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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May 27. 2023

인생에 대해 내가 알았던 것은 무엇인가

줄리언 반스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인생에 대해 내가 알았던 것은 무엇인가, 신중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았던 내가. 이긴 적도, 패배한 적도 없이, 다만 인생이 흘러가는 대로 살지 않았던가.


흔한 야심을 품었지만, 야심의 실체를 깨닫지도 못한 채 그것을 위해 섣불리 정착해버리지 않았던가. 상처받는 게 두려웠으면서도 생존력이라는 말로 둘러대지 않았던가.


고지서를 납부하고, 가능한 한 모든 사람들과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았을 뿐, 환희와 절망이라는 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소설에서나 구경한 게 전부인 인간으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자책을 해도 마음속 깊이 아파한 적은 한 번도 없지 않았던가.


이 모든 일이 따져봐야 할 일이었고, 그러는 동안 나는 흔치 않은 회한에 시달렸다. 그것은 상처받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쳤던 인간이 비로소 느끼게 된 고통, 그리고 바로 그랬기 때문에 느끼게 된 고통이었다."




줄리언 반스의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 나오는 글이다. 오랜만에 이 글을 다시 읽으니 이 글을 메모할 때 어떤 심정이었는지 얼핏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때도 주인공처럼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뭔가 변화를 꾀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지 않았다.


지금, 나는 그때와 비교해서 무엇이 달라졌는가?


딱히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이 책을 뭐 하러 읽었다는 말인가? 핀잔처럼 들었던 말을 스스로에게 하고 보니 마음이 적이 불편해졌다. 책을 읽는다고 다 바뀌는 건 아니라고. 책은 그러라고 읽는 것이 아니라고. 불퉁거려 보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굳이 한마디 더 변명을 덧붙이자면 소설은 자기 계발서가 아니지 않느냐고. 물론 타인의 삶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고쳐나가면 좋겠지만.


그럼에도 이 글은 나에게 선명하게 무언가를 제시한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느라 나답게 살지 못했던 시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 있어도 애써 의연한 척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쉽게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가 남았다. 열심히 살았지만 무엇을 위한 열심이었는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하루하루 나 자신을 소진하며 지쳐갔던 시간들...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시간은 허투루 낭비하지 않고 나답게 살 수 있을까?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나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기웃거릴 시간이 별로 없다.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들 때쯤, 세월이 빠르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허둥지둥 살다 보면 생의 끝날을 아무 대책 없이 맞이할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나라는 사람의 본질이 바뀔 거라고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뭐 하러? 또다시 반복되는 질문 앞에서 나는 그저 침묵으로 답을 대신할 수밖에. 나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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