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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Aug 24. 2023

무슨 책을 그렇게 열심히 읽고 있어요?

얼마 전 주말, 더위도 피할 겸 책도 읽을 겸 카페에 갔다. 한참 더운 오후 시간이라서 그런지 자리를 잡기 어려웠다. 카페 안은 더위를 피해서 나온 사람들도 가득했다. 어찌어찌해서 어렵게 자리를 구해 앉았다. 다행이다 싶었다.


책을 읽고 있는데, 부부 사이로 보이는 노인 2명이 자리를 찾다가 내 옆에 누가 가방만 놔둔 것을 보고 그 옆 사람에게 좀 앉으면 안 되겠느냐고 물어왔다. 물론 나한테도 양해를 구해왔고. 나는 흔쾌히 그러시라고 했다.


여름이라 따닥따닥 붙어 앉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당연히 그렇게 앉을 수밖에 없는 것, 가방 주인인 옆 사람은 좀 곤란한 표정을 지었지만 자리를 전세 낸 것이 아닌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이가 지긋한, 무척이나 호리호리한 그러나 눈빛은 살아 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였다. 책과 노트북을 꺼내 할머니는 책을 읽고 남편은 책을 봐가면서 노트북으로 무슨 작업을 하는 것 같았다.


조근조근 가벼운 대화를, 그것도 서로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이 얼핏 들렸다 말았다 했다. 최근 읽고 있는 책 속의 문장과 씨름하느라 ‘사이가 좋아 보이는 분들이네. 저 나이에 서로 존댓말을 하니 보기 좋군.’, 이 정도 생각을 하고 계속 책을 읽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일단의 손님들이 빠져나가면서 제법 여유가 생기고 카페가 좀 한산해질 무렵, 어느덧 창밖으로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하고 있었다.


책에서 눈을 떼고 잠시 창밖을 보고 있는데, 이때다 싶었는지 옆에 앉아 있는 할머니가 웃으면서 무슨 책을 그렇게 열심히 읽느냐고, 자기도 책을 읽고 있다고. 오늘 빌렸는데 특이한 책이라고 아주 재밌다면서 말을 걸어왔다.


무슨 책인가 보니 '도미니크 포르티에'가 생애 대부분을 자신의 작은방에 머물며 시를 쓴 여류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삶을 재해석해서 쓴 소설 <종이로 만든 마을>이었다.


잠시 서로 읽고 있는 책을 비교해 보면서 얘기를 나누다 보니 같은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면서 공통점이 있다고 서로 웃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이제 곧 가야 한다고. 오랜 시간 책을 읽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면서 짐을 싸서 남편과 함께 나가는 것이다. 미소가 아름다웠다.  




내 눈길을 끈 건, 읽고 있던 책도 책이지만 그 사람의 책을 읽는 자세와 모습이었다. 책을 읽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습관이 되지 않으면 책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이 복잡하고 재밌는 일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책을 읽다니, 그것도 주말에? 19세기 미국 시인인 에밀리 디킨슨의 삶에 대해 쓴 책이라니? 더군다나 나이가 들면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책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텐데. 어쩌면 다 아는 내용이라고, 과거에 다 읽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날 내 옆에서 책을 읽었던 그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예사롭지 않았던 거다. 저 나이가 되어서도 책을 놓지 않다니, 자극이 되었다. 하물며 가볍게 심심풀이로 읽을만한 책이 아닌데도 열심히 읽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늙어야 할 것인지, 나이가 들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카페를 나서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모처럼 즐거운 생각이었다. 한편으로 그날 읽었던 책 내용을 떠올리며 어떻게 하면 아름답고 깊이 있는 문장을 쓸 것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깊이 있는 소설, 특히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작가들은 평소 많은 독서를 했던 사람들이니, 나도 더 열심히 책을 읽고 써야겠다는 다짐 비슷한 것도 하게 되었다. 어느덧 해는 사라지고 짙은 어둠이 사방에 내리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의 주인공처럼, 우리도 문장의 아름다움을 통해 우리 삶 또한 아름다운 순간들을 가득 차 있음을 마음속에 새겨야 한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면에서 무르익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인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책을 읽었다. 그는 도대체 인간의 언어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깨달을 때까지, 마침내 그 구절의 필요성이 스스로 존중될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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