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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an 26. 2024

여자인 주제에 & 아무리 여자라고 해도

논리적인 생각을 못 하는 아내에게도 의외로 신선한 면이 있었다. 그녀는 조리 있게 생각하지는 못했지만 생각한 결과는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단지 남편이라는 이름 때문에 그 사람을 존경하라고 강요받는다면 저는 그렇게 못해요. 만약 존경을 받으려면 그만큼의 자격을 갖춰서 제 앞에 나오시는 게 좋을 거예요. 남편이라는 호칭 따윈 없어도 상관없으니까요."


많이 배운 겐조이지만 이상하게도 이 점에서만은 구식이었다. 인간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간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내는 남편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남편과 독립된 주체로 자신을 주장하는 아내를 보면 겐조는 바로 불쾌감을 느꼈다. 툭하면 '여자인 주제에'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아내대로 마음속으로 '아무리 여자라고 해도'라는 대답을 언제나 대비해놓고 있었다.


'아무리 여자라지만 그렇게 무시당하면 참을 것 같아요?'


겐조는 가끔 아내의 얼굴에 나타나는 이런 표정을 똑똑히 읽었다. "여자라서 깔보는 게 아니야. 바보니까 깔보는 거라고. 존경받고 싶으면 존경받을 만한 인격을 갖추는 게 좋을 거야."


겐조의 논리는 어느새 아내가 그를 향해 던지는 논리와 똑같아져 버렸다. 부부는 이렇게 둥근 바퀴 위를 빙빙 돌았다. 그러면서 아무리 지쳐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쓰메 소세키의 <한눈팔기, 192 - 193p>에 나오는 글이다. 1915년에 발간된 소설이니 그 시대의 남녀를 보는 시각이 지금과 많이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서 읽어야 한다. 그럼에도 작가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주인공 겐조의 시각에서만 글을 쓰진 않았다.


오히려 남편에게 당당히 자신의 주장을 펴는 아내의 입장에서 쓴 부분도 제법 된다. 중요한 건 그때나 지금이나 부부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이 흐른다는 것이다. 가장 가까우면서 가장 먼 존재가 배우자가 아니던가. 소설을 읽으면서 ‘맞다. 그렇지.’를 연발하는 건 어쩌면 그런 심리를 정확히 간파한 작가의 역량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그 시절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남자와 여자가 무슨 차이가 있다고 “여자인 주제에!” 이런 말을 지금 하면 당장 헤어지자고 하거나 집에서 쫓겨나기 십상이다.




그러나 소세키가 소설을 쓴 그 당시의 시대 상황을 지금 기준으로 재단할 수 없다. 어두웠던 지난 시절을 거쳐 지금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해서 지금의 잣대로 과거를 판단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렇다고 과거의 향수에 사로잡혀 있을 수도 없다.


대화로 소통해서 서로의 차이와 간격을 줄여보려고 하지만, 각자의 말만 하고 마는 그래서 말을 하고 나면 뭔가 충만한 어떤 것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공허하기만 한, 아마 겐조와 그의 아내가 그렇지 않았을까. 서로의 차이에 대한 존중과 상대의 존재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는 사이, 이상적인 부부의 모습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비꼬고 냉소적이고 더 나아가 서로의 상처를 헤집는 소위 막말을 하는 그런 관계에선 진실된 관계를 기대하긴 어려운 것이다. '저 사람이 왜 저럴까?'에서 '왜' 보다는 '저럴까?'에 초점을 맞추면 대화는 겉돌기 마련이다. 왜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느냐는 끝없는 불평과 불만만 쌓일 뿐.


나는 이 부분을 남녀 간의 차이나 차별을 부각했다기보다는 부부 사이에 흐르는 긴장과 갈등 그리고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묘사한 것으로 보고 싶다. 무엇이 겐조와 그의 아내 사이에 갈등을 유발했는가. 영국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 지식인과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과의 차이라기보다는 세상을 보는 시선과 성격 무엇보다 에고가 강한 탓으로 보인다.


다만, 책상머리에 앉아 자기만의 관념에 빠져 아무런 대안 없이 세상을 탓하는 지식인이 되기보다는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몸으로 부딪히면서 머릿속 지식으로는 깨우칠 수 없는 세상 이치를 깨닫고 이를 실천하려고 애쓰는 지성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식의 진보는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일본 최초로 영국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인 그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겐조를 통해 지식인의 허위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시대를 앞서간 진정한 '지성인'이었음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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