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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Nov 27. 2023

아름다운 문장을 읽으면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얼마 전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왜 책을 그렇게 많이 읽느냐? 지금까지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무엇이냐? 책이 당신을 바꾸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질문이 다소 공격적이었고 평소 생각하지 않고 있던 문제라 우물쭈물 답이 나오지 않았다.


곧 반격이 시작되었다. 책을 많이 읽었으면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에서 풍기는 뉘앙스는 넌 책을 그렇게 많이 읽는데도 도무지 바뀌지 않는구나. 오히려 책을 읽고도 이 모양이면 가망이 없어 보인다. 뭐 그런 느낌이었다.


맞는 말이다. 나는 그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그동안 꾸준히 책을 읽었지만, 책이 나를 바꾸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책이 문제가 아니라 나한테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지적을 당해도 딱히 반박하기 어려웠다. 질문이 계속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왜 책을 읽는 것인가? 교훈을 얻기 위해서? 아니면 뭔가 나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서? 그런 이유도 없진 않겠지만 내가 책을 읽는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다. 그동안 읽은 책 중에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은 있었지만 교훈적인 내용이 담긴 책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책을 본격적으로 읽게 된 계기는 나의 무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법시험 준비를 하느라 대학 시절에 읽어야 했던 책들을 읽지 못했다. 그 후 검사가 되어서도 바쁜 업무에 매어 책을 읽을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언젠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서 근무할 때였다. 정부 고위 관료를 조사할 일이 있었다. 조사를 하면서 그의 해박한 지식과 사려 깊은 태도에 감탄했고 그 뒤에는 늘 책을 읽는 그의 성실한 독서 이력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자극이 되었다. ‘그래, 나도 지금부터라도 책을 읽자!’ 그렇게 해서 시작한 것이 평소보다 10분 일찍 출근해서 10분간 책을 읽는 거였다. 그 후 법무부에 근무하면서 정부 여러 부처 공무원들을 보면서 책을 읽어야 할 필요를 더 느꼈다.


자극은 외부에서 왔지만 내적인 이유도 있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소진되는 나를 보는 것이 힘들었다. 뭔가 나를 위해 하고 싶었는데 그게 독서였다. 한편으로 잡기에 능하거나 특별한 취미가 없어 넘쳐나는 시간, 특히 주말에 시간을 보내는 용도로 책을 선택한 면도 있다. 그러나 그건 계기일 뿐, 그 후 이어진 독서의 직접적인 이유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보지 못했거나 간과했던 삶의 아름다움, 책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과 다양한 그들의 삶, 비참하거나 찌질한 인물들의 삶을 통해 역설적으로 인간의 숭고함과 가치를 알게 되었다.


'아, 이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반응했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도 있네. 험한 세상을 살아내면서 마음을 잃지 않았구나.' 내가 책을 읽으면서 느끼고 싶었던 것도 바로 삶을 대하는 그들의 자세와 태도, 위기 앞에서 보여준 아름답고 숭고한 모습이었다.


책을 읽는다고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이 들기도 한다. 책이 뭐라고?! 그러나 맞다고도 할 수 있고 틀리다고도 할 수 있다. 나한테 달렸다는 점에서 그렇다. 분명한 건 책을 읽으면 어떤 식으로든 책이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거다. 아름다운 문장을 아름답게 간직하면 내면과 세상을 보는 시선이 아름다워진다. 김연수 작가도 <우리가 보낸 순간 - 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지금 좋아서 읽는 이 책들은 현재의 책들이 아니라 미래의 책이다. 우리가 읽는 문장들은 미래의 우리에게 영향을 끼친다. 그러니까 지금 읽는 이 문장이 당신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아름다운 문장을 읽으면 당신은 어쩔 수 없이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그래서 뭐가 바뀌었느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별로 바뀐 게 없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다만 나를 앞서 살았거나 동시대를 살고 있는 작가들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그전보다 풍요로워진 것만은 분명하다. 나만의 편견이 사라지고 듣는 귀가 조금은 열린 것이다. 그나마 책이라도 읽어서 이 정도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은 그저 입안에서 맴돌고 말았다.  


이 글을 쓰는 가을밤, 달이 떠오르고 주변이 밤의 정적에 묻혔다. 날씨가 추워져서 그런지 밤하늘이 청명하다. 기억은 못 하지만 이런 밤을 묘사한 아름다운 문장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 글을 읽으면서 밤이 주는 아름다움과 고요함을 새롭게 느꼈으니, 아마 책을 읽지 않았으면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던 변화였다.


그 사람이 이 글을 읽을지 의문이지만 질문에 대한 답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아직 내 마음에 있는 생각을 글로 온전히 표현할 능력이 내겐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지금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이 질문에 대한 더 정확한 답을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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