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탄핵 청원’으로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petitions.assembly.go.kr)에 접속이 늘어 마비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게 무슨 현상인가?
바로 국민의 정치적 의사가 전자광장(cyber agora)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걸 ‘전자민주주의’(cybercracy, e-democracy)라고 하던가. 나는 전에 쓴 책에서 100만명이 넘는 청원에 대한 처리방안을 제시했는데, 오늘 내일이면 100만명 돌파가 유력하다던가.
이것은 내가 2020년에 발간한 『푸른 나라 공화국』에서 예상했던 사태다 (112~123쪽). 그때 써둔 글은 이제 직접민주주의를 반영할 시기가 되었다는 것이고, 당시 한창이던 프랑스의 ‘노란조끼 시위‘를 인용하였다. 이 글을 그대로 여기에 옮긴다. (책은 절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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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민주주의, 전자민주주의 (『푸른 나라 공화국』)
요즈음 광화문 광장은
과거 정권에서는 경찰이 시위를 차단한다며 광화문 광장에 버스 차벽을 세우더니, 이 정부 들어 2020년 10월 3일 개천절(開天節) 차벽이 세워졌다. 이른바 ‘재인 산성’이다.
촛불집회 덕분에 집권한 정부가 마침 ‘하늘이 열린 날’ 땅에다 벽을 세우고, 태극기를 들고 다니면 불법시위자라고 했다니 어리둥절하다. 코로나 19 비상상황이다. 방역이 필요한 시기라는 건 알겠다. 그런데 언제까지 상황이 계속될지 모르는데, 코로나 비상(非常)이 아니라 일상(日常)으로 보고 새로운 집회시위 허용기준을 마련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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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국회의 청원제도
이 정부 들어 국민의 의사표현 통로가 다양해졌다. 청와대 국민청원과 국회의 국민동의 청원제도가 생겼다. 이른바 전자적 방식의 청원이다.
2017년 8월 17일부터 실시하고 있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30일간 20만명 이상의 동의하는 경우 공식 답변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별로 관심이 없다가. 진인(塵人)인가(먼지인간이라는 뜻일 텐데)라는 사람이 썼다는 「국민청원 시무7조」였다.
국회의 국민동의 청원제도는 올해 1월 10일부터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30일동안 10만명 이상이 온라인으로 청원하면 소관 상임위에 회부한다는데 어떤가 모르겠다. (이게 요즘은 30일 동안 5만명 이상으로 요건이 완화된 모양이다)
그런데 이렇게도 청와대·국회청원제도까지 있는데, 아직도 토요일만 되면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에 모이는가? 그 원인을 짚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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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지성과 대의민주주의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란 말이 있다. 다수의 개체들이 서로 협력하거나 경쟁하는 과정으로 얻어진 집단적 능력으로 정의한다. 1910년 미국의 곤충학자 윌리엄 모턴 휠러(William Morton Wheeler)가 출간한 『개미 : 그들의 구조·발달·행동, (Ants : Their Structure, Development and Behavior)』에서 제시되었다. 개체로는 미미한 개미가 공동체로서 협업(協業)하여 거대한 개미집을 이루고 군집(群集)하여 높은 지능체계를 형성한다.
특정 조건에서 어떤 집단의 가장 우수한 개체보다 집단이 더 지능적이라고 한다. 인터넷으로 실시간으로 연결된 현대 네트워크 사회가 이런 집단지성으로 갈등해결이나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얼까? 고등지능을 가졌다는 인간이 개미보다 나은 건가.
대의민주주의(representative democracy)는 대표를 뽑아 권리를 대신 행사한다. 그런데 유권자는 투표일에만 권리자일 뿐 바로 그들의 노예가 된다. 헌법학에서 투표로 선츨된 대표자는 전체 국민의 대표자로서 자신의 선거구민이나 자기를 지지한 선거권자(유권자)에서 독립하여 자유롭다고 한다. 명령적 위임이 아니라 자유위임이라는 것이다. 그래선지 그들은 뽑히고 나자마자 바로 시민 위에 군림하고 선거 귀족으로 탈바꿈한다.
전에는 언론이 활발하지 않고, 정보 순환이 느려 일반 시민이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지금은 IT발달로 지식과 정보가 즉각 순환되고, 여론마저도 급변하는 21세기가 되었다. 이런 시기에 종전의 대의민주주의에는 변화가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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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민주주의, 전자민주주의가 필요하다
먼저 광장민주주의다. 고대 그리스의 광장을 아고라(agora)라고 했으니까, 이를 agora democracy 라고 해 두자(물론 필자가 만든 말이다.) 이것은 심의민주주의, 토의민주주의, 숙의민주주의라고 번역되는 deliberative democracy와도 좀 다르다. 시민들이 직접 광장에 모여 공동 관심사에 대해 대화하고 토론하여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일반 시민이 직접 정치적 행동으로 일종의 저항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2016-17년 촛불집회와 프랑스의 ‘노란조끼시위’가 바로 그랬고, 올 들어 흑인에 대한 경찰의 가혹행위로 일어난 미국의 ‘Black Lives Matter(흑인 생명도 중요하다)’가 바로 이런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와 미국은 생략하고 프랑스의 경우를 살펴본다.
전자민주주의는 electronic democracy, cybercracy, e-democracy 등으로 번역되는데, 인터넷을 통해 시민이 직접 정치과정에 참여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우리나라는 전자정부 전자의회 등으로 이 부분이 활발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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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노란조끼 시위’와 시민대토론회
프랑스의 ‘노란조끼 시위’는 2018년 11월 마크롱 대통령의 유류세 인상발표로 시위가 시작되어 3개월 동안 전국 각지에서 끝장 토론을 벌였고(10,134회 193만명라고 한다), 그 결과 프랑스 정부가 당초 계획을 접었다.
‘노란조끼’는 사고 등 비상시에 대비하여 차량에 의무적으로 비치해야 하는 노란색 형광조끼인데, 2018년 11월 17일 발생한 시위에서 데모대가 이 조끼를 입고 나오면서 ‘노란 조끼’ 시위라는 이름이 붙었다. 프랑스어는 gilets jaunes, 영어는 yellow vest라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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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와 토론회 경과)
‘노란조끼 시위’는 2018년 10월 유류세 18% 인상에서 시작되는데, 각종 보험료와 세금 부담에다가 기름값까지 오른다는 소식에 시민들이 분노한 데서 폭발하였다.
마크롱 대통령은 12월 10일 종전 유류세 인상 철회, 전기가스요금 동결에 이어 최저임금을 인상한다는 내용의 대국민담화를 발표하였다. 뉴욕타임스는 노란조끼의 분노는 유류세 인상 뿐 아니라 프랑스가 직면한 장기 경기침체에 따른 서민들의 구매력 저하와 삶의 질 하락 때문에 커졌다고 분석한다. 시위대에는 극우민족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 등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은 물론, 온건파도 다수 포진되어 있는데, 이 시위가 유류세 인상이라는 범국민적 사안을 두고 벌어졌고, 이것이 SNS를 통하여 널리 퍼졌다는 점이다.
12월초에는 시위 인원이 28만 명으로 늘었다(중앙일보, 2018.12.1.). 노란조끼 시위가 4주째 계속되면서 ‘노란 조끼’ 시위에 대해 ‘프랑스혁명, 68혁명에 이은 제3의 혁명으로’라는 자극적 기사가 실리기도 하였다. (2018.12.9.). 12월 8일 파리를 휩쓴 암흑의 토요일 집회가 있었고 4주째 이어지고 있고, 파리 1만 명 등 프랑스 전국에서 12만 5천 명이 참여하였다고, 참여자는 SNS등으로 모인 평범한 시민이며 마크롱 정권에 맞서 ‘제3의 혁명’을 하려 한다고 한다.
2019년 4월 들면서 ‘노란 조끼’ 시위가 21주째 지속되고 있지만, 참가인원은 줄어들어 4월 6일에는 2만2천명으로 줄었다(연합뉴스, 2019.4.6.). 3월에는 경찰청장을 경질하는 사태가 있었고, 시위의 과도한 폭력성에 맞서 ‘붉은 스카프’가 등장하기도 하였다. 2019.4월 들어 과도한 폭력 예방을 위해 ‘집회에서 복면금지’라는 새 집시법(Loi anti-casseurs)이 시행되었고, 약 3개월간 ‘국가대토론’이 마무리 되면서 ‘세금삭감’이라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2019년 4월 15일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 화재가 발생하였다. 1163년부터 약 100년에 걸쳐 지어져 8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성당의 지붕과 첨탑이 무너져 내렸다. 이와 관련해 프랑스 정부는 물론 기업들도 성당 복구에 참여하겠다고 다짐하였다. 이 사건 이후 23주차 시위에서는 인원이 다시 2만8천명으로 늘어나고 ‘노트르담에는 모든 것을, 불쌍한 이들에게는 무엇을’이라는 레미제라블의 구호까지 등장하였다. ‘거액 노트르담 재건이 중요한가’라는 기사가 눈에 띈다. 재벌들이 10억불을 기부하는 등 노트르담 재건에 대해 약속하면서 생존투쟁을 하는 ‘노란 조끼’에게 무관심한데 분노하여 다시 시위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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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2018년 12월부터 2019년 4월까지 주요 뉴스를 필자가 수집한 것이다.
1. 마크롱에 분노, 거리 나온 28만명---왜 하필 ‘노란조끼’ 입었나
(중앙일보, 2018.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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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경찰청장 경질, 강제 해산---프랑스 노란조끼 대책 고심(KBS, 2019.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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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불 노란조끼 ‘국가대토론 마무리’---결론은 ‘세금 삭감’(뉴시스, 20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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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불 노란조끼 시위대 ‘거액 노트르담재건이 중요한가’(폭스뉴스, 2019.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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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68혁명’과 ‘노란조끼’ 시위)
프랑스에서는 1968년에 유사한 일들이 있었다. 이를 ‘68혁명’이라고 한다.
1968년 3월-6월에 베이비 붐 시대의 대학생들이 68혁명을 주도하였다. 1968년은 드골대통령이 10년째 집권하던 해인데, 베트남전쟁과 알제리전쟁을 거치며 성장한 반제국주의, 반자본주의 성향이 기성의 모든 권위에 반발하고, 히피문화와 연결된 성적인 자유, 결혼보다 동거로의 전환 등 여러 사회문제가 복합되어 있었다. 이 시위 후 1969년 4월 27일 국민투표에서 패배한 드골 대통령은 사임하기에 이른다.
‘노란조끼 시위’ 에서 2019년 1월부터 3월까지 ‘국가대토론’이 있었다. 프랑스 전역에서 1만 건의 토론이 열렸고, 결론으로 ‘세금삭감’을 도출하였다. 이 토론 종료 후 21주째 지속된 시위는 11월 시위 당시의 28만 2천명에서 2만2천3백명으로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고, 시위에 염증을 느낀 시민들이 ‘노란 조끼’에 맞서 ‘붉은 스카프’를 매고 등장하였다. 그러나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이후 다시 시위대가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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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민주주의, 전자민주주의는 헌법상 권리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한다. 또한 헌법은 신체(제12조), 거주이전, 직업선택, 주거, 사생활의 비밀, 통신, 양심, 종교의 자유와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학문 예술의 자유(제22조)까지 폭넓게 기본권을 보장하고 있다.
헌법 제8조 제1항은 ‘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고 되어 있지만 앞서 본 바와 같이 정당설립 및 정당가입 등에 엄청난 진입장벽이 있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국민의 정치적 의사결정에 나서야 할 정당대표마저 광화문광장에 나서는 코미디를 연출하고 있다.
우리 역사에서도 1960년의 4·19혁명, 1980년의 광주민주화운동, 2016-2017년의 촛불집회는 대표적 저항권 행사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헌법에는 저항권에 대한 조항이 없지만, 헌법 전문(前文)에서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표현이 저항권을 인정한 것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기 위한 광장민주주의와 전자민주주의는 헌법상 권리로서 보장되어야 한다.
프랑스식 갈등해결방법인 ‘시민대토론’을 참고하자. 어떤 과제에 대해 시민들이 진지하게 토론하는 모델이다. 공동체에 영향을 미칠 중요사안을 광장에 내놓고(인터넷 포탈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겠다. 가칭 ‘디지털 아고라’), 진지하게 토론하고 갈등을 조정함으로써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한다.
1. 실제 광장(agora)
광화문 광장과 주요 도시의 광장을 시민토론의 물리적 공간으로 활용하자.
(토요일 오후)
토의 과제는 신중하게 사전에 선정하자(과제 선정위원회 구성)
2. 사이버 광장(cyber agora)
실제 광장을 대신할 수 있는 사이버 광장을 운영하자.
* 코로나 19로 인한 언택트(untact)가 지속되고 있어. 실제 광장을 대신할 사이버 광장이 필요하다.
3. 국정과제로 반영하는 방법
요즈음 많은 국민들이 주말마다 광화문 등 광장에 모여 정치적 주장을 하는데, 소모적 논쟁을 계속하는 것보다, 일정 다수의 국민이 요구하면 대통령으로 하여금 국민투표에 부의할 수 있게 하자. 만일 대통령이 불필요하다고 인정하면 그 이유를 국민에게 설명하면 된다.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광장민주주의, 전자민주주의다. 헌법개정이 필요하다.
적정 인원을 100만명으로 생각해 보았다. 우리나라 전체인구(5,178만명)의 약 1.93%이고, 이번 4·15 총선 유권자(4,339만명)의 2.3%다.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은 30일간 20만명 이상이 요구시 공식답변, 국회의 국민동의청원은 30일간 10만명이 요구시 소관 상임위에 회부한다.)
헌법 제72조
①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
② 대통령은, 100만명 이상의 국민이 국민투표에 붙일 것을 요구하는 정책에 대해서는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 대통령이 이를 거부하는 경우에는 이유를 붙인 서면으로 설명하여야 한다.
실제 광장이나, 사이버 광장에서 모아진 의견을 적극적으로 국정에 반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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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발안 및 국민투표, 국민소환
(국민투표 부의)
100만명 이상의 요구가 있는 경우, 국민투표에 붙인다. 다만, 대통령이 불필요하다고 판단시에는 이유를 붙인 서면으로 국민에게 설명한다.
(국회의원의 징계)
비례대표의원은 국민 20만명 이상의 요구, 지역구 국회의원은 국민 20만명이나 지역 유권자의 20%가 요구하는 경우, 국회는 국회의원의 징계절차를 개시해야 한다.
(국무총리·국무위원 해임)
국회에서 국무총리나 국무위원 해임을 건의했지만, 대통령이 이에 따르지 않으려면 이유를 붙인 서면으로 설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