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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Apr 24. 2024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지난주 늦은 밤, 평소 걷던 길을 뛰다가 튀어나온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졌다. 팔과 손, 다리 여러 군데에서 상처가 나고 피가 났다. 아프고 쓰라렸다. 누가 보지 않나 주변을 살피며 서둘러 옷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이 나이에 애들처럼 넘어지다니, 이게 뭐람.' 


당황스러웠다. 저녁 무렵에 있었던 일이 신경이 쓰였는데, 골똘히 생각하느라(정확하게는 불편한, 불만스러운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평소 자주 다녀 익숙한 길인데도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그나마 이 정도인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마음이 복잡하면 몸도 마음에 영향을 받는다. 뛸 때는 뛰는 것만, 일할 때는 일만, 쉴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무념무상으로 있어야 한다. 뭘 할 때 다른 무엇을 가지고 오면 오늘 같은 일이 생기고 마는 것이다. 다른 일에 정신이 팔리면 늘 가던 익숙한 길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자칫 지금 하는 일을 그르칠 수 있다. 정신 차리라는 말은 그래서 나왔는지 모른다.


한편 넘어질만하니, 아니 넘어져야 하니 넘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돌부리에 걸려도 뜻이 있으니, 지금 이 상황은 나에게 분명한 메시지일 거라는 생각이다. 넘어진 사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넘어졌는지였다. 


짐작이 가는 것이 없진 않았다. 어쩌면 이 상처는 더 큰 충격을 대신해서 생긴 사소한 생채기일지도 모른다. 아픈 건 상처가 아니라 완고하고 여전히 바뀌지 않는 나의 모습이었다. 되돌아오는 길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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