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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l 03. 2023

외롭다 외롭지 않다

인간은 외로운 존재라고 한다. '외롭다? 외롭지 않다?' 흔히 하는 말이지만 외로운 게 무엇인지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잡히지 않는다. 혼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외롭다고 하는 걸까. 아니면 벗이든, 가족이든 대화하고 함께 삶을 나눌 사람이 옆에 없는 것이 외롭다는 것일까.


'외롭다'의 사전적인 정의는 '홀로 되거나 의지할 곳이 없어 쓸쓸하다'이다. 정의로만 보면 혼자 살면서 의지할 사람이 없으면 외로운 것이다. 그렇다면 누군가와 같이 사는데 세상과 동떨어져 혼자인 것 같은 생각이 들면 외로운 것인지 외롭지 않은 것인지 의문이다. 실존의 문제인가, 현상을 바라보는 생각의 문제인가. 깊이 들어가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양희은이라는 가수가 있다. 요즘 세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그녀가 부른 '아침이슬'은 무척 인기가 있었다. 참담한 현실을 돌려서 비판하는, 노골적이지 않으면서 가슴에 불을 붙이는 아름다운 곡이었다. 그녀가 최근 방송에서 한 말이다.


그녀는 30살에 암 수술을 받고 나서 깨달은 게 있다고 했다. "많은 인간관계, 얼기설기 얽혀있는 오지랖 넓은 거, 다 쓸데없었다. 인생은 그저 한두 사람 잡고 사는 거다. 왜 설명 없이 나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내가 뭘 했을 때, ‘야, 진짜 너 그거 왜 그랬냐?’ 하고 묻지 않는 사이. ‘나, 걔가 왜 그랬는지 알아!’라고 알아주는 사이. 난 그런 사람만 몇 붙잡고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난 늘 혼자 있다."


나름 인생의 철학이 담긴 말이다. 많은 사람을 알고 지내도 자신의 속마음까지 알아주는 사람은 흔치 않다. 눈빛만 봐도 알 정도인 사람을 주변에서 찾기 힘들다는 말이다.


아는 사람이 많다고 외롭지 않은 것도 아니다. 가족들과 함께 살아도, 친구들 사이에 있어도 여전히 외로울 수 있다. 오히려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하거나 가슴 아픈 일을 당하면 혼자 살면서 외로운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슬픔과 고통이 밀려온다.




톨스토이의 중편소설 <가정의 행복>은, 주인공 마샤가 작고한 자신의 아버지의 친구 세르게이 미하일리치와 사랑에 빠져 가정을 이루는 이야기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까지 했지만 좋아야 하는데, 그 순간은 짧고 그 이후부터 길고 긴 지루한 시간이 이어진다.


서로의 대화는 겉돌고 함께 살고 있으나 마치 혼자 있는 듯한 착각 속에서 고민하는 마샤를 보면서 과연 이게 소설 속의 이야기에 불과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불편한 생각의 일단이 이렇다.


"때로 나는 (그의) 그런 차분함과 관대함이 모든 것에 대한 무관심인 것처럼 여겨져서 못마땅했다. 나는 내 안에도 그와 똑같은 점이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한 채, 그것을 나약함이라고 생각했다."


외롭다는 것은 누군가 내 옆에 존재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 누군가마저도 없다면 외롭다는 개념이 아예 성립할 수 없다. 외로움을 사람들과의 관계로 ㅡ 사랑이 되었든, 친구와의 우정이든, 가족 간의 관계든 ㅡ 풀려는 시도는 실패하기 마련이다. 나도 부족한 인간이고, 그도 부족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 부족함이 어느 순간 용납되지 않을 때, 마샤처럼 배우자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뀔 때 관계는 헝클어지고 괴로움만 남는다.


서울, 뉴욕 같은 거대한 도시의 한복판에 사는 것이 인적이 드문 시골에 사는 것보다 훨씬 더 외롭다. 보이는 것이 많고 비교할 대상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외로운지 외롭지 않은지는 내 곁에 누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마주한 상황에 대한 내 인식과 생각의 문제였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외로운가? 외롭지 않은가?

Francesco Ciccolella

고독을 좋아하는 인간이란 없는 법이야. 

억지로 친구를 만들지 않는 것 뿐이지. 

그런 짓을 해봤자 실망만 할 뿐이거든.  


<무라카미 하루키 _ 상실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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