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하면서 보니 초록이 한창이었다. 봄의 끝자락, 곧 여름이다. 사람들의 옷차림에서도, 바람에 실려온 공기에서도 여름이 느껴졌다. 봄이었고 여름이었던 어느 한때가 내 곁을 지나가고 있었다.
흘러가는 것, 자연에만 흐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시시각각 나도 흘러가고 있었다. 소멸을 향해서... 탄생이 있으면 소멸이 있고 소멸이 있어야 탄생이 있는 것이다. 새로운 물결에 나를 양보하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언젠가 나를 위해 자리를 비워주었던 사람들처럼, 나도 그래야 하는 것이다. 중심에서 주변으로 더 먼 주변으로 서서히 옮겨가야 하는 것이다.
초록이 물씬 풍기는 봄 풍경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이 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곱고 아름답게 늙는 비결이라고. 봄이 가면 여름이 오듯 분명히 나에게 맞는 또 다른 시절이 열릴 것이라고. 그 시절을 충실히 살아내면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