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내는 건 출판사의 낙점을 바란다기보다 스스로 한 해를 정리하는 거지요.
그리고 지난 주말은 올 글 농사를 마무리지을 겸 영남알프스에 1박 2일 등산 좀 다녀왔소이다. 가서 용담꽃도 보고(어제 브런치에도 올렸소만은)
오늘은 전부터 내가 천착하는 테마로 독일은 어떻게 통일되었나? 그런데 우리는 왜 통일되지 못하는가? 에 대한 이야기 좀 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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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타에서 베를린까지』
여기에 대해 『얄타에서 베를린까지』라는 책이 있어서 읽고 있다오.
*원제: From Yalta To Berlin: The Cold War Struggle Over Germany, 1999
*윌리엄 스마이저, 동녘, 2019년
이 책이 20장 850쪽이나 되니까 정독하는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 책을 훑어보다가 베를린(Berlin)과 서울(Seoul)을 비교해 보았다오.
이 책의 구절 하나를 인용하려 합니다.
‘베를린은 유럽의 지리적 중심이다. 유럽 지도를 들고 파리에서 모스크바까지 하나의 선을 긋고, 스톡홀름으로부터 로마까지 또 하나의 선을 그으면, 두 개의 선은 신기하게도 브란덴부르크 문 가까이에서 교차한다.
이 문은 베를린 시처럼 북유럽과 남유럽뿐만 아니라 서유럽과 동유럽 사이의 중심점에 위치해 있다. 베를린은 동과 서 사이에 가장 직접적으로 위치해 있는 세계의 수도로서 더 이상 대륙의 주변부가 아니라 중심에 있게 될 것이다.
베를린은 동시에 서유럽의 일부이기도 하고 중부 유럽의 일부이기도 하고 동유럽의 일부이기도 한 유일한 도시이다.’ (786쪽)
문득 이런 생각이 났습니다. 이걸 동아시아에 투영해 본 거지요.
‘서울은 동아시아의 지리적 중심이다. 동아시아 지도를 들고 베이징에서 도쿄까지 선을 그으면 신기하게도 서울 광화문이 딱 중간이 된다.
그래선지 예전부터 한반도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부닥치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하여 여러 가지 국제적 문제를 겪어 왔다. 등등’
전에 베세토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BESETO는 베이징(Beijing), 서울(Seoul), 도쿄(Tokyo)를 이은 말이지요. 바로 중국-한국-일본의 연결인데, 세 나라 수도의 중심이 서울이라는 뜻 아닐까요.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 칸트의 『영구평화론』등이 연상되고,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한반도 평화학』도 생각납니다.
잠깐 독일과 한국의 통일과정을 비교해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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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독일 통일 ○ : 한반도 통일 ×
미국은 1990년 독일 통일을 적극 지원합니다. 독일의 콜이 미처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미국의 부시가 지원하지요.
독일 문제의 당사자로 6자가 있었지요. 그 6자는 동 서독(2자)과 미국, 소련, 프랑스, 영국(4자)이었고, 독일 통일에 대해 미국은 적극 찬성, 프랑스는 소극 반대, 영국은 적극 반대, 소련은 기회주의였습니다.
먼저 독일을 봅시다
미국은 독일민족의 자결권을 지지했지요. 프랑스는 독일이 강해지는 걸 경계하면서도 독일이 바뀌었다는 걸 인정했지만 영국의 대처는 적극 반대하지요, 소련의 고르바초프는 서독의 돈다발(차관)에 꼬였는지 찬성 입장으로 돌아섰고, 심지어 통일독일에 미군이 계속 주둔하는 것도 찬성합니다.
이걸 ‘2+4=1’라고 한다오. 2자에 4자가 합해서 1(통일독일)이 된 거지요.
이걸 독일에서 ‘4+2=1’라고 표현하니까 미국에서 ‘2+4=1’로 순서를 바꾸었다고 해요.
이 문제는 독일민족의 자결권이 우선이라고 한 겁니다. 독일은 사실 1871년에 처음 비스마르크에 의해 통일되었고 1945년에 분단되었으니까 통일된 시기가 그리 길지도 않거든요.
한국은 왜 ×인가요
미국 입장에서는 한반도는 꽃놀이패라오. 버리기는 아깝고 버려도 그만이기도 하고요.
이걸 실제로 드러낸 적이 있지요. 1950년 1월 미국 국무장관 애치슨이 한반도를 미국의 방어선 밖에 둔다고 선언한 일 말이지요. 이로서 6.25전쟁이 났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미국은 수틀리면 주한미군 철수를 운운하지요. 전임 트럼프도 그랬으니까요. 그리고 미군 주둔비를 대폭 올리라고 공갈도 쳤고 말이지요.
그런데 1950년 전쟁이 나자 달리 행동합니다. 이 전쟁은 ‘6.25동란’이 맞고, ‘미중전쟁’이 더 맞다고 생각하지만 일단 국제적 관행인 ‘한국전쟁’이라고 씁니다. 이때는 1949년에 중국대륙이 공산화되고, 그대로 두면 일본이 위험해지니까 개입했지요.
그런데 미국은 여기서 끝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한국이 매력이 없으면 그대로 버릴 수 있는 카드지요. 그래서 우리나라 역대 정부는 늘 자주국방을 외쳤고, 핵무기도 만들려고 했었지요.
이번 정부는 4월 26일 ‘타주국방과 핵개발 포기’라는 이른바 ‘워싱턴 선언’을 했는데, 바로 미국에서 버림받을까 두려워서 그랬나 영문을 알 수 없네요.
작년말부터 써 둔 편지글30편은 브런치북 『H형에게 1』로 묶어 두었다오. 아래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