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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May 28. 2024

실수를 통해 나를 돌아보고

지난 주말 실수한 저의 이야기입니다. 토요일인데도 아침 일찍 눈이 떠졌습니다. 더 누워 있기도 그래서 책을 읽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 작고한 폴 오스터가 그의 소설 <공중곡예사>에서 한 말입니다.


"결핍에 대해서는 그런 법이다. 뭔가가 부족하면 우리는 끊임없이 그것을 갈망하면서 속으로 '만일 그걸 가질 수만 있다면 내 모든 문제가 풀리게 될 거야'라는 말을 하지만 일단 그것을 얻고 나면, 갈망하는 물건이 손에 들어오고 나면, 그것은 매력을 잃기 시작한다. 다른 욕망들이 고개를 들고, 다른 부족한 것들이 느껴지고, 우리는 어느 새엔가 조금씩 조금씩 원위치로 돌아가게 된다."


이 글을 읽고 트위터에 남긴 제 글이 이렇습니다. '원하는 것이 손에 들어오는 순간 매력을 잃는다. 결혼하기 전에 그렇게 좋았던 사람이 결혼한 후에는 시큰둥해지는 것도 비슷한 이치일지도. 그러니 얻었다고 해서 너무 좋아할 것이 아니고 얻지 못했다고 비관한 일도 아니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다. 삶의 기쁨은 무엇에 포커스를 맞출 것인지에 달렸다.'


그러곤 산책을 나갔습니다. 집에 돌아와 트위터를 보니 아까 올린 글에 이런 글이 달렸습니다.


'결혼은 두 사람이 같이 새로운 가정을 꾸리겠다는 약속이지 여자나 남자를 얻는 의식이 아니다.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니 놀랍다.'




순간 당황스러웠습니다. 제 글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선뜻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저 비유는 결혼하기 전에 사랑한다고 수없이 고백했던 연인들도 막상 결혼해서 함께 살면 서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어서 썼던 것입니다. 오히려 결혼 후에는 처음 가졌던 사랑이 서로에 대한 신뢰와 배려, 존중이라는 또 다른 차원의 사랑으로 승화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욕망의 포커스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혹여 남자 입장에서 저런 표현을 한 것이 아닌가 오해한 것 같아서 남자 입장에서 쓴 글이 아니니 어떤 부분이 문제가 있는지 알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얼마 있다가 답이 왔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문장이 이어져 그런 뜻이 되지 않나요? 남자 입장에서 썼다고 하지 않았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가만히 제 글을 다시 되짚어봤습니다. 이해가 갔습니다. 그분의 지적처럼 무엇을 얻고 안 얻고의 문제를 결혼에 비유한 것은 적절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스러운 결혼이 서로를 얻는 의식이 아니라는 말,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결혼은 두 사람이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약속이며,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관계를 구축하는 과정이니까요. 이 점을 간과했기 때문에 그분이 불편함을 느낀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제 실수를 인정하고 비유가 적절치 못했다고 바로 사과했습니다.


폴 오스터의 저 글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그 한계에 대한 지적입니다. 저는 더 나아가 뭔가를 얻으면 잃는 것도 있으니 너무 얻는 것에 집중하지 말고 그 이면도 봐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잃으면서 새롭게 얻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면 욕망의 한계를 극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도였습니다.


아무튼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제 글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소통의 중요성과 민감한 주제에 대한 표현에 더 신중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깨달음을 주신 그분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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