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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Dec 17. 2023

감기가 지나가면 나는 또 이전의 내가 아닐 것이다

감기가 심하게 걸렸다. 주변에 감기나 독감 환자가 늘어나도 '나는 괜찮겠지. 괜찮아, 문제없어.' 하고 자신했었는데 이틀 전부터 컨디션이 별로면서 결국 감기에 걸리고 만 것이다.


감기, 이맘때 흔하게 걸리는 별게 아닌 질병 같지만 실제로 감기에 걸리면 많이 힘들다. 남이 걸리거나 언론에 감기 환자가 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글쎄, 나는 문제없겠지 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막상 내가 감기에 걸리면 심각해진다.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런 것처럼, 남 일이 아닌 내 일이 되어야 비로소 제대로 반응을 하게 되는 건 감기라고 다를 바 없다.


참다 참다 병원에 갔지만 약을 처방해 주면서 푹 쉬라는 말 외에 달리 뚜렷한 해결 방법을 제시해 주지 않았다. 약도 기침이나 가래, 코막힘을 완화해 주는 대증요법(symptomatic therapy) 정도에 불과해서 감기 바이러스를 없애주진 않는다. 결국 내 몸의 면역이 강화되어 바이러스를 이겨내는, 즉 쉬면서 운기조식(運氣調息)하는 외엔 달리 방법이 없는 것이다.


감기 그깟 게 뭐라고 아직도 정복을 하지 못하다니, AI를 개발하고 우주를 여행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지금, 감기 하나도 어떻게 못하는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지 모른다고 병원을 나서면서 푸념 비슷한 것을 했다.


눈이 따끔거리고 목이 컬컬한 것이 불편하지만 정확히 어디가 어떻게 불편한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올해는 독감 예방주사를 맞지 않았지만 지난해도 걸리지 않았으니 별일 없겠지 하면서 잘 넘어갈 거라고 자신했는데 이렇게 속절없이 무너지니, 최근 잠을 푹 자지 못한 것이 문제였을까, 같은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옮은 것일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지금 와서 원인을 분석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그렇다고 바로 감기가 낫기를 바라는 것도 무리다. 회복을 위해선 일정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오히려 감기로 인해 지난 생활에서 무엇이 문제였는지 돌아보고 고칠 기회로 삼는 것이 낫다.


문제는 잘못된 생활습관을 돌아보지만 그때뿐, 감기가 나으면 또다시 같은 생활을 반복하는 것이다. 불편하고 아파야 비로소 돌아보는 나, 나라는 사람의 한계를 이번 감기에서 또 한 번 확인했다.


앞으로 더 조심하고 생활습관을 바로 하려고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이 글을 쓰다 보니 몸이 조금 나아진 것 같다. 아마 글을 쓰면서 집중했던 것이 이유인 것 같다. 순간적으로 감기로 인한 불편함을 잊었다. 무시해선 안되지만 그렇다고 너무 의식하며 사는 것도 피곤한 일, 그건 감기라고 다르지 않다. 이 또한 이번 감기에서 얻은 교훈이다.


그럼에도 이 감기가 지나가면 나는 뭔가 변해 있을 것이다. 느슨해진 나에게 감기가 나를 돌아보게 하는 촉매제가 된 것만은 분명하니까. 문득 황주리 화가가 <날씨가 너무 좋아요>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나도 그녀와 같은 생각이다.  


"세상 사는 일이 고달프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한 사흘 감기나 앓았으면 싶을 때가 있다. 앓고 난 뒤에 조금쯤 퀭하니 커진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살아 있는 일이 그래도 행복한 거라는 기특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게 감기는 늘 휴가였다. 그렇게 아프면서 뿌리가 영글어가는 식물처럼 키가 자라는 느낌. 이 감기가 지나가면 나는 또 이전의 내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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