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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윤수 Jan 07. 2023

北 무인기와 어처구니 이야기

한겨울에, 미운 것들이 쳐들어오고 있다. (북한 무인기, MBC 자료 사진에서)

그리고 미세먼지다.


토요일은 으례 등산을 가는 날인데, 오늘 날씨를 보니, 기온은 영상인데, 미세먼지가 나쁨, 초미세먼지가 매우 나쁨이다. 나이 들면서 특히 미세먼지에 신경이 쓰인다.     


오늘은 산행시간을 오후로 바꾸어야겠다. 비가 조금 온다니 공기가 좀 좋아지지 않을까. 그 사이 요즈음 유행하는 이야기를 좀 써보려 한다. 무인기와 내가 좀 어쩌고 싶어하는 사람들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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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습 당했지만 공습경보는 없었다(2022년 12월 26일)     


내가 실제 경험한 공습경보는 두세 번 정도로 기억한다.     

하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1972년)다. 이때 나는 이때 청와대와 가까운 종로구 통인동 이모 댁에 기숙하고 있었다. 어느날인가 낮인데 요란한 공습경보가 울렸고, 대공화기인지 두두두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때 종로에선가 어디선가 누군가 죽었거나 다쳤거나 했던 거로 기억한다.      


두 번째는 내가 현역 군인(해병대 중위)이던 때, 부대 안에서 겪은 일이다. 1983년 5월 5일 어린이날이다. 70여일 전에 이웅평이 미그기 몰고 귀순하는 바람에 전방에는 경계강화가 실시되던 시점이었다. 심양에서 상해로 가는 중국 민항기를 납치범 6명이 권총으로 위협, 대만으로 가려다가 북한상공을 거쳐 휴전선 넘어 춘천인가에 14시경에 불시착하였다.


이때 공습경보를 들었다. 최전방부대의 공습경보다. 이때의 심정을 적은 글을 뒤에 붙였다. 내가 정말 죽는다고 느낀 순간이다.      


지난 12월 26일이 세 번째인 모양인데 이날은 공습경보가 없었으니, 이게 도대체 뭐지? 나는 점심 무렵부터는 대학로 세미나실, 오후 5시경부터는 용산 원조 대구탕집에서 있었다. 다음날에는 서울 하늘이 조금 뚫렸다 하더니, 용산 상공까지 北 무인기가 침투했다는 사실은 11일이 지난 2023년 1월 6일에야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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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 실패한 자는 용서받지 못한다     


군대에는 기본적으로 ‘작전에 실패한 자는 용서받아도, 경계에 실패한 자는 용서받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나를 포함한 모든 시민(국민+외국인)은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나라에 전적으로 의지한다. 그런데 서울 한복판이 뚫리고, 그것을 열흘 넘어 알게되었다면 그 나라는 정상이 아니지 않나?          


이번은 무척 심각한 상황이었다. 북한 무인기가 5대(북은 12대라고 주장한다던데?) 서울과 수도권에서 5시간에서 7시간을 오갔는데, 우리도 F15전투기, 공격헬기, 경공격기가 출동하였고, 이러다가 KA-1 경공격기 한 대가 떨어졌고 무인기는 한대도 격추하지 못했다. 그런데 공습경보는 없었다. 이에 대해 언론은 모두 입을 다물기로 작정했는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은 일에 대해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 모두 *쳤나?      


어제 보니 정부 여당 쪽이 이상한 주장을 하던데, 야당 의원이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용산 상공까지 무인기가 침투했다고 주장하니, “그걸 어떻게 아느냐” 또는 “미리 이북과 내통한 것 아니냐”라고 하더니, 1월 6일이 되니(11일 만에) “12월 26일에 용산 상공이 뚫린 모양이다”라고 말을 바꾸는 걸 보니 어처구니가 없다.      


얼마전 11월 2일에는 울릉도 지역에 공습경보를 하더니, 정작 서울 상공이 뚫렸는데도 공습경보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또 이전 문재인 정부를 핑계댄다. 이 사람들은 양심도 없나? 자기들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으니 말이다. 새 정부 들어 선제타격 운운 등 상황을 악화시킨 것에 한 역할하지 않았나?    


북한 무인기가 서울과 수도권 상공에 5시간에서 7시간 있었고, 전투기, 헬기 등이 떠서 무인기를 격추하려고 했다면, 우선 공습경보부터 발령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매뉴얼도 없나? 없다면 큰 문제 아닌가?     


그날 국군통수권자가 아침에는 개 데리고 출근하고, 저녁에는 송년회에 갔다(?)는데, 그가 북쪽으로 우리도 무인기를 넘어 보내라고 지시(?)하고, NSC는 열지 않았다고 하던데? 공습당하는데 공습경보도 발령하지 않고(시민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고), 확전 운운하는 나라가 있을 수 있냐는 것이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사람들, 즉 대통령, 국방부장관, 행안부장관 등이 이번에 어떻게 책임을 지는지 지켜보려 한다. (이런 게 바로 헌법이 정한 **사유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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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 검토     


윤통이 예전 9·19 군사합의 백지화를 선언하려는 모양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에 “북한의 도발에 대해 압도적 대응을 해야만 북한의 도발 의지가 무력화된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2일 북쪽이 쏜 미사일이 동해 북방한계선 이남 공해에 떨어져 울릉도 지역에 공습경보가 발령되자, 남쪽이 전투기를 띄워 공대지미사일 3발을 “상응 거리에 해상 정밀사격”한 상황이 대표적이다. 그날 남북 모두 9·19 군사합의를 위반했다. 12월 26일에는 우리 무인기도 북을 넘어갔다니까 피장파장이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오른쪽)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북한 무인기 비행금지구역 침범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은 김영배 의원. 연합뉴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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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복무기간을 연장하라     


현재 병역법은 현역병 복무기간이 2년(육군기준)으로 되어 있고, 남북긴장의 완화에 따라 현재 6개월이 줄어든(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결정) 상태다. 북한은 남자 10년, 여자 7년으로 알고 있는데, 남북긴장이 심각해졌으니, 군 복무기간부터 18개월에서 2년으로 원상회복되어야 한다. (대만은 4개월에서 12개월로 연장되었다)     


이것은 북한에 대한 강력한 경고조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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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을 쳐다보았다, 해병대의 추억  (2022년 6월 1일 브런치 게재 글)     


6월 호국보훈의 달이다. 우리가 선진국에 이르기까지 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들께 감사드린다. 오늘은 문득 떠오르는 군생활의 추억 중 평생 잊지 못할 에피소드를 소개하려  한다.            


1983년 5월 5일 어린이날이었다. 나는 이때 김포·강화지역의 해병대 청룡부대에 근무하고 있었다. 이날 우연히 나는 ‘이제 죽었다’는 임사(臨死)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때는 70여 일 전 이웅평이 미그기를 몰고 귀순하는 바람에 전방에는 경계태세가 강화된 시기이기도 하였다.          


야간 당직근무를 한 탓에 오전에 부대 안에 있는 비오큐(BOQ)에서 자고 나서, 점심 식사 후 테니스 코트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지하상황실에서 상황병이 뛰쳐나오며 ‘실전상황이다. 총원 전투배치하라’고 소리치고, 부대 스피커가 ‘실제 상황입니다. 지금 서울지역을 적기가 공습하고 있습니다.’고 웅웅댄다.          


그때 연병장에는 부대원들이 웃통을 벗고 반바지 차림으로 축구를 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전투배치명령에 미처 군복도 챙기지 못하고 철모에 소총과 실탄만 챙겨 들고 각자 맡은 지역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어떤 해병대원은 무거운 중기관총(캘리버 50)을 혼자 메고 대공초소로 올라가고 있었고.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이었기에 군복부터 갈아입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테니스 코트에서 비오큐(BOQ)까지는 약 200미터 정도. 만일 실제 상황이라면 전방부대 본부인 이곳에는 적의 집중 포격이 있게 되고 포탄이 날아오는 시간을 감안하면 숙소에 이르기까지 살아남는 것도 기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뛰어가다가, 어차피 ‘나는 죽었다’하고 천천히 걸으며 하늘을 쳐다보는데, 당장 머리에 떠오르는 건 ‘이렇게 죽다니 억울하다’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푸른 하늘, 꽃 피는 아름다운 계절에 (군인이 되어 총 한 방도 제대로 못 쏘아보고, 좋은 세상을 내버려 두고 등등) 죽다니 --- 이건 아니다 싶었다.     


머릿속에는 어릴 적에 고향(청주) 무심천에서 물고기 잡던 일, 어머니와 외가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던 일(아마 3~4살 정도), 그리고 이런저런 일 등 그때까지 살아왔던 인생(아마 인생의 전부)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밀려오고 있었다.           


숙소에서 군복으로 갈아입고, 부대 본부에서 당직병이 건네주는 권총과 탄창(2개)을 받고나서는 먼저 지하상황실에 들렀다. 이때도 역시 ‘서울은 현재 공습 중’이라는 방송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때 ‘옛다 모르겠다’하며 상황실 옥상에 올라가서 남쪽 서울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폭격은커녕 흰구름이 떠가는 맑은 날씨였다. 이상하다 하며 있는데 중국 민항기가 불시착했다는 소식이 들어오고, 좀 있다 보니 비상이 해제되었다.  


한편, 1983년 가을, 권총 사격장에서 겪은 사건이다. 작업모를 쓰고 45구경 권총 사격을 하는데, 마침 옆을 지나던 사격장 관리병이 “장교님 철모 좀 쓰세요”라고 하길래 화이바(방탄 헬멧, 흔히 철모라고 불렀다)를 쓰고 나서 2초 후에 내 철모가 빙 돌았다. 누군가 오발한 권총탄이 내 철모를 빗겨 맞춘 것이다.           

이런 일들이 모두 40년쯤 전인데 여태껏 내가 살아 있다니!        


나는 해병대 시절 이런저런 일들을 ‘푸른 언덕의 전설’로 기억한다. 그날 약 20초 동안 ‘나는 지금 죽었다’ 고 생각할 때 스쳐가던 파노라마와 철모에 총알을 빗맞은 밤에 잠이 오지 않아 철모의 약간 헤어진 헝겊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던 이모저모를 지금이라도 제대로 적어낼 수 있다면 아마 불후의 명작이 될 것이다.              


다음은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 중계방송을 보고 나서 써둔 글이다. 이때 나는 이제 남북통일이 되는구나 싶었고, 해병대 시절(총 40개월) 전방에서 근무했던 시간들이 내게 송두리째 달려온다고 느꼈다.          


해병대 - 통일이 된다고 기뻐서 쓴 글 -           


구름 한 점 없는 토요일

며칠 전 봄비 내려 공기가 풋풋하다

보름 앞둔 둥근달이 휘둥그레 내려다 보고

개밥바라기 별이 저녁 점호에 구령하듯 반짝인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MDL에 평화와 번영의 소나무       

한라와 백두의 흙

한강과 대동강 물          

34년 전 해병대가

김포 애기봉, 강화 고려산, 석모도, 교동도에서 날아왔다           

호랑나비 성큼성큼

인삼밭 꽃뱀

임진강 물수제비

벚꽃잎 염하강변

슬퍼진 애기감꽃

후덕했던 호박꽃

바람난 엘레지꽃          

맘속 한켠에 다시 모여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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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난 정부의 남북 접촉이 모두 정치적 어젠다처럼 보여 화가 난다. 이나저나 지금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반드시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전에 1천 년(고려 개국 918년~1945년 광복) 하나로 살던 우리가 무엇 때문에 갈라져 있고, 우리를 둘러싼 4대 강국(미일중러)이 우리 일에 왜 간섭하고 있는 지다.     


이제 세계 경제력 10위, 국방력 6위의 나라다. 우리 지정학(K-지정학)을 제대로 정립하여 '바른 역사와 전래의 강역'을 되찾는데 모두 함께 노력한다면 멀지않은 장래에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한다.        


올해는 강화도 고려산 철쭉을 보러가는 걸 깜빡해 버렸다. 매년 봄마다 연례행사로 갔는데 말이다. 그 철쭉이 이제는 다 졌을 거라 생각하니 아쉽다.  (2022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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