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지리적 경계에 대해 ‘한반도’ , ‘북쪽이 막혀 있어 사실상 섬’ 또는 ‘동북아시아에 있는 나라’라고 정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스스로 바른 역사와 전래의 강역을 부정하는 것이다.
오늘은 우리의 저명한 학자뿐 아니라 언론에서 관용적으로 사용하는 ‘한반도’ 또는 ‘북쪽이 막힌 사실상 섬’ 또는 ‘동북아 국가’가 얼마나 잘못되었고 터무니없는 말인지 살펴보려 한다.
영토와 역사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자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 행위에 대해 우리는 화를 낸다. 그런데 중국과 일본은 우리를 비웃고 있을 것이다. 고려가 조선으로 바뀌면서 조선은 스스로 옛날 역사서를 다 없애고 역사를 조작해 놓았다. 그러다가 세월이 지나 일제강점기에는 물론, 광복 후 지금까지도 우리 국사교과서는 일제(조선총독부)가 식민지배를 위해 치밀하게 조작한 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1910년 일제는 대한제국을 강점하자마자 전국의 약 3만 6천 개의 지명을 바꾸어 놓았다. 그중 몇 개나 옛날 지명을 되찾았을까. 우리 마을과 고장, 산내들의 지명이 바뀌었으니 그곳의 역사도 다 없어져버린 게 아닐까.
19세기 무렵 우리의 상고(上古)에 대한 인식이 어떠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1811년(순조 11) 다산 정약용의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를 보자. 이걸 보면, 그도 이 책을 쓸 당시까지 마치 '예전의 나'처럼 제대로 역사교육을 받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우리가 동양의 한 모퉁이에 있다'고 하니 말이다. 이런 견해가 있었으니 일제가 이것을 그들의 ‘반도사관’, ‘식민사관’ 조작에 이용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나라는 동양(東洋)의 한 모퉁이에 있다. 북쪽으로는 호맥과 인접되고, 서쪽으로는 요연을 잡아당기고 있어서 옛날부터 국경의 나뉨이 일정하지 않아 경계의 땅에 침입하여 싸우는 일이 그치지 않았다. 세력이 강하면 나가서 요계를 점령하여 이맥을 호령했고, 세력이 쇠잔하면 물러가서 반쪽을 지키니 강토(疆土)가 찢어졌다. 이에 부여·예맥·발해·말갈이 기회를 엿보아 나누고 버티고 각각 점령해서 우리나라 전체가 문득 하나의 바둑판처럼 어지럽게 되었다.
요·금·몽고 이래로 기자와 고구려의 옛 나라를 다시 판도(版圖)에 넣을 수 없어서, 심지어 성조(聖祖)의 능침의 발상한 땅이 이역(異域)에 밀려나 있게 했으니 어찌 지사(志士)들의 끝없는 한이 되지 않으랴?’
『아방강역고』(정약용 지음 / 이민수 옮김, 범우, 2021)의 서(序) 13~14쪽에서
우리와 과거 중국의 경계는 늘 대륙에 있었다
우리와 과거 중국(국가 이름으로 중국이 사용된 것은 20세기 들어서부터지만 편의상 ‘중국’으로 쓴다)의 경계는 고려와 조선에 이르기까지 분명히 대륙에 있었다(나는 3국 통일 후의 신라 강역도 대륙에 있었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후금(後金)〔나중에 청(淸)나라〕이 건국되면서, 광해군 때에는 명(한족)과 후금(만주족) 사이에서 중립을 지켰으나, 광해군을 폐하고 등장한 인조가 후금을 배척하면서 그들이 두 차례 조선을 침입하기에 이른다〔정묘호란(인조5, 1627), 병자호란(인조14, 1636)〕.
'삼전도의 굴욕' 후 그들은 청과 조선의 경계에 대해, 만주는 자기네 조상이 출발한 성스런 땅이니 출입을 금지한다는 '봉금(封禁) 지역'으로 선언한다. (이때 수많은 백성을 끌고 갔다. 이때 끌려간 여성 중 일부가 나중에 고향에 돌아온 ‘환향녀(還鄕女)’인데 당시 사회는 그들을 ‘화냥년’이라고 모독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봉금 지역'이란 것은 조선뿐 아니라 청나라도 이 지역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것이었고, 그런 탓에 19세기까지 이 지역에는 인구가 매우 적었다. 여기서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있는 섬이라는 뜻(?)인 '間島'라는 이름이 생긴다.
호란(胡亂) 이후 국력이 약한 조선으로서는 청(淸)의 이런 중립지대(안)에 어쩔 수 없이 굴복했지만, 이곳을 청의 강역으로 인정한 것이 아니었고, 그 후에도 간도(북간도, 서간도) 지역은 우리 땅으로 확실히 파악하고 있었다. (담당 관청과 관리가 있었다)
청(淸)은 원래 만주족의 나라다. 그런데 중국의 국부라는 손문(孫文, 쑨원)조차 만주족의 청나라는 자기네 역사가 아니라며 철저하게 만주족 타도를 외쳤고, 역사에 편입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혈통적으로 오히려 우리와 가까운 만주족이 흩어지고 나니, 먼저 청나라를 자기네 역사에 편입하더니, 이제는 동북공정으로 고구려, 발해까지 자기네 역사라며 집어삼키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1909년에 간도를 빼앗겼다(청일 간도협약)
흔히 국가의 3요소로 국민·주권과 영토를 이야기한다. 국민(國民)은 한 나라의 구성원이고, 주권(主權)은 스스로 통치할 수 있는 권리이며, 영토(領土)는 나라의 통치권이 미치는 범위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1948년 제헌헌법에서부터 영토조항을 두고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영토라고 정해 놓았다. 그런데 예전 임시정부 헌법을 보면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가 아니라 ‘역사상 인정한 고유한 판도’로 되어 있었다.
「바른 역사와 우리 강역」을 위해 이 부분을 제대로 살펴보자.
일제가 대한제국을 합병하기 직전인 1909년 9월 4일 일본은 청나라와 간도협약을 맺고 그때까지 우리 땅이던 간도를 청나라에 넘겨주었다.
앞서 1905년 고종황제가 승인하지 않아 국제법상 무효인 제2차 한일협약(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해놓고는, 1909년에 정작 당사자인 우리를 빼고 일본과 청이 맺은 것이다(이게 정식 조약일 수 있나?).
일제는 이 협약으로 간도를 청나라에 넘겨주고, 그 대가로 만주(안주-봉천)의 철도부설권 등을 청나라로부터 얻었다. 강도가 남의 것을 팔아먹고 자신이 이익을 취한 것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를 해도 시원찮은데, 위탁관리하던 영토를 슬그머니 남에게 넘기고 대가까지 받았다. 그런데 정작 우리도 북한도 여태껏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게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진 민족인가? 불과 100여 년 전 멀쩡한 땅을 빼앗기고도 멍청히 있는 게 정상인가 말이다.
현재 북한의 경제력은 남한의 2%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핵무기를 가졌다며 설치는 그들이야 사실상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중국에서 지원받고 있으니 무얼 해보려 해도 할 수 없는 처지라 어쩔 수 없다고 치자.
우리는 지금 세계 10위의 경제력, 세계 6위의 국방력을 가진 나라다. 헌법 제3조에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가 영토로 되어있어, 북한도 대한민국에 속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정작 100여 년 전에 중국에게 불법적으로 넘어간 간도나 한국전쟁(1951년) 때 일본이 강탈한 대마도를 찾겠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이거 정말 한심하지 않은가.
대마도는 역사적으로 우리땅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과 대마도를 반환하라고 계속해서 요구하였다. 그런데 일본은 우리가 정신없던 한국전쟁 당시(1951년이라고 한다)에 대마도에 자위대를 진주시켜 슬그머니 점령해 버렸다. 그 후 한일 국교정상화 과정에서도 이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과 주변 외국과의 영토문제에 항상 독도를 끼워 놓는다. 왜 그런지 아는가. 일본이 주변과 영토분쟁을 일으키는 곳은 러시아와 사이에 북방 4개 섬, 중국·대만과 사이에 센카쿠·댜오위다오 제도가 있다. 그런데 여기에 독도를 끼워 놓는 것은 바로 대마도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최근 인터넷에서 국제사법재판소가 미국과 일본 사이의 영토분쟁(오가사와라 제도) 반환 문제에 관한 결정을 하면서 증거로 옛날 프랑스가 만든 지도를 사용했는데, 여기에 울릉도·독도뿐 아니라 대마도까지 우리 영토로 되어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내가 알기로는 대마도가 우리 것이라는 증거는 이것 말고도 매우 많다고 한다.
대마도는 부산에서 가까운 섬이다. 부산에서 바로 건너편에 보인다. 부산에서 49킬로미터, 일본 열도는 그보다 3배나 멀다. 역사적으로도 늘 우리에게 예속되어 있었다. 이런 섬이 어떻게 우리땅이 아닐 수 있겠는가.
오늘의 시대정신(zeitgeist)
우리의 역사와 지리 강역은 동아시아 전체, 즉 중국 대륙과 대만, 몽골과 동부 러시아, 일본과 유구(오키나와)에 걸쳐 있다. 이런 우리 전래의 강역을 동북아시아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가 바른 역사와 강역을 왜곡하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창간된 신문의 명칭을 살펴보자. 그때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였다. 동북아일보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어디’ 사는가? ‘한반도’, 그것도 둘로 나뉘어 남쪽 반에 살고 북으로 철조망에 가로막혀 가지 못하는 ‘사실상 섬나라’라고. 그럼 ‘한반도’라는 말이 언제 시작되었나? 일본은 임진왜란 때에는 우리를 가로질러 명나라로 쳐들어간다고 하더니, 19세기에는 조선을 집어삼키려는 정한론(征韓論)을 펴면서 말을 만들었다.
앞으로 우리는 한반도라는 말부터 절대 쓰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동아시아 국가'라면 몰라도 동북아시아 국가라는 말도 부적절하다. (일본은 '대동아공영권' 등 동아시아라는 말을 쓰고 있고 중국은 동북 3성 등 만주지역에 대해서 '동북'이라고 부른다)
강역(疆域)이나 판도(版圖)라는 말을 생각해보았다. 영토는 헌법이나 국제법 등 법적인 용어이고 강역이나 판도는 단순한 일상 용어일까? 나는 강역이나 판도라는 말에는 역사와 이념이 결합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강역 또는 판도를 찾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새로 출범한 정부가 이념이나 시대정신(zeitgeist)을 내지 않고, 국가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국익’이나 ‘공정, 상식, 실용’을 내세운 것에 대해 나는 실망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어떤 언론도 이걸 제대로 지적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이게 대체 언론인가?
왜 우리는 미국처럼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같은 말조차 만들지 못하는가.
여기에 내 생각을 말하려 한다.
통일과 세계평화의 그린 그레이트 게임(Green Great Game)
우리는 세계 10위의 경제력, 6위의 국방력을 가진 나라다. 그런데도 77년째 분단국으로 남아 있다. 이제 우리는 ‘통일과 세계평화’의 <그린 그레이트 게임>을 해야 한다.
나의 시대정신은 ‘통일과 세계평화’의 <그린 그레이트 게임(Green Great Game)>이다. 남북한이 통일되고, 동아시아에 평화가 찾아오면 지구 전체가 평화롭게 된다는 것이다.
예전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 있었던 ‘그레이트 게임’은 영국과 러시아가 중앙아시아를 놓고 벌인 파워게임이자 패권경쟁이었지만, <그린 그레이트 게임>은 평화를 이루고 서로 화해하는 과정을 말한다.
<역사 바로 세우기>는 이것부터
정부 바뀔 때마다 하는 <역사 바로 세우기>가 위안부 · 강제징용 문제 등에 멈추어 있다. 먼저 우리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부터 제대로 고쳐야 한다. 식민사학·반도사학, 소중화(小中華)와 사대주의에 찌든 국사교과서를 바로 잡는 일에 새 정부가 적극 나서길 바란다.
우리는 한반도가 아니라 넓은 땅, 대륙에 살던 ‘대륙 민족’이다. 일본이 1905년 러일전쟁의 와중에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시키고, 청과의 비밀협약(1909년)으로 청나라에 간도 지역을 넘겼는데,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 후 74년인데도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조차 하지 않는 외교(?)가 있다니.
일본에게 대마도 반환을 요구하자. 그들은 1905년 러일전쟁 중 독도를 슬쩍해놓고는 자기네 땅이라 우기는데, 역사적으로 우리땅이 분명한 대마도 반환을 요구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런 점에서 우리 역대 정부는 모두 친일 정부라고 나는 단언한다)
일본이 틈만 나면 독도를 언급하는 것은 바로 대마도 때문이다. 나는 전부터 일본이 독도에 대해 어떤 군사적 행동을 하면 우리는 즉시 대마도부터 점령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왜냐하면 원래 우리땅이기 때문이다.
정말 급한 일이다. 우리 기억이 다 없어지기 전에 ‘땅이름 되찾기’를 해야 한다. 일제가 1940년대에 실시한 창씨개명(創氏改名)에 대해서는 대개 우리 이름을 되찾았다. 그런데 1910년대에 일제가 이곳을 영원히 지배하려고 전국 땅이름을 제멋대로 고쳐 역사를 단절시켜 놓은 창지개명(創地改名)에 대해 제대로 실상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무려 3만 6천 건이라 한다)
이제 기억이 거의 사라지고 기록도 없어져 간다. 몇 년 전 주소를 가로명으로 바꿔 쓰자는 캠페인은 그리 열심히 하더니, 마을·고장과 산·내·들의 예전 이름을 되찾자는 캠페인을 왜 하지 않는가. 지명은 곧 역사다. 자기 역사조차 제대로 찾지 못하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역사 바로 세우기>는 ‘땅이름 되찾기’ 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