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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Aug 06. 2021

프루스트의 꽃, 나의 꽃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꽃은 내게 기쁨을 주었다. 꽃들은 몇 세기 전에 아마도 아시아로부터 와서는 영원히 귀화하여 이 마을에 자리잡고는, 소박한 지평선에 만족하며, 햇빛과 물가를 사랑하며, 기차역의 소박한 경치에 충실하며, 그러나 프랑스의 오래된 화폭에 그려진 몇몇 그림들처럼 그들의 서민적인 소박함 속에서 여전히 동방의 찬란한 시학을 간직하고 있었다.


<마르셀 프루스트 _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프루스트는 관찰력이 뛰어났던 것 같다. 그는 들판에 핀 이름 없는 꽃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이를 통해 삶의 교훈을 얻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무엇보다 남들이 눈여겨보지 않았던 사물에 대한 관심과 집중을 들 수 있겠다. 흘려보면 제대로 볼 수 없다. 유심히, 세밀하게, 정성을 다해 오랫동안 봐야 본질을 볼 수 있다.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다.


꽃을 보고 사람들은 아름답다 정도의 생각만을 한다. 프루스트처럼 꽃이 무엇에 만족하며, 충실한지 따져보려면 잠깐 본다고 그렇게 될 수 없다. 어디 꽃만 그럴까. 주변에 있는 나무와 동물, 흘러가는 구름 등 자연현상 모두가 그렇다.





사실 영혼이 없는 꽃이 그런 품성을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꽃을 보는 사람의 마음이 투영되었다고 밖에는. 꽃이 주변 환경에 만족하고, 주변 환경을 사랑하고, 주변 환경에 충실했다기보다는 프루스트가 그런 삶을 살았을, 살고 싶었을 가능성이 높다.


사물은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해석되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이 보는 만큼, 생각하는 만큼, 추구하는 가치만큼 보이고 느끼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산책을 하면서 길가에 핀 꽃들을 유심히 본다. 아마 프루스트의 이 글을 읽고부터인 것 같다. 그전에는 그러지 못했다. 아니,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걷는 것도 목표를 정해놓고 걸었고, 시간 내 끝내려고 했다. 산책도 효율을 지향하는 목표 지향적인 삶의 자세를 그대로 따랐던 거다. 당연히 꽃이나 나무 등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그러니 아무리 산책을 매일 해도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었다. 건강을 위해 시작했지만, 그다지 건강해지는 것 같지도 않았다. 긴장을 풀고, 편안한 마음으로 속도를 줄이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여유롭게 걸었어야 했다.


그럴 때 비로소 깨닫게 된다. 행복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천천히 자연의 속도에 맞춰 촘촘하게 관찰해야 비로소 자연이 그 실체를 보여준다는 것을, 아름다움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내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소소한 것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어느 순간 그런 마음을 담아 유심히 살펴보자, 길가에 핀 이름 없는 꽃도 자신의 환경과 상황에 맞춰 최선을 다해 주어진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 깨달아졌다. 불평, 불만은 언제나 인간의 몫이라는 것도. 프루스트 때문에 내 주변을 사심 없이 바라볼 마음과 여유가 생겼다고 할 수 있다.





프루스트의 글에는, 만족, 사랑, 충실, 소박함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하나같이 좋은 말이지만, 삶으로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어떻게 하면 프루스트와 같은 심성과 감성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바쁘다고 하지만, 실제는 그렇게 중요한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왜 이렇게 마음의 여유가 없는 건지 모르겠다.


덥다 덥다 하더니 벌써 8월이다. 8월은 특히 더위 속에서 빨리 가는 달이다. 더위에 지쳐 어서 이 더위가, 이 여름이 끝나기만을 바라니, 특별히 멋진 곳에서 휴가를 보내는 사람들 빼고는 8월이라는 달 자체가 그렇게 기억에 남는 것 같지 않다. 그래서일까. 8월은 늘 내 인생에서 서둘러 지나가고 말았다.


세월이 빠르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오늘을 살고 있는데, 여전히 어제 같고,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기억에 남지 않으니 그냥 모든 것이 흘러가고 만다. 프루스트처럼 유심히, 자세히, 관심을 갖고 살펴보지 않았던 탓이다.





틈나는 대로 책을 읽었지만, 기억에 남는 건 많지 않다. 쉽지 않은 책들을 읽어서이기도 하지만, 깊이 고민하면서, 음미하면서, 감정을 이입하면서 정성을 다해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책을 많이 읽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 권을 읽어도 제대로 읽어야 내 것이 된다.


오늘도 나는 오래전에 읽었던 프루스트의 꽃에 관한 글을 읽고 내가 왜 프루스트처럼 생각할 수 없는지 한참 생각했다.





"온갖 어려운 일이나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고개를 돌리게 하는 저 비겁함이 이 모든 것을 그만두고 차나 마시며 별 고통 없이 되씹을 수 있는 오늘의 권태나 내일의 욕망만을 생각하라고 권고한다."


 <마르셀 프루스트 _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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