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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Nov 07. 2023

기억하고 싶은 것은 잊고

기억하기 싫은 것은 잊을 수 없으니

지난 주말에는 책을 거의 읽지 못했습니다. 읽으려고 노력은 했는데 무슨 연유인지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날씨가 좋아서 그랬는지, 마음이 딴 곳에 가있어서 그랬는지, 가장 큰 이유는 책에 등장하는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기가 버거웠고 공감할 수 없는 부분도 더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피곤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물에 대한 작가의 세밀한 감정 묘사를 보면서 매사에 주어진 상황이나 함께 하는 사람들에 대해 분석하고 판단하고 산다면 그것도 참 피곤한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의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고 의도를 파악하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긴 작가는 그 글을 쓰기 위해서 얼마나 고심에 고심을 했을까요. 그에 비하면 나 같은 독자는 군말하지 않는 게 맞습니다. 그럴 자격도 없구요. 작가가 고심해서 쓴 글이니만큼 읽는 사람도 그에 반만이라도 고심하면서 문장을 쫓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책을 읽어도 내용이 모두 기억에 남는 건 아닙니다. 나름 기억한다고 애써도 그 기억이 오래가지 않습니다. 고민하지 않고 읽었기 때문입니다. 문장 하나에도 내 생각이나 고민을 담지 않으면 설사 필사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역시 안개처럼 사라지고 맙니다. 생각하고 고민한 만큼만 남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단 한 줄이라도, 책을 읽고 느낀 자신의 생각이나 소감을 글로 남기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고민하며 글을 쓰면 눈으로 읽고 마는 것보다 오래 갑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책을 읽고  쓴 예전 제 글을 읽어보면 내가 이 책을 읽었던가? 하는 생각이 드는 글도 많기 때문입니다. 역시 세월은 이길 수가 없나 봅니다.  


가끔 오래전 제 글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저 잊지 않기 위해 나름 생각해서 적은 글들, 어떤 글은 지금 읽어보면 생소하기까지 합니다.


그래 봤자 시간의 무기인 망각 앞에서 무력하기는 다른 것들과 다를 바 없는데도요. 그래도 기록해 놓으면 어떻게든 남는 것 같습니다. 브런치든, 아니면 가슴속이든.


기억하고 싶은 것은 쉽게 잊히고 기억하기 싫은 것은 잊히지 않는 현실, 괴로움이 작지 않습니다.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에 따라 앞으로 남은 삶의 방향이 결정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가을이 지나가는 이 길목에서 ‘지금 이 순간 무엇을 기억하기 위해 애써야 하나?’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가 중요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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