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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Dec 10. 2023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몇 주 전 주말, 최근 출시된 아이폰15를 살지를 놓고 한참을 고민했다. 작년 이맘때 구입한 아이폰 14PRO MAX(프로 맥스)를 쓰고 있지만 가지고 다니기가 너무 무거워 불편했기 때문이다. 무게는 그렇다고 해도 언제부턴가 통화 중에 신호가 끊기면서 전화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 들렸다 하기도 했다.   


디스플레이가 작으면 문자를 보낼 때 자꾸 오타가 나서 큰 화면으로 바꾼 것이 화근이었다. 아이폰14프로 맥스는 카메라 성능이나 매끄러운 화면 전환 등 나무랄 데 없이 좋은 폰이지만, 휴대전화의 핵심인 휴대성과 통화 기능이 아쉬웠다.


여름 내내 점심을 먹으러 갈 때나 어디 갈 때  휴대폰을 사무실이나 집에 놔두고 다녔다. 이럴 바엔 휴대폰을 왜 샀지, 어차피 아이패드도 있는데 굳이 큰 화면이 꼭 필요했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새로 나온 아이폰15를 보니 가볍고 휴대하기가 편해 보였다.


유튜브에서 관련 동영상을 찾아보고 사용 후기를 읽었다. 선뜻 판단이 서지 않았다. 사용 후기를 읽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서 늦은 저녁 직접 애플 스토어에 가서 한번 살펴봤다. 새로 나온 아이폰 15와 구형이지만 전화기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아이폰SE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는데 직원이 와서 선택을 하는데 도와주겠다고 한다. 이런저런 조언을 듣다 보니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편리함을 위해 만들어진 도구가 오히려 발목을 잡고 만 셈이다. 사실 중요한 문제도 아닌데, 귀중한 주말을 낭비하고 말았으니 바보스러운 짓이었다. 언제는 큰 화면을 가진 휴대폰을 사면 문자를 입력하는데 편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선 무겁다고 다른 폰으로 바꾸려 하다니, 이런 변덕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미치자 내가 한심해졌다.


지금 쓰는 폰도 기능을 다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데 다소 불편하다고 새로운 폰을 사는 건 왠지 낭비로 보였다. 차라리 지금 쓰는 폰을 좀 더 쓰고 다음에 바꿀 때 무게 등을 고려해서 기본형으로 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받고 문자를 보내고 간단한 웹서핑을 하는 정도에 불과한 나로서는 지금 쓰는 폰의 성능은 과잉이다. 사진을 자주 찍는 것도 아니니 첨단 기능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런데도 나는 몇 년 전부터 새로운 아이폰이 나올 때마다 최상급 폰을 샀다. 내 삶에 거품이 낀 것처럼 휴대폰에도 잔뜩 거품이 낀 것이다.


일본인들은 큰 화면의 플래그십 모델의 신형 아이폰보다는 아이폰12, 13 미니 등 조그만 화면의 구형 모델을 선호하는 반면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프로급의 최상위 성능을 가진 신형 폰을 선호한다는 기사(링크)를 봤다. 필요와 욕망 사이에서 균형을 잃은 삶, 그 삶에 거품이 낀 것이다. 사진을 찍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은 모를까, 모든 사람들이 프로 모델이 필요한 건 아니다.




작고한 법정 스님은 말했다.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만큼 자유로운가에 달려 있다고. 필요와 욕망의 차이를 가릴 줄 알아야 한다고."


다른 사람에 대해 말할 것도 없이 본질과 기본에 충실하자, 있는 것을 족한 줄로 알자는 말은 나에게 해당되는 말이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내 삶과 의식 속에 끼어 있는 불필요한 거품과 욕망을 걷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젠 사용 후기나 동영상도 그만 봐야겠다고.


평소에는 잘 보지도 않던 유튜브에서 핸드폰 사용 후기를 찾다 보니 AI 알고리즘이 이젠 최상단에 휴대폰 사용 후기나 영상을 보여준다. 순간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게 바로 나의 실상이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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