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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Feb 27. 2024

지금 이 순간의 느낌과 감각에 충실한 삶

얼마 전 서울에는 눈이 제법 왔다. 눈이 소복이 쌓인 길. 찻길과 달리 인도가 하얗게 변했다. 눈의 감촉이 발끝으로 전해진다. 각자 내리던 눈이 뭉치면 사뭇 달라지는 것이다.

어떤 길은 눈 때문에 걷기도 힘이 들었다. 사람들의 왕래마저 끊어져 적막감만 감도는 것이 낯설었다.

나무들도 눈으로 단장을 하고, 풍경이 제법 겨울답다.

눈이 오면 사방이 고요해진다. 눈이 소리를 흡수하기 때문일지도.

평소 산책하던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걷기가 불편해서 그럴 수도.

누가 만들었을까. 눈사람이 아무도 없는 전망대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눈도 사람의 형태를 갖추면 외로워진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말대로 우리는 누구나 신 앞에 단독자이니까.


눈 덮인 길을 걸으며 생각을 버리고 발끝에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낮 동안 복잡했던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다. 포르투갈 출신의 작가이자 시인인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 1888 - 1935)는 <불안의 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것은 나의 감각들, 의식적으로 보고 있는 상태, 귀 기울일 때 받는 느낌, 그리고 세상의 소박한 것들이 과거의 일들을 상기시키며 내게 말 걸어오는 방식인 향기 등이다. 나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얻는다, 그것이 내 안에 있는 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오직 이 순간의 감각과 느낌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미 지나간 일도 앞으로 다가올 일도 아니다. 눈길을 걸으면서 마음에 새겼다. 앞으로도 내가 살아야 할 하루하루,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 내 삶이 그 자체로 충만할 수 있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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