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0클럽’의 지정학: 안세경세, 평화와 공존

by 신윤수

1. ‘3050클럽’의 지정학은 안세경세(安世經世)


우리가 ‘3050클럽’에 속한 나라라는 걸 아는지 모르겠다. ‘3050클럽’은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고, 인구가 5천만 명을 넘는 나라로서 전 세계에 7개밖에 없다. 누구나 짐작하는 나라들이지만 3만 달러, 5천만 명을 달성한 연도에도 의미가 있어 보여 여기에 소개한다.


- 일본(1992), 미국(1996), 영국·독일·프랑스(2004), 이탈리아(2005). 한국(2019)의 순이다.


이런 나라가 안보나 경제를 특정 국가(미국)와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즉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나 안미경세(경제는 세계지만, 안보는 미국)라는 전략이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안보와 경제를 모두 세게와 하는 ‘안세경세(安世經世)’이더라도 일반 시민이나 기업이 안미경세(安美經世)나 안미경중(安美經中) 전략을 선택하는 것은 별개 문제다.


우리가 안세경세를 선언하는 것은 세계 경제력 10위, 국방력 6위인 세계 중심 국가로서 당연한 선택이며, 안보·경제 현장에서 우리를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 미국에 대한 경고이고, 미국을 경원하는 북한을 평화와 공존의 협상테이블로 끌어오는 계기가 될 것이다.



2. 올해가 한미수교 140년, 한중수교 30주년이다


조선과 미국은 1882년 5월 22일 조미(朝美)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여 올해로 140주년이 된다. 미국은 우리가 전부터 천조국이라며 짝사랑하는 나라지만 요즈음 우리를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다(?)


한편, 30년 전인 1992년 8월 24일 한국과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이 정식 외교관계를 맺었다. 노태우 정부의 마지막 해라고 기억한다. 중국(중공)도 요즘 우리를 별로 탐탁해 하지 않는다.


여론조사에서 싫어하는 나라 1위가 중국(중공), 2순위 일본 순이다.(70% 이상이 중국과 일본을 싫어한다). 그 이유는 중국은 사드(THAAD) 배치에 따른 보복, 동북공정 등에서, 일본도 경제 보복과 지난 역사에 반성조차 하지 않는 국민성 등에 기인한다.


미국은 인플레감축법과 반도체법을 만들어 미국 밖(여기에 한국도 포함된다)에서 생산된 제품에 대해서는 세금 혜택을 주지 않기로 하였다. 우리가 미국을 그리 좋아하는데도, 우리를 특별 취급하지 않는 것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제재에 참가한 우리에게 거리를 두면서 차제에 북한과 중국과 편먹기를 하려 한다.


북한은 새 정부를 협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주장하는 모양이다. 이른바 ‘사면초가(四面楚歌)’ 상황이다. 사방이 모두 적으로 둘러싸인 형국이다.



3. 우리 주위를 친구로 만들자


우리는 미일중러 등 주변 4개국과 북한을 모두 친구로 만들 수 있고 만들어야 한다. 우리와 관련된 5개 당사자가 적(敵)에서 다섯 친구(五友)가 되면 ‘사면초가(四面楚歌)’에서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가 된다. 수석송죽월(水石松竹月)이던가. 옛 이야기를 살펴 보자.


가. 우리도 한때 영세중립국을 선포했다(1904년)


고종은 1897년 2월 칭제건원과 대한제국 수립을 단행했다. 그리고 러일전쟁 발발 직전인 1904년 1월 21일 국외중립을 선언했다. 지금 우리를 둘러싼 국제관계가 19세기 말, 20세기 초와 유사하다. 남북한 분단상황을 빼면 청일전쟁 1894년, 러일전쟁 1904년과 지금의 상황이 비슷하지 않은가.


고종은 1902년 중립국인 벨기에와 국교를 수립하고, 당시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스위스·벨기에의 중립국가 모델을 본받으려 했고,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박제순을 참석시켜 중립화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왜 그리 되었을까?


우리나라에서 중립국 안을 처음 주장한 사람은 개화파 유길준이라고 한다. 그는 1885년 청나라가 조선을 속국으로 지배하고 있을 때, 중국 주도의 중립화가 러시아 남하를 막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때 유길준이 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아시아의 목구멍에 위치하고 있어 유럽의 벨기에와 같으며, 국제적 지위로는 터키(지금 발칸 반도)의 소국 불가리아와 같다. 불가리아 중립화는 유럽 열강이 러시아 남하를 막으려는 계책에서 나온 것이고, 벨기에 중립은 유럽 강대국들이 상호 간 자국 보호를 위해 나온 것이다. 이를 우리가 제창할 수 없으니 중국이 주창자가 되어 영국·프랑스·일본·러시아에 요청해야 한다.”


나. 주변국들도 이때 중립국 안을 제시했다


청나라가 조선에 보낸 외교자문관 묄렌도르프(Möllendorff)도 러시아가 주도하는 조선의 중립화를 추진했다. 그런데 러시아는 여기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일본의 군사전문가 야마가타 아리토모도 일본과 중국이 주도하고, 영국과 독일이 주선하는 조선의 중립화를 주장했다. 메이지 유신의 주역 중 하나였던 이노우에 코와시는 “일본·청·미국·영국·독일의 다섯 나라가 조선을 중립국으로 삼아 벨기에·스위스의 예에 따라 타국으로부터 침략받지 않는 나라로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1882년에 일본 외무성을 통해 청과 미국에 타진한 적이 있었다.


중립화 안에 대해 청나라가 조선의 종주국 지위를 포기하려 하지 않아 실패했다. 고종은 주한 미국공사 알렌(Allen)에게도 1899년 봄 미국의 주도로 열강에 의한 대한제국의 독립과 영토보전을 보장해 달라고 했지만, 미국은 한반도 문제에 불개입원칙을 견지했다.


청일전쟁의 결과 1895년 체결된 시모노세키 조약은 ‘조선이 독립국임을 확인하고, 일본에 요동반도와 대만을 할양’하는 것이었다. 이때 청이 포기한 지역이 요동반도와 대만이다.(대만은 그때부터 1945년까지 일본 식민지였다). 그 의미를 생각해 보자.


청일전쟁의 결과로 체결된 시모노세키 조약 제1조는 청과 일본, 두 전쟁 당사국의 문제가 아니라 “청나라는 조선의 독립을 확인하고 조공(朝貢) 전례를 폐지한다”로 되어 있다. 왜 그랬을까.


1902년 영일동맹 체결 협상이 진행될 때 영국 외상이 일본의 하야시 공사에게 왜 조선을 중립상태로 하는 게 불만족인가 물었다. 그때 하야시가 했다는 말이다.


“조선인은 스스로 나라를 다스릴 힘이 없고, 열국에 의한 중립을 보장한다 해도 아무런 효력이 없으며, 내란이 언제 발생할지 모른다.”


다. 조선 분할론


중립화 논의와 별도로 조선 분할론이 대두되었다고 한다. 조선 분할론의 시초는 아관파천 후 조선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1896년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참석한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러시아 측에 조선반도를 북위 38도에서 분할해 북쪽은 러시아가, 남쪽은 일본이 차지하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러시아 외무장관이 거부했다.


그후 이토 히로부미는 러시아에 만선(滿鮮)교환론을 제의할 것을 주장했다. 만주는 러시아가 차지하고, 조선은 일본이 차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가 조선을 내놓으려 하지 않아 무산되었다.


(가-다 부분은 인터넷에서「메아리 없는 외침으로 끝난 대한민국 중립국론」(아틀라스뉴스, 김현민 기자, 2020년 2월 24일)을 찾아 발췌 인용하면서, 내 의견을 보탰다.)



라. 남북분단의 경위


1945년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남북이 분단된 경위를 잘 설명한 글이 있었다. 정말 우연히 우리가 분단되었다는 것이다.(『지리의 힘』(팀 마샬, 사이, 2016)에 167~168쪽에서)


‘역사학자 돈 오버도퍼(Don Oberdorfer) 교수는 38도선에 따라 이 나라를 임의로 분할한 것은 여러모로 불운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1945년에 미국 정부는 8월 10일의 일본 항복에만 정신이 팔려서 한반도에 대한 명확한 전략을 수립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한반도 북쪽에서 소련군의 이동이 포착되자 미 백악관은 한밤중에 다급하게 회의를 열었고 오로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발간한 지도만을 지참한 두 명의 하급관리는 북위 38도선을 손으로 찍었다. 즉 이 나라를 반쯤 내려온 소련군의 남하를 중단시킬 지점으로 북위 38도선을 찍은 것이다.

이 자리에는 어떤 한국인도 또는 한국 전문가도 없었다, 만약 있었다면, 당시 트루먼 대통령과 국무장관인 제임스 번스에게 그 선은 약 반세기 전인 1904년에서 1905년에 치른 러일전쟁 이후 러시아와 일본이 서로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를 상의하던 선이었다는 것을 알려주었을 것이다. 미국이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몰랐을 소련은 미국 측이 러일전쟁 당시 소련(러시아)의 주장을 사실상 승인했으며 따라서 한반도의 분단과 북쪽의 공산 정권도 용인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결국 거래는 성사됐고 이 나라는 분단되었다’


나는 이 글을 보면서 정말 기가 막혔다. 유럽에서는 전범국 독일, 오스트리아가 분할되었는데, 아시아에서는 전범국(戰犯國) 일본 대신 우리가 분단된 것이다. 우리가 어서 이 질곡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4. 생각해 볼 문제(중립국 선언과 국방력 강화)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현재 중립국으로 9개국이 있다고 한다.


- 중립국: 스위스, 스웨덴, 핀란드, 리히텐슈타인, 바티칸시국, 코스타리카, 투르크메니스탄, 아일랜드, 오스트리아 등 9개국


20세기에 중립국 행세를 하던 벨기에는 독일군이 침공했지만 스위스와 스웨덴은 아무도 건드리지 못했다. 왜냐하면 강력한 국방력을 가진 무장중립국이었기 때문이다.


스위스는 1499년 독립 이후 영세중립국을 표방해 오다, 1815년 빈 회의에서 국제적 승인을 받았다. 그들은 인구가 870만명인데, 상비군 2만여명, 비상근 현역병 19만여명(기초군사훈련을 20주간 받는다), 민병도 23만여명(1년에 20일 이상 훈련을 받는다)이 있고, 예비군도 집에 총을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징병제를 택하고 있고, 여성징병 문제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스웨덴에는 인구 1021만명에 상비군 38,000명 예비군 60,988명, 군대가 10만명 수준이며 징병제다.

핀란드는 인구 555만명에 상비군 3만4700명, 예비군 35만 7천명(2011)이며 징병제다.


싱가포르에 관심이 있어 살펴보았는데, 중립국은 아닌 모양이다. 인구 594만명인데 국민개병제(징병제)로서 남자는 18세가 되면 무조건 싱가포르 국적자나 영주권자도 징집한다.(병역면제나 대체복무가 일체 없다고 한다) 상비군 52,466명, 예비군 1386,000명이고, GDP중 국방비 비율 3% 이상이다, 독새우(poisoned shrimp) 전략으로 주위 나라가 침범하지 못하게 하는 전략을 갖고 있다.


우리는 남북통일 이후에도 주변 나라들을 고려할 때, 강력한 국방력을 가져야 한다. 지금 전 세계의 무장 중립국의 예를 보더라도 통일 후에도 전 인구 중 최소한 1%정도의 현역을 유지해야 한다. (남북한 약8천만명의 1%인 80만명 수준이다)


모든 국민이 국방의 의무를 최우선 의무로 여기게끔 의식을 바꿔야 한다. 나는 의무병들에게 최저임금의 반 수준(월 100만 원)을 지급하고, 여성 병역의무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징병제는 국회가 병역법을 바꾸면 당장 실시가 가능하다. 병역법 제3조 제1항.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헌법과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 여성은 지원에 의하여 현역 및 예비역으로만 복무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한편 헌법 제39조는 모든 국민에게 국방의무 부과)


현재 북한, 이스라엘, 스웨덴, 노르웨이에서는 여성도 의무복무를 한다. 현재 유럽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사태로 병역의무강화, 최신 무기 도입 등 국방력 강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도 중형 항공모함, 핵 추진 잠수함 건조와 KF21 전투기 스텔스화 등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국방력 강화를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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