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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l 19. 2023

나의 궁극은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날이다

나는 나를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매일 같이 부대끼며 끝까지 남아 함께 하는 '나'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생각한다고 쉽게 찾아질 수 있는 답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고등학생이었을 때 나는 한동안 이 문제를 골똘히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관련된 서적을 읽기도 했다.


그러나 답을 찾기 어려웠다. 그때는 무지해서, 지금은 불필요한 지식으로 나를 채워서. 여전히 그 답을 찾지 못한 채 여기까지 왔다.


세월이 흘러 그때의 나는 어느덧 '다른 나'가 되어 있었다. 같은 나로 보이지만 분명히 달라졌다. 거울에 비친 나를 바라보며 낯선 나를 발견하곤 한다. 나이가 들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나를 나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을 걱정하고,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어서 그런지 여전히 내가 살았던 지난 시절에 눈길을 돌린다. 걱정과 불안, 염려와 상실감 속에서 나는 온전한 나를 잃어버렸다. 당연히 내가 누군지 묻는 질문도 멈추었다. '그게 뭐 중요한 문제라고? 그런 거 생각 안 해도 잘 살면 되는데 뭐가 문제야.' 나는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질문을 멈추었어도 사는데 지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오히려 삶이 퍽퍽하고 더 힘겨워졌다. 인간은 질문하는 존재라고 하는데, 질문이 사라지는 순간 인간으로서 존재 가치를 상실하고 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허연 시인은 "내가 꿈꾸는 나의 궁극은, 내가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날이다."라고 말했다. 과연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게 나를 설명할 정도로 나 자신을 잘 알고 있을까.


마지막 순간, 나는 나에게 나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 등장하는 판사 '이반 일리치'처럼. 그동안 살아왔던 나의 삶에 대해. 나라는 사람의 본질에 대해. 그 순간만은 진심일 것이다. 아니, 진심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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