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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윤수 Aug 31. 2023

한반도는 한 번도 중국 땅이었던 적이 없다!

작년에 대한사랑이 낸 『한국 북방 국경의 흐름』이라는 책이 있다. 그런데 책의 부제가 「한반도는 한 번도 중국 땅이었던 적이 없다!」였다. 이런 황당한(?) 이야기가 있나? 내게는 무척 쇼킹한 내용이었다.    

 

(책 표지)          


다른 곳에서 보았다. 전에 배운 역사에 고려가 있었다. 한자로 高麗, 그런데 ‘고리’로 읽어야 된다고 한다. 麗는 1. ‘곱고, 우아하다’는 ‘려’와 2. ‘나라 이름’인 ‘리’가 있고, 우리 역사의 나라 고려(高麗)는 ‘고리’, 고구려(高句麗)는 ‘고구리’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시 작년에 나온『시민의 한국사』의 조선 왕조 ‘국호와 수도’ 부분 기술이다.     


‘새 왕조를 세우게 되면서 나라 이름도 필요했고, 수도도 찾아야 했다. ‘조선’이라는 이름은 명에 ‘조선’과 ‘화령(和寧)’을 제시한 후, 조선으로 재가(裁可)를 받아 1393년(태조2) 2월에 결정됐다. 조선은 (고)조선에서 온 이름이고 화령은 이성계의 고향을 의미했는데, 화령은 원의 수도였던 카라코롬(Kharakorum)의 한자 이름과 같았기에 조선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시민의 한국사 1』 360~361쪽)      


우리 역사가 이상하다는 걸 전부터 느꼈지만 잘 몰랐다. 그런데 나이 들고나서 살펴보는 역사마다 이렇게 문제 투성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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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는 한 번도 중국 땅이었던 적이 없다!     


우리의 고대사 영토는 중국과 일본이 왜곡한, 한반도 내라는 역사 강역에서 아직 독립하지 못하고 있다.     

통일신라, 고려, 조선까지 우리의 역사 강토는 한반도 이내라고 배웠다. 그러나 이런 고정관념을 깨는 충격적 자료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일제가 심어놓은 왜곡된 역사 관념에서 깨어나고 있다. 이제 우리 역사 강역을 한반도 내로 축소하여 연구하는 축소 지향의 사연구는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한국 북방 국경의 흐름』 뒤표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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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일이람, 지금껏 머릿속에 둔 역사 지리 지정학이 다 무너지는 이야기다.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되었나.     


요즘 유튜브에 새로운 역사 지리 이야기가 소개되고, 프로그램마다 많은 조회수를 보인다. 왜 럴까? 무언가 이상하지 않나.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나? 나는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서 시작된 조선시대에 그 이전 역사가 조작되었고,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역사를 조작해 놓은 것이 이제 하나둘씩 밝혀지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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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의 날’(92) 제정     


올해 처음으로 ‘지리의 날’(9월 첫째 토요일)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1402년에 조선이 만든 세계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강리도」를 기념하는 날이라고 한다.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이다.     


아프리카 그린 동양 최고 세계지도, 파리·로마 정확 표기

중앙일보, 입력 2023.08.21. 00:46, 업데이트 2023.08.21. 08:36     


1402년 조선이 만든 세계지도에 파리(法里·법리)와 로마(剌沒·라몰)가 정확히 표시돼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심지어 아프리카의 해안선과 나일강의 수원(水源)까지 자세히 그려져 있으면? 이 모든 궁금증을 한 번에 불식시키는 것이 바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강리도)’이다. ‘혼일강리’는 혼연일체의 강역이란 뜻으로 몽골의 세계상을 지칭하며, ‘역대국도’는 역대 국가의 도시라는 의미다.     



대한지리학회장을 지낸 양보경 전 성신여대 총장은 강리도에 대해 “아프리카 대륙이 제 모습을 갖춘 칸티노 세계지도(1502년)보다 100년 앞서 아프리카 대륙을 사실적으로 그린 동양 최고(最古)의 세계지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과 유럽·이슬람의 지리학과 몽골제국의 세계적 시야, 한민족의 지적 능력이 융합된 세계적 문화유산”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강리도는 오랫동안 중화주의의 소산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심지어 지금도 여러 역사교재와 대중서적 등이 강리도를 사대주의의 표본으로 삼는다. 이 같은 인식을 바로잡고자 최근 학계에서는 강리도가 만들어진 날을 기념해 ‘지도의 날’(9월 첫째 토요일)을 제정했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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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의 강역은 어디인가     


나는 우리 역사의 강역이 심각하게 조작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당황스럽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살펴나가려 한다.     


『우리 영토 이야기』(정희철, 한국인문진흥원, 2020)에 실린 글이다. 우리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이 마련된 경위가 잘 설명되어 있다. 나는 전부터 우리 헌법 영토조항 개정을 주장해 왔다.      


`제헌국회가 구성되고(5.31), 며칠 후 열린 헌법기초위원회에 유진오가 작성한 헌법초안이 올라왔다(6.4).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유진오가 작성한 헌법초안에 당초 행정분과위원회와 헌법분과위원회가 작성한 헌법초안에 없던 영토조항이 들어가 있었다는 점이다. 즉 유진오초안 제4조는 ‘조선 민주공화국의 영토는 조선반도와 울릉도·제주도 기타의 부속도서로 한다.’라고 하여 반도사관에 입각해 있었던 것이다.     


1919년 9월 11일 공포된 임시 헌법 제3조 ‘대한민국의 강토는 구한국의 판도로 함’이라는 규정이나 1944년 4월 22일에 공포된 임시 헌장 제2조 ‘대한민국 강토는 대한의 고유한 판도로 함’이라는 규정과 그 내용이 사뭇 달랐다.     


그렇다면, 유진오는 어떤 인물인가? 결론적으로 그 역시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선정된 인물이다. 을사늑약 이듬해에 태어난 그는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하고 강사로 활동하다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한편으로 문인으로 활동하며 뚜렷한 친일행적을 보여주었다. (50쪽)       


광복 후 그는 고려대학교 법대 학장을 역임하고 있다가 제헌의원 선거에 참여하여 서울 중구에서 당선되었다. 그 후 그는 김성수의 권유로 헌법제정 작업에까지 참여하게 된 것이다.     

유진오 초안이 상정되자, 곧바로 ‘대한민국의 영토는 고유한 판도로서 한다.’라고 규정한 수정안이 올라왔다. 제안자 중 한 명인 이귀수의원이 제안 설명을 했다. (51쪽)     


“반만년 역사를 통해 우리의 영토를 ‘반도’라고 쓴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것은 왜적이 이 땅에 들어와서 이 민족을 모욕하고 우리의 영토를 자기 나라 영토라고 하는 의미에서 반도라고 불러왔습니다.  ---(중략)---  여러분 가만히 들어 보시오. 우리는 신중히 이 반도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3천만 민족·민중이라고 하지마는 여기에 있어서 앞으로 우리는 3천만이 될는지 백천만이 될는지 알 수 없습니다. ---(중략)--- 여러 가지 의미에서 우리의 영토는 ‘고유한 판도’라 그러면 장차 어떤 여유가 있지 않을까.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영토는 고유한 판도라고 하였으면 가장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52쪽)     


다시 반대의 의견이 제기되었다. 결국 수정안은 투표로 넘어갔다. 재석의원 1백71인, 찬성에 13표, 반대에 1백6표---. 결국 수정안은 과반수에 미달하여 부결되었다. 그리고 유진오의 헌법초안이 국회를 통과하고(7.12), 이어 공포되었다.(7.17).     

아~우리의 영토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규범화되면서 만주가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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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는 일제가 조작한 말이다      


앞서 소개한 ‘한반도는 한 번도 중국 땅이었던 적이 없다!’라는 구절은 우리 역사의 나라는 모두 대륙에 근거했다는 이야기다. ‘한반도’가 아니라 ‘한대륙’이다.      


3국을 통일한 신라 강역도 대륙에서부터 한반도에 걸쳤고, 고려도 그랬다. 그러다가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 이후 조선을 건국하면서 국토가 줄어들지만, 만주지역의 일부는 조선의 영토였다. 1909년 일제와 청이 대한제국 몰래 맺은 간도협약으로 마지막 땅 간도가 넘어갔다.     


일제는 우리 역사적 강역을 먼저 만주와 조선을 나누는 만선(滿鮮)사관에 의해 우리 ‘한대륙’을 만주와 한반도로 쪼개고, 압록강 두만강 아래로 신라, 고려, 조선을 구겨 넣으려 했다.     


모처럼 9월 2일 제1회「지리의 날」이 우리 역사 강역을 찾자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모두 기억하자. 그리고 한 번 외쳐 보자.     


한반도는 한 번도 중국 땅이었던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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