래서 어쩌라고? 그럼 당신은?’ 이런 생각부터 들었다. 문제는 잔뜩 제기하는데, 딱히 해결 방안이 없었다. 공허할 뿐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을 읽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문학작품도 사회에 대한 문제점과 상황을 비판하지만, 마냥 비판적이지만은 않다. 대안까지는 제시하지 않더라도, 모든 문제가 세상 탓이라고 하진 않는다. 무엇보다 책이 좋은 점은, 문자로 표현되기 때문에 비교적 정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는 답답했다. 젊은 세대는 젊은 세대대로, 나이 든 사람들은 나이 든 사람들대로 모두 불만인 사회, 숨 쉴 공간 없이 피로감으로 가득한 현실, 그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무조건 비판만 하는 사람들. 그도 다를까?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나라를 버리고 이민을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는 언젠가 지인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불가피하게 맞장구를 쳤던 기억을 떠올렸다. 대화의 분위기를 좋게 하려다 보니 불가피한 면도 있었지만, 그런 대화 끝에 이게 뭔가 하는 찝찝한 생각이 들면서 공허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는 살면서 끊임없이 저항했다. 주변 환경에, 다른 사람들에게, 더 나아가 부조리한 관습과 문화에. 그는 그것도 나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정말 저항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바로 불합리한 현실과 끊임없이 타협하는 '자기 자신'이다.


그는 순간 회의(懷疑)가 들었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니면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스스로를 용납하거나 합리화하며 적당히 살고 있지는 않은지.'


그는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 마음을 다졌다. '문제는 언제나 나야. 내게 주어진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할 일을 해야 해. 그것만이 내가 이곳에 존재하는 목적을 이루는 길이야. 그중에 하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나를 끊임없이 돌아보는 것이고.' 그의 하루가 비로소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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