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영수 Feb 28. 2024

왜 아쉽지 않겠는가 그러나

어둠이 물러가는 새벽, 아직 태양이 빛을 발하기 전, 커튼을 젖히면 세상이 열린다는 느낌보다는 또 하루가 시작되었구나 하는 마음부터 든다. 자고 일어나서 기지개를 켜면서 잘 잤다는 표정으로 하루를 여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지만, 요즘 자고 일어나도 피곤함이 영 가시지 않아서 그런지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생각되었다.


새벽은 모든 것이 깨어나는 시간이라서 그런지 싱그럽고 새롭다. 공기의 결과 흐름도 어제와는 사뭇 다르다. 그러나 아무리 새벽 공기가 싱그러워도 석양(저녁놀)의 아름다움에 비할 바가 아니다.


며칠 전 사무실 창밖으로 우연히 지는 해를 보았다. 그날도 석양이 무척 아름다웠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차라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이 낫겠다고. 너무 아름다워서? 어쩌면 곧 사라져서? 한낮의 밝은 기운이 물러가고 어렴풋이 잔상이 남아 주변을 붉은 기운으로 물들이면 이제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누구에게나 다가올 마지막 순간,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그 순간. 아마 저 태양도 산등성이를 넘어가며 비슷한 심정이었으리라. 자신은 사라지고 달과 별에게 자리를 비켜주어야 하니 왜 아쉽지 않겠는가. 살아 있는 것이든 생명이 없는 것이든 마지막이 되면 아쉽지 않은 것이 없다.


사랑하는 이를 남기고 떠나는 사람의 심정 또한 비슷하리라.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의 심정이 이렇겠구나 싶었다. 아쉽다고 하기엔 진부하고 미련이 남았다고 하기엔 부질없는, 적절한 말을 한참 생각했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오래전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심정이 된 적이 있었다. 혼자서 고군분투하면서 고시공부를 할 때였다. 해야 할 공부가 많아서 외로움을 느낄 틈조차 없을 때, 그날도 오늘처럼 해가 지고 있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학교 후문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바라본 태양은 나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벌써 사라지고 잔영만 남은 상태였다.


해가 지는 것도 모르고 살다니, 사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다시는 이런 마음이 드는 상황을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 다짐은 얼마를 가지 못했다. 애초에 지킬 수 없는 약속이었으니까.


그날도 비슷했다. 다짐의 무용함을 익히 아는 터라 그냥 그대로 두었다. 감정이 흘러가는 대로, 시간의 흐름에 나를 맡긴 채. 한때는 이런 감상적인 생각에 빠지지 않고 꿋꿋이 앞만 보고 사는 사람들이 부러웠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각자 사는 방식과 생각이 다르니까.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다름에서 오는 차이에 불과하다고 뉘엿뉘엿 사라지는 해가 나를 위로해 주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금 이 순간의 느낌과 감각에 충실한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