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사)대한사랑과 세계환단학회가 공동 주최한 「가야사 광복의 역사문화혁명을 시작한다」라는 행사가 유튜브로 중계되어 여기저기 엿보는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나는 여태까지 가야에 대해서는 김수로왕과 허왕후의 로맨스, 가야 건국에 대한 이야기 등을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 일본의 ‘임나일본부’ 주장이 무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일본에서는 가야가 곧 임나일본부이고, 4-6세기에 그들의 식민지라고 주장한다니 말이다. 그러면 15세기의 임진왜란이나 19세기 말의 정한론(征韓論)이 그들 입장에서는 바로 ‘옛땅 찾기’라고 주장하는 격인데 이것은 참 기막힌 이야기 아닌가?
그런데 역사적 근거가 별로 없어 보이는 걸 역사라고 배우는 일본 학생이 불쌍했고, 이렇게 역사 왜곡이 현재진행형인데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도 한심했다. 그런데 가장 한심한 게 나이 들어 역사공부를 시작한 나 자신이다. 역사를 바라보다 보니 옛날에 알고 있다고 생각한 모든 게 온통 먹통이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일제 35년(1910~1945)과 민정 35년(1987~2022)
역사에 관심을 가진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가 35년, 종전 권위주의 정부에서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민선 정부로 바뀐 지 올해로 꼭 35년이다. 이걸 민정(民政)이라고 부르던가. 두 기간이 공교롭게도 35년으로 같았다.
일제 35년
일제는 1905년에 대한제국(조선)을 보호국으로 만들고 1910년에 강제 병합하고는 35년간 이 땅에 있었다. 그 사이에 1910년 10월부터 전국 약 3만 6천 개의 지명을 바꿨고(창지개명, 創地改名), 1925년부터 1938년까지 조선사편수회에서 35권의 조선사를 편찬한다(역사조작).
1940년대에 들어서면 사람 이름을 모두 일본식으로 바꾸라고 강요했고(창씨개명, 創氏改名), 한글(조선어) 사용을 금지했고, 일본군과 종군위안부·강제징용 등으로 조선을 인적, 물적으로 완전히 없애 버리려 하였다.
영토 부분이다. 러일전쟁 중이던 1905년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하였고, 1909년 간도협약으로 간도지역을 청에 넘겨주면서 남만주 철도 부설권 등을 대가로 챙겼다.
그런데 일제 말기에 들어서며 나라 찾기가 이제 틀렸다고 생각하여 사람들이 어쩔 수 없다며 친일로 돌아서는데 갑자기 광복을 맞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래저래 친일과 반일을 가르기도 쉽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전혀 살아보지 못한 시간이기에 앞으로 알아가려 한다.
민정 35년
그런데 대통령을 직선하는 민선 정부가 들어선 1987년부터 올해(2022년)까지 35년으로 일제 강점기와 같은 시간이 지났다. 내가 직접 살아온 시간 동안 우리는 선진국으로 발전하였다. 지난 35년 동안 중진국에서 세계 경제력 10위, 국방력 6위의 나라가 되었고, 나도 나름 국가발전에 기여했다고 자부한다.
따져보면 우리 세대는 6.25전쟁의 폐허를 막 벗어나 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까지 살아온 역사의 증인이다.
이번에 대선과 지선 결과, 여야가 바뀌었다. 나는 정치하는 사람들의 보수·진보라는 칸막이가 무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런데 지난 35년 동안 누가 정권을 잡았나 살펴보니, ‘보수’가 20년, ‘진보’가 15년 동안이었고, 이제 ‘보수’ 쪽이 다시 정권을 잡은 거라고 이해하면 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35년 동안 등장한 역대 정부들은 한결같이 제대로 역사를 챙기지 않았다. 아직도 조선총독부가 만든 국사책을 우리 학생들이 배우도록 하고 있다면, 크게 잘못된 일이 아닌가.
국사 학습의 기억
나의 국사 학습 경험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쯤 동네 서당을 다녀 한자를 좀 아는 상태에서 국사를 배웠다. 그런데 왜 그런지 국사가 어렵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주가 우리 땅이라는데 제대로 설명이 없고, 평양이 고려의 서경(西京)이라는데 방위상 서경이 아니라 북경(北京)인데? 동해안 철령위가 있는데 이성계가 왜 압록강 위화도로 가지(?) 등등 도대체 미스터리 투성이인데도, 그냥 달달 외워 시험을 보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요즈음 역사책이나 유튜브를 보니, 이제까지 배운 역사가 다 이상하고, 그러다 내가 블랙박스에 빠져버렸다. 유튜브 등에서 느끼는 감정은 ‘정말 지금까지 만들어진 역사는 조작이 아니라 숫제 소설이고 창작’이라는 것이다.
지금 북쪽은 중국(중공)의 동북공정이, 남쪽은 일본(일제)의 임나일본부가 협공하는데, 역대 우리 정부가 해 온 <역사 바로 세우기>는 겨우 ‘조선총독부 건물 폭파’, ‘독립기념관, 전쟁기념관, 임시정부 기념관’ 등 외형적인 것에만 급급해 온 것이다.
그나마 일본 쪽에는 종군위안부 또는 강제징용에 대한 보상 또는 이 부분 역사교과서 개정 요구 등이라도 한 것 같은데, 어찌 된 게 중국(중공)에 대해서는 동북공정에 대한 항의 등 어떤 공식적 조치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사이에 중국(중공)은 만리장성을 한반도 안까지 끌어다 놓고, 고구려· 발해 등 동북지방에 있었던 왕조는 모두 자기네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하고, 우리 한복·김치·단오 등 문화까지 자기네가 원조라고 주장한다. 한편 일본은 우리 남부지역에 약 200년간 자기들이 지배한 임나일본부가 있었고, 신라·백제를 지배하고 고구려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는 우리 국사교과서의 잘못된 기술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것부터 고쳐야 한다.
다시 『반일종족주의』를 살펴보다
며칠 전 어떤 단체가 독일에 가서 위안부 소녀상 철거를 주장하였다는 기사가 있기에, 다시 『반일종족주의』를 읽어보고 있다.
그동안 ‘민족’, ‘인민’이나 ‘국민’이란 말은 들어보았는데, ‘종족’이란 말은 내게는 낯설었다. 사전을 찾아보니 이건 좀 모멸적인 표현이라는 느낌이다. 그런데 자기도 속해있는 집단인데 여기다가 종족이라고 칭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나는 민족은 문화지만 종족은 원시(문화민족, 원시종족)라는 기분이 드는데 말이다.
종족 (種族)
1. 같은 종류의 생물 전체를 이르는 말.
2. 조상이 같고, 같은 계통의 언어ㆍ문화 따위를 가지고 있는 사회 집단.
이번에 『반일종족주의』를 비판한 『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에서 읽은 몇 가지를 적어본다.
‘반일종족주의 제10장 <애당초 청구할 게 별로 없었다> 편에서 주익종은 1946년 현재 일본인들이 한반도에 두고 간 재산이 52억 달러였으며 이것은 한반도 총재산의 85%였다고 말한다. 이는 식민지배 중에 산출된 생산물의 대부분이 일본인 수중에 들어갔음을 의미한다.’(40쪽)
다음은 이 책이 중국과 우리의 친일청산을 비교한 부분이다. 우리는 제대로 친일청산을 하지 못했지만, 중국은 그런대로 친일청산을 했다고 보는 모양이다.(51~52쪽에서 발췌)
‘중국에서는 친일청산이 이루어졌다. 2007년에 <<중국학보>> 제55집에 실린 박상수 고려대 연구교수의 논문 <중국의 친일한간 청산 일고(一考)>는 1948년에 발간된 <<중화연감>>을 기초로 1945년 11월부터 1947년 10월까지 국민당 정부의 검찰은 45,679건의 한간(漢奸) 안건을 처리했다. 기소 3만 185명, 사형 369명, 무기징역 979명 등이었다.’
‘남한에서는 친일파에 대한 사형집행이 한 건도 없었다. 징역 등의 신체형 선고는 14건 있었다. 하지만 그나마도 제대로 집행되지 않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국민당 정부는 비록 불철저하나마 친일청산을 실시했다. 남한과 비교하면 국민당 정부의 친일청산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임나일본부설에 대해서
임나일본부가 가야지역에 있었다는 주장을 알기 위해, 남창희의 『한일관계 2천년』(상생출판, 2021 재판 발행)을 찾아보았다. 이 책에는 일본의 정한론(征韓論)의 기원은 임나일본부설에서 기인한다고 적혀 있다. 몇 구절을 인용한다.(58~59쪽에서 발췌)
‘요시다 쇼인에서 사이고 타카모리를 거쳐 이토 히로부미까지 이어진 한반도에 대한 인식에는 정한론의 논리
구조가 작동했다. 과거에 일본에 복속되어 조공을 바치던 나라인데 건방지게 대등한 대우를 요구하므로 버릇을 고쳐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17세기 국학파들은 712년에 편찬된 『고사기』와 720년 편찬된 『일본서기』를 정한론의 근거로 삼았다. 특히 일본서기의 임나일본부 관련 기사를 실제 역사로 믿고 조선침략의 명분을 찾았다. 임나일본부라는 것은 369년 일본 신공황후가 가야 7국과 4읍을 정벌 후 설치했다는 식민통치기관을 말한다. 이후 562년 신라에 의해 가야 지역의 임나일본부가 멸망할 때까지 약 2백 년을 존속했다고 한다.’
‘실제 일제 강점기 일본 고고학자들은 가야 지방의 고분을 마구잡이로 발굴하여 가야에 임나일본부가 있었다는 증거를 찾으려 했다. 35년이라는 긴 시간이 주어졌으나 근거를 찾지 못하였고 결국 전후 임나일본부설은 일본에서도 폐기되었다’
일본은 지금도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고, 자기네 국사교과서에 반영하여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모양이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 우리 학계가 아직도 적극적으로 반론 제기를 하지 않는 모양이다. 여태껏 나는 일본이 왜 그러는지 우리 학계는 또 왜 그리 소극적으로 반응해 왔는지 모르고 있었다. 앞으로 살펴보아야 할 과제다.
『무엇이 역사인가』 린 헌트(Lynn Hunt)
정치와 역사에 대해 기술한 책이 있어 소개한다. 전부터 유명한 『역사란 무엇인가』(E.H.카)와 이름부터 비슷한 『무엇이 역사인가』(린 헌트(Lynn Hunt) 지음, 박홍경 옮김, 프롬북스, 2019)라는 책이 있었다.
원제는 ‘역사가 왜 중요한가(History, Why It Matters)’이다. 번역본의 부제는 「역사 읽기의 기술」로 되어 있다.
여기에 정치와 역사의 관계에 대해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었다. 이 책은 역사조작이나 왜곡 문제가 특정한 시대나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정치가 있는 곳에는 늘 역사조작이나 왜곡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몇 구절을 옮겨 적는다.
‘온 세상에서 역사가 문제다. 정치인들은 역사적 사실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온갖 집단들이 유적의 운명을 놓고 갈등을 벌인다. 관료들은 역사 교과서의 내용을 조사하고 전 세계적으로 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이 급증하고 있다. 역사박물관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는 현상에서 알 수 있듯 우리는 역사에 사로잡힌 시대에 살고 있다.’(9쪽)
‘기념물은 언제나 정치적 목적으로 제작되며---권력에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종교적 변화나 정권의 변화에는 기념물의 제작과 더불어 과거 기념물의 파괴가 뒤따른다.’(22쪽)
‘역사교과서가 끊임없이 개정되지만 논란은 가열될 뿐이다. 2015년 도쿄의 주지사 선거에 출마한 한 후보자는 “일본은 패전국으로서 승리자들이 강요한 역사를 가르칠 뿐이며, 독립국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강요된 역사에서 벗어나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은 침략국이 아니며 1937년 중국 난징에서 악명 높은 학살을 저지르지도, 한국 여성들을 강제로 일본군 ‘위안부(성노예)’로 동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25쪽)
정치가의 역사학에서 시민의 역사학으로
지금껏 배운 역사가 이렇게 엉뚱한데, 여태껏 이걸 외우고, 점수를 따서 학교를 진학하고, 공무원 시험을 보곤 한 것을 지공대사(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나이가 된 사람)가 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된 점에 대해, 스스로의 무관심부터 많이 후회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여기저기 많은 시민들이 현재 국사교과서에 문제가 많다고 주장하는 것 같은데 정부 당국자(누가 책임자인지 모르겠다. 교육부장관인지 국사편찬위원장인지)의 언급이 거의 볼 수 없다는 게 이상하다.
그리고 유튜브 등에서 볼 수 있는 역사 프로그램(KBS 역사스페셜 등)이 요즈음에 제작된 것은 거의 없고, 대개 2천 년대 초에 방영된 것을 게재해 놓았는데, 그 후에는 공영방송 등에서도 역사 프로그램 자체를 없애 버린 게 아닌지 궁금하다.
기억나는 것은 박근혜 정부에서 국사를 국정교과서로 하는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일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문제가 많은 국사를 나라에서 정한 역사, 국정(國定)이라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이걸로 시험을 치게 하려 했다는 것에 한심하다를 넘어 소름이 끼친다.
누군가 ‘역사는 핵무기보다 무섭다’는 말을 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말도 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역사이고, 누구를 위한 교과서인가? 정치가나 사이비 학자·교사의 역사가 아니라 ‘시민을 위한, 시민에 의한, 시민의 역사’가 필요하다.
기득권 없애기라는 말이 있다. 조작되고 왜곡된 역사에 대해 스스로 잘못인 걸 알면서도 그대로 주장하는 것은 기득권 주장도 아니고 거짓말쟁이다. 누구든지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아 나가는 것이 올바른 삶의 자세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