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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Nov 05. 2023

지난 시절에 비해 우리는 행복한가?

맨 부커상에 빛나는 <파이 이야기>의 작가로 유명한 캐나다 출신 작가 '얀 마텔'의 이야기이다. 그는 1990년대 중반 이란을 여행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이란은 이슬람교가 지배하는 종교국가로 혁명으로 왕을 쫓아내고 신정정치를 하는 이슬람 공화국이었다.


이란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종교적인 광기로 여성들을 억압하고 음주가 금지되는 금욕적인 국가로 알려졌고 실제로도 맞는 말이었다. 영화관이나 콘서트홀, 스포츠 종합단지 같은 공간은 물론 술집도 그 당시 흔하다는 디스코장도 없었다고 한다. 이란은 소문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엄숙한 곳이었다.


당연한 결과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여가 활동은 '사교'가 전부였다. 사교라면 무슨 음습한 댄스 그런 걸 연상할 수 있겠지만, 특별히 즐길만한 오락이 없다 보니 서로를 의지해서 같이 잘 지내는 사람들 간의 만남과 교류를 의미했다.


그가 만난 이란 사람들은 의외로 개방적으로 호기심이 많고 너그럽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친절하며 끝없이 수다를 떠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말한다. 만약 당신이 그 당시 이란 사람들을 만났다면, 그들은 당신에게 관심을 온통 집중했을 거라고, 그래야만 그 사회에서 서로를 위안 삼아 잘 살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도 그들은 조금 더 경제적인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는 등 몇몇 가지를 빼놓고는 자신들의 생활에 크게 불만이 없었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부유하다고 행복한 것이 아닌 것은 그 시대 이란도 다를 바 없었다. ('얀 마텔의 101통의 문학 편지' 중에서 요약 인용)




길게 얀 마텔의 경험담을 이야기한 건, 이 이야기를 읽고 느낀 점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우리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의 행, 불행을 판단해선 곤란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종교가 사회와 사람들을 억압하고 묶어둔다고 해도, 오히려 사람들은 그들 간의 교류를 늘려 삶의 활로를 찾았다는 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요즘 SNS와 휴대폰의 보급, OTT의 활성화 등으로 우리의 삶은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 대학 시절에는 지하철에서 사람들 다수가 신문이나 책을 읽거나 일행이 있으면 한담을 나누곤 했는데, 지금은 어떤가. 모두 휴대폰에 머리를 박고 동영상 등을 보는데 여념이 없다.


가족 간에 밥을 함께 먹는 것도 드문 일이 되었지만, 먹는다고 해도 각자 휴대폰을 보며 밥만 먹지 않는가. 소통을 위해 만든 도구가 오히려 서로 간의 대화를 없애는 소통 부재의 시대가 되고 말았다.


TV도 예전에는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서 봤다면(채널에 대한 선택권이 그래서 그때는 중요했다), 지금은 각자의 방에서 휴대폰이나 노트북 또는 패드로 넷플릭스나 유럽 축구를 보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얀 마텔이 경험한 사교는 사라져 버린 셈이다.


행복과 불행은 상대적이라고 하지만 이란 사람들이나 지금보다 어렵게 살았던 우리 부모 세대가 불행했다고 하긴 어렵다. 그때보다 모든 것이 갖추어진 지금의 우리가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오히려 과거보다 지금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외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늘었다.


생활 수단의 발전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이, 이것도 마찬가지다. 나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가끔은 지난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불편했지만 인간적이었던, 삶의 재미가 있었던 그 시절, 나이가 든 탓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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