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1953년 한국전쟁의 승자는 누구일까? 북한은 7월 27일을 전승절로 기념한다지만, 이 기간 전쟁을 치른 남북한이나 미국·중국이 아니고, 일본이 이겼다. 일본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패전을 한국전쟁 특수로 단번에 지우고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였다. (글 뒤에 일본학자가 쓴 ‘읽을거리’ 참조)
한국전쟁 정전 후 71년이 지난 지금 동아시아의 사정은 그때와 비슷하다. 혹시 남한과 북한이 다시 싸우면 남북은 완전히 망해버리고 일본만 신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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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 『동양평화론』과 독일통일 사례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이 감옥에서 쓰고 있던 ‘동양평화론’은 당시 조선(대한제국), 청나라(중국), 일본의 3나라가 갈등하지 말고 평화롭게 살자는 이야기다. 지금의 유럽연합(EU)처럼 살자는 것이다. 이때는 남북한이 갈라져 있지 않았으니, 동양평화의 기본은 남북통일이 전제되어 있다.
그의 뜻처럼 같은 민족으로 수천년 지낸 남북한이 서로 주적, 선제타격 등 전쟁을 한다는 생각부터 버리고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우리를 둘러싼 미국, 일본, 중국과 러시아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 한반도-동아시아-세계로 평화가 퍼지도록 하자.
독일의 통일에도 당사국으로 2+4가 있었다. 서독과 동독, 미국·영국·프랑스와 소련이 있었는데, 그들이 모두 독일의 통일에 동의한 것이다.
우리의 경우에도 미중일러 4개국이 합의해 주어야 한다. 그들 모두는 한반도 분단에 대해 역사적 책임이 있다.
독일과 비교하면, 역사적으로 독일은 늘 분열되어 있었다. 1990년 재통일에 이르기 전 1871년부터 1945년까지 통일(74년에 불과하다)되었던 정도다.
우리는 신라·발해를 남북국 시대라고 치고 고려부터 따지더라도 918년부터 1945년까지 1천년 이상 함께 살아온 같은 민족이다. 왜 서로 적으로 싸우려 하나?
우리 모두 평화를 위해 노력하자.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으로서 우리는 세계평화를 선도할 역사적 사명을 갖고 있다. 이것이 세계시민의식일 것이다.
현재 남한의 국력이 북한보다 수십 배 강하고, 인구도 2배 많은데, 우리가 주도적으로 남북 평화체제를 이끌자. 먼저 우리 사이의 평화(이게 잘되어 통일까지 이르면 더욱 좋겠지만)를 이루면서, 이걸 동아시아, 세계평화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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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와 지금이 비슷하다
현재 세계는 다시 新냉전에 접어들어, 동아시아는 한미일과 북중러로 편이 갈려 있다. 미·중·일·러가 우리를 둘러싸고 합종연횡 중에 실제 전쟁할 당사자는 누굴까? 싸움 장소, 전장(戰場, battlefield)은 어디일까?
대만이 싸움터가 될지 모르지만, 중국 대륙이나 미국·일본은 아닐 것이다. 일본·중국간에 분쟁이 있는 센카꾸 열도(중국명 조어도(釣魚島)) 때문에 중국과 일본이 티각때각하더라도 이 때문에 큰 전쟁에 이르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처럼 국제적 긴장이 고조되다가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날지 모른다. 미국과 중국은 늘 으르렁거려도 디커플링(decoupling)이 아니라 디리스킹(derisking)을 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자기네 본토에서 전투하거나, 일본열도에서 전쟁이 난다고?
전쟁 나면 우리는 끝이다. 남북한 누구도 이기지 못하고 일본이 이긴다. 지난 1950년대처럼 다시 어부지리를 얻게 될 것이다.
핵무기가 사용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좁은 국토에서 싸움을 피할 곳이 없다. 여기다 핵무기까지 사용된다면 어떤 모양일까? 1950년대 전쟁에서도 1931년부터 1945년까지 14년간 전쟁한 일본과 비슷한 300만명이 희생되었다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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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피하려면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남한 인구의 50%이상이 수도권에 모여살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북한의 장사정포의 위협에 놓여있다. 전쟁이 시작되면 즉시 심각한 피해가 불가피하다.
핵무기는 승자와 패자가 없다. 지난 6월 워싱턴에서 한미양국이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면 미국의 핵무기로 보복하겠다고 약속(?)하지만, 만일 미국 본토까지 북한의 핵무기로 위협을 받는다면 미국이 그럴 것인지 확실치 않다.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핵전쟁에서 승리는 무의미하니, 어떻게 핵전쟁을 방지할 것인가가 핵심과제다. 그런 까닭에 어느 쪽이 도발하면 결국 상대방도 보복을 받아 죽고만다는 상호확증파괴(Mutually Assured Destruction)로 대응한다. 결국 핵무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작년 4월 핵주권을 포기한 〈워싱턴 선언〉부터 폐기되어야 한다. 늘 주장하지만 1950년 7월 14일에 이승만이 맥아더에게 의뢰한 한국군 작전권도 환수되어야 한다.
작년에 북한이 수중에서 핵공격이 가능한 전술핵공격잠수함 ‘김군옥영웅함’을 건조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보여주기일 뿐 실제 운용할 있나는 의문이다? 등의 이야기도 있지만, 우리는 북한처럼 적극적으로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차제에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하여, 일본처럼 핵무기의 기반이 되는 핵연료의 농축 및 재처리부터 가능하게 만들고, 호주처럼 원자력잠수함 건조를 허용받아야 한다. 일본이나 호주와 같이 대우하라고 주장하자는 것이다.
올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될 확률이 높다고 한다. 그는 지난 임기(2017.1월~2021.1월) 중 주한미군 철수와 주둔비 인상을 요구하였고,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갖기도 하였다. 그가 당선되면, 미국의 핵 보복 약속 자체도 불확실해진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도 핵무기와 원자력잠수함 개발에 착수하면서, 북한과의 대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강 대 강’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면 안된다.
북한에 대해 인도주의와 개발지원을 병행하여 북한을 설득하자. 베트남과 우크라이나, 가나(Ghana) 를 돕는데, 우리가 북한을 지원하지 못할 이유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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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거리)
다음은 일본 학자 『와다 하루키의 한국전쟁 전사(韓國戰爭 全史)』 마지막 제8장 「한국전쟁 후 동북아시아」에서 중요한 구절을 뽑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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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남과 북
북한도, 남한도 통일을 위해 전쟁을 했으나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거의 원래의 분할선인 38선 부근에서 전쟁이 중단됐다. 군사분계선은 서부에서는 38선 아래로 내려가 개성 지구, 옹진반도 등이 북측에 포함됐다. 동부에서는 38선 위로 올라가 철원군의 남쪽 반, 양구군, 인제군, 고성군 등이 남측에 들어갔다. 잃은 것과 얻은 것은 거의 같다고 해도 좋다.(601쪽)
사망자 수는 정확히 모른다. 남북 합해서 300만~400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1931년 만주 침략부터 1945년 패전까지 발생한 일본의 사망자 수 300만 명을 넘는 수치다. 1949년 6월 1일 남북의 총인구가 2,865만 명이었으니, 사망자는 10%가 넘는다. 전사자와 폭격으로 사망한 사람 외에 학살당한 사람도 많았다. 통치자나 점령자가 철수할 때, 북쪽이든 남쪽이든 감옥 안에는 처형된 죄수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적의를 갖고 마을 사람 전체를 살해한 사례도 있었다.(6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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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한국전쟁은 한반도 사람들에게만 일대 분수령을 이룬 것이 아니라 미국 국민에게도 일대 분수령이었다. 충돌은 미국의 대외 정책, 국가안전보장정책, 군사정책, 그리고 국내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다.(604쪽)
한국전쟁 과정에서 미국의 군사비는 전쟁 전 GNP 6% 규모에서 1953년 18% 규모로 증가했다.(605쪽)
한국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끝나지 않은 최초의 전쟁이었다. 공산주의자와 싸운 전쟁임은 분명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의 한국을 보면, 이것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이었다고 설명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이 전쟁이 가져온 거대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전쟁 자체는 “잊혀진 전쟁 a forgotten war”이 된 것이다. 워싱턴 링컨 기념당 앞에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Freedom is not free”라고 새겨진 한국전쟁 기념비가 세워진 것은 한국이 민주화된 1995년으로, 베트남전 전사자 기념비가 세워진 것보다 늦다.(6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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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미국이 한국전쟁을 계기로 공공연히 대전환을 이루었다면, 소련의 변화는 은밀하게진행됐다. 그러나 그것은 그야말로 미국의 대전환에 필적하는 변화였다.(607쪽)
한국전쟁은 말 그대로 스탈린의 전쟁이었다. 스탈린은 크렘린 안에서 한국전쟁 총감독을 맡았다. 그의 지휘하에 소련은 북한군과 중국군에게 대금 지불은 일정 기간 뒤로 미룬 채 무기와 탄약을 제공하는 후방 기지, 병기 생산 공장이 됐다. 게다가 소련 공군은 한반도 상공에서 직접 미국 공군과 전쟁을 했다. 하늘의 전쟁은 전무후무한 미소의 전쟁이었다.(6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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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미국과 중국의 전쟁은 양국의 “군사, 정치, 경제, 외교의 전면적 힘겨루기”였는데, 무승부로 끝났다고 할 수
있다. 막 탄생한 중화인민공화국에는 희생이 큰 전쟁이었지만, 미국과 대등하게 싸운 혁명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완전한 위상을 확립했다.(611쪽)
한국전쟁 발발과 동시에 미국이 타이완해협에 군사적으로 개입한 결과, 중국은 타이완을 무력으로 해방시키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6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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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타이완의 중화민국은 한국전쟁 과정에서 미국의 군사적 개입으로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위상을 확립할 수 있었다. 장제스 정권은 자신의 군대를 한반도에 파견하겠다고 여러 차례 제의했지만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6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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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한국전쟁으로 큰 이익을 본 또 다른 나라는 일본이었다. 일본의 정치 체제와 경제의 기초는 이 전쟁 속에서 만들어졌다. 패전 후 일본 국민의 반전, 반군 감정은 강했고, 헌법 9조 규정과는 친화적이었다.(613쪽)
일본 국민은 한국전쟁을 강 건너 불로 여겼지만, 이 전쟁은 일본 경제 재건에는 큰 의미를 갖는 특수를 안겨 주었다. 한국전쟁은 이후 일본의 비군사적 고도 경제성장의 토대가 됐다. 주관적으로는 비군사적 발전이지만, 객관적으로는 전쟁을 이용한 발전이었다.(6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