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장면이 오늘 엄마가 죽었다는 전보 한 통을 받은 첫 장면과 아랍인을 태양을 못이겨 죽이는 장면이다.
‘모친 사망, 내일 장례식, 근조’
첫 장면에서 그의 냉담성을 이해하지 못한 나에게 삶의 어처구니를 어루만져 준다. 양로원에서 그의 대꾸없음은 진정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삶과 죽음의 막막함, 고정관념과 기성질서가 무엇인지 알고 싶으면 이방인을 보라는 말이 기억난다.
무심한 그의 태도에 놀란 양로원 사람들, 장례식 이튿날 해변에서 옛 사무실 동료 마리를 만나고 함께 코미디 영화를 보고 해수욕을 즐긴다. 이웃 레몽을 우연히 만나 그의 아랍인 애인을 벌주자는 음모에 끌려들어 간다. 얼마 후 싸움은 끝났으나 강렬한 햇빛을 피해 혼자 그늘진 샘을 찾아간 뫼르소는 그곳에서 싸움이 붙었던 아랍인을 마주하고, 팽팽한 대치 속에서 뜨거운 태양을 이기기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방아쇠를 당긴다.
태양이 쏘는 강력한 이미지로 그는 아랍인을 죽였다. 왜 인지 모르는 자에게 죽음이란 또 다른 의미를 가진 것인가. 무엇이 진정한 것인지 모르는 처음의 무용함이라 할까.
남에 맡겨둔 자기 인생이 `이방인`성이다. 자기 인생을 모르는 운명에 맡겨둔 작가는 1960년에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그는 1913년생이다.
1942년 독일 점령 하의 잿빛 파리에서 출간된 책의 운명은? 눈부신 알제리의 해변을 그려준 사건이다. 독일 점령과 알제리의 대조는?
부조리한 현재를 탈피하지 못하는 그는 죽음을 감수하고 말뿐이다. 죽음도 그에게는 그저 그런 무조건인가. 애초에 삶의 미련에 대한 생각을 차치하고 있어서다. 그의 죽음과 연결되는 사정은? 그에게 못한 책임감을 부여해 줄 근거는?
남을 죽였는데도 거기에 대한 회한이 없다는 것에서 아랍인에 대한 편견을 느낀다. 만약 아랍인이 아닌 다른 유럽인이라면 어찌 되었을까?
어머니의 죽음과 주인공 뫼르소의 죽음이 연결되지 않은데도 자기 죽음마저도 타자화한 외면성이 안타깝다. 진정한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는 몸부림도 없어 보인다. 삶은 원래 부조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