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변명할 거리를 찾기 어렵거나 또는 속속들이 말하기가 구차해서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상대방이 그런 상황이라면 속아주는 것이 좋다. 적당히 따지지 말고 넘어가 주는 것이다. 따지고 들면 속이야 시원하겠지만 상대는 더 곤란해질 테고, 곤란해하는 상대를 보는 나도 불편해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모든 일을 꼬치꼬치 따지고 들었다. 잘못한 사람들의 죄를 추궁하는 검사라는 직업적인 특성이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별로 좋았던 기억이 없다. 직업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사무실을 벗어나면 더 이상 검사가 아닌데도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했다. 매사에 시시비비를 따지고 드니, 누군가는 불가피하게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변명하다가 거짓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잘못 말했을 수도 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한 번은 친구가 약속 시간에 많이 늦은 적이 있는데, 아무런 연락도 없었던 것에 기분이 상해 왜 늦었는지 꼬치꼬치 따졌다. 친구는 오는 도중에 교통사고가 났다고 변명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단순히 약속 시간을 잊은 것이었다. 그는 미안해서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사람들에게 무조건적인 진실을 요구하기보다는 때로는 상황을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아마 검사로서 수사를 할 때도 조사를 받으러 온 사람들에게 그랬던 것 같다. 일반적으로 죄를 지은 사람들은 검사 앞에 오면 일단 거짓말을 하고 보거나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는 성향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사람들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피곤했을지,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더 친절하고 부드러워지려고 노력한다. 넘어갈 일은 넘어가려고 하는 것이다. 열받는 일은 대부분 사소한 일들이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사소한 일에 성을 내면 나만 피곤해진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특히 나에게 적대적이거나 불친절한 사람에게까지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다. 이 역시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거나, 상대의 장점을 보지 못하고 흠만 보면서 그 사람이 미워지고 싫어지는 것은, 결국 그를 이해하려는 내 노력이 부족한 탓이다. 나도 완벽하지 않으면서 상대가 그러기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상대방의 장점을 보려고 노력하면 사람들과의 관계도 훨씬 더 원만해진다. 이는 나 자신을 위해 필요한 변화이기도 하다. 내가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도,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