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뒤에 있는 차량에 받힌 거니 내 잘못은 없었다. 그때 느낀 점은 아무리 주의를 해도 일어날 일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거였다. 뒤 차량이 제대로 운전하는지, 과속하지는 않는지를 리어 미러로 확인하고 조심할 수 있지만, 그 뒤에 있는 차량의 운전 행태까지 확인하기는 어렵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일이 훨씬 더 많다. 본의 아니게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그러니 안 좋은 일을 당했다고 해서 운이나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살다 보면 다치기도 하고 관계가 틀어지기도 하고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가 헤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내 잘못일 수도 있지만 그냥 안 맞아서, 인연이 아니라서 헤어지는 것이다.
최근 끝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어려웠다고 하는데, 아무리 최선을 다했어도 풀기 어려운 문제가 나오면 방법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내 자세가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 것이지, 결과에 연연하면 삶이 피곤해진다. 조심하고 조심해도 일어날 일이었다면 겸허히 결과를 받아들이고 그다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게 낫다는 말이다.
신앙이 있는 사람에게 부당한 일이 발생하면 '당신이 믿는 신이 당신을 지켜주지 않은 거냐?'라는 말을 듣는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그것 또한 말도 안 되는 지적이다. 물론 그 사건의 배후에 어떤 뜻이 담겨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교회에 다닌다고 사고가 나는 것 자체가 면제되지는 않는다. 그런 식으로 확대 해석하면 기독교 신자는 암에 걸리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
사고를 막기 위해 부적을 쓰거나 불안한 마음에 점을 볼 수도 있다. 오죽하면 점을 볼까, 하는 마음이 들지만 그런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다. 무속인이 자녀가 이번에는 대학에 간다고 하면 가는 것인가. 올해 운이 안 좋다고 하면 포기하고 말 것인가.
그냥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잘 살려고 하면 된다. 그렇게 마음먹어도 매일매일을 잘 살아내기는 또 어렵다. 그러면 그러려니 하고 잠시 속상했다가 잊어버리고 다시 살면 된다. 그래서 신은 우리에게 망각이라는 선물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들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더 많다고, 그게 인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점점 짙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불교의 선승이나 수도사처럼 세상 모든 일에 해탈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