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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Feb 29. 2024

어떤 가정법도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데

"약속해, 어떤 가정법도 사용하지 않기로. 그때 무언가를 했더라면, 혹은 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말들로 우리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기로 해. 가정법은 감옥이야. 그걸로는 어디에도 닿을 수가 없어."


윤이형 작가의 단편 <님프들>에 나오는 글이다.


생각해 보니, 내 삶도 늘 가정법으로 시작해서 가정법으로 끝났던 것 같다. '그때 ~하지 않았더라면... ~했었더라면 뭔가 달라졌을 텐데' 지금 와서 후회한다고 이미 지나간 일을 바꿀 수 없는데도, 그저 안타까워서 그런 건지, 후회는 점점 더 커져만 가고. 마음만 상했다.


작가의 말대로 가정만으로는 어디에도 닿을 수 없었다. 심지어 나 자신에게도. 과거를 끄집어내는 일, 다 부질없는 생각이라는 것을 알지만 한편으로 후회스러운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아무 소용이 없는데도 왜 그렇게 가정법을 이용해서 나를 괴롭혔는지. 아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기대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었을 거다.


하지만 그때의 나를 지금의 나로 판단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때의 나도 나고 지금의 나도 나다. 그때는 그때 나름 고민해서 결정한 일이었을 테니, 지금의 기준으로 그때를 판단한들 마음만 쓰릴 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지금 뭔가 달라졌을 텐데 하는 마음을 쉽게 접기 어려웠다.


오늘도 아침부터 하늘이 잔뜩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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