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통일전략은 2+4=1이다

by 신윤수

우리는 통일된 나라였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적어도 천 년 동안 통일된 나라를 유지해 왔다. 고려가 918년부터 1392년, 조선이 1392년부터 1910년까지다. 그후 35년 일제강점기를 거쳐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았지만, 이것은 통일이 아니라 분단이었다.(나는 ‘한반도’라는 말 자체가 일제의 정한론(征韓論)에서 비롯된 말이라 쓰지 않으려 하고 있으나,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1948년에 남한과 북한은 각각 정부를 수립하고 1950년부터 시작되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을 하고 있다.(1953년에 정전(停戰)되었지만 아직도 종전(終戰)이 되지 않아 기술적으로는 전쟁중이다.)


이를 따져보니 1945년 해방 후 77년이 지났고, 1953년 정전후 69년이 지났으며, 세계적으로 냉전(冷戰)이 끝났다는 1991년에서 31년이 지났다. 앞으로 우리는 세계사에서 백년전쟁보다 긴 기록을 남기려는가.


그리고 평화의 세기라는 21세기가 시작된지도 21년이 지났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까? 통일은 이제 그만 두고 각각 분단된 나라로 살아야 할까? 남과 북은 아직도 서로 무기를 들고 의심하고 있다. 안보딜레마가 남아있는 것이다.


북한은 세계 유일의 공산왕조를 세습한 집단이면서, 전 세계가 모두 걱정하는 핵무기로 동족과 세계에 위협적 언동을 계속하고 있다.



6자회담과 2+4=1


두 개의 한국(남한과 북한), 네 개의 주변국(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가 있다. 이를 벌써 30년도 더 전에 통일을 이룬 독일의 사례와 비교하려 한다.


독일은 1945년에 분단되었다가 45년만인 1990년에 통일되었다. 두 개의 독일(서독과 동독)이 있었고 네 개의 이해당사국(미국, 프랑스, 영국, 소련)이 있었다. 독일과 관련된 이해당사국으로는 특히 폴란드가 중요했다고 한다.


우리의 통일 논의에도 흔히 6자 회담 또는 3자 회담이 거론된다. 두 개의 한국은 직접 당사자인데도 여기에서 아무런 주도권이 없고, 네 개의 주변국들이 ‘마치 동네사람이 남의 제사상에 밤 놓아라 대추 놓아라’ 하듯 한다.


이에 대해 재작년에 ‘10개의 키워드로 읽는 독일통일과 평화’라는 부제가 붙은 『비밀과 역설』(이동기, 아카넷, 2020)에 주목할 내용이 있어 여기에 옮기려고 한다.


대부분 이제 상식적으로 알듯이 독일통일(독일인들은 통일보다도 재통일(Wiedervereinigung)이라 부른다)은 갑자기 이루어졌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1월 28일 서독의 콜 총리가 「10개조 통일강령」을 발표한다. 그후 통일의 급류가 제대로 통일되지 않은 채 통일로 휩쓸려 들어갔다.


아래는 『비밀과 역설』의 ‘제8장 외교’에서 간추린 것이다. 그는 남북통일에 대한 생각을 써 놓았다.


1989년 11월 28일 콜의 통일공세로부터 1990년 11월과 1991년 6월 각각 소련과 폴란드와 우호조약을 체결할 때까지 독일은 신중과 모험의 줄타기 외교를 이어갔다.(264쪽)


한반도 주변 열강의 전략과 입장을 상수로 보고 한반도 주민들의 행위 여지와 자기결정권을 스스로 제약하는 모든 단견과 전망 부재의 태도는 역사의 하수구로 버릴 때다. 남북은 주변 열강의 한반도 관련 정책이나 통일문제에 대한 입장이 고정적이라고 볼 이유가 전혀 없다. 전후 유럽에서는 독일문제가 분단으로 해결되었다고 간주되었다. 독일은 패전국이자 전범국으로서 주권의 제약을 많이 받았다. 그런 독일도 ‘자결권’을 내세워 민족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열강에 넘기지 않았다.…독일은 조정과 타협의 통일 외교를 통해 주권 옹호를 더욱 발전시켰다.(264~5쪽)



1=2+4=1


우리는 원래 통일된 나라 1이었다. 남에 의해(냉전의 논리) 2가 되었고, 주변국가들(4)의 간섭으로 현재 2의 상태에 있다. 미국이 독일통일과정에서 ‘4+2 회담’이 아니라 ‘2+4 회담’으로 말했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이 부분 설명을 적어본다.


1990년 2월부터 9월까지 독일통일의 외적 조건과 형식을 둘러싼 주요 결정들이 연이어 이루어졌다.…나토와 바르사바의 존재, 유럽공동체와 유럽안보협력회의의 역할, 동서독 사이의 「기본조약」 및 서독과 소련 및 동유럽 국가들 사이의 여러 협정들을 반영해야 했다. 동시에 그것을 ‘6자 회담’이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4대 열강이 독일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음을 따로 인정했기 때문이지만, ‘4+2 회담’이 아니라 ‘2+4 회담’이라고 불린 이유는 서독과 동독의 결정이 우선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2+4 회담’ 형식은 애초 미국의 제안이었다.(249~250쪽)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전쟁을 일으킨 나라가 아니라, 일본의 제국주의로 35년간 피해를 입은 나라다. 우리의 분단에는 기본적으로 일본과 미국에 역사적 책임이 있다. 한편 한국전쟁에 참전해서 항미원조라며 북한 편을 들은 중국(당시는 중공이다)과 러시아(당시는 소련이다)도 역사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미국은 전승국이자 이해관계국으로서 독일을 분할점령하자 하더니 나중에는 독일인의 자결권이 우선이라 했다. 그런데 우리한테는 왜 그렇게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아직도 옛날 제국주의의 잔재나 서양이 아시아를 지배한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나.


독일통일과정에서 동독인들이 자주적으로 의사결정을 했다. 그러나 북한은 도저히 자주 의사결정에 대한 인프라가 갖추어 있지 않다고 본다. 따라서 통일에 이르기까지 상당 기간 남북은 현재의 경계를 그대로 두고 서로 익숙해져야 할 것 같다.


통일 후 북한을 제대로 만드는 데에는 남한 뿐 아니라 관련 4개국의 협조가 필요하다. 남한은 우선 통일과 긴장 완화로 절감되는 국방예산과 비무장지대(DMZ)를 관광자원으로 바꾼 세계평화공원의 수익으로, 일본은 북한을 식민지배한 배상금으로, 미국·중국·러시아도 역사적 책임에 대한 배상금으로 북한의 경제발전에 참여해야 한다.


나는 독일통일과정에서 독일이 나토에 남아 있게 하고, 주독 미군이 독일에 잔류하는데 소련(러시아)이 동의했듯이 앞으로 유엔평화유지군 형태로 미군이 상당기간 통일한국에 계속 주둔하는 것도 주변국이 용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분단에 대한 다른 시각


한반도가 분단된 것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또는 태평양전쟁이라고 부르는 일본과 중국, 일본과 미국 사이 전쟁이 끝나고 나서 일본군을 무장해제한다는 우연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에 대해 이언 모리스는 『전쟁의 역설』(지식의 날개, 2015)의 한국어판 서문에다가 다음과 같이 써놓았다. 가슴 아리는 표현이다.


“대한민국은 전쟁의 산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냉전이 없었다면 한강의 기적 역시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어판 서문 ⅶ)


나는 이 글을 읽고 크게 당황했다. 한반도는 1910년 이전까지 대한제국(조선)이었다가 일제의 강점으로 식민지가 되었지만, 그때도 일제의 조선총독부가 한반도 전체를 하나로 통치하였다. 그러다가 1945년에 일본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하면서 일제로부터 해방되면서 연합국의 전후처리에 맡겼다. 1943년 11월 17일 카이로선언에서부터 한반도를 독립국가로 하기로 하였다.


“현재 한국민이 노예상태 아래 놓여 있음을 상기하면서 한국을 적당한 시기에 자유롭고 독립적인 국가로 만들 것을 굳게 다짐한다.”


이 선언에서부터 한국의 독립이 국제적으로 보장되고, 1945년 2월 포츠담선언에서도 이 조항이 재확인되었다. 그런데 이게 어그러진 것이다.



통일한국의 국제관계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을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에서 ‘역사상 인정된 고유한 판도’로 바꾸어야 한다. 동아시아 역사에 비추어 보면 강역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헌법 전문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한다는 선언과 헌법 제5조의 규정에 따라 통일한국은 국제평화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세계에 말하자.


헌법 제5조

①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

②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


통일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을 지킨다. UN이나 국제적 협력요청에 따라 방어 전쟁을 수행한다.

통일 후에도 주한미군이 평화유지군(PKO) 자격으로 주둔할 수 있게 하면 어떨까. 주둔비용은 어떻게 해야 하나. 반씩 나누면 어떨까. 미국도 자기의 세계전략에 따른 주둔일 테니 말이다.


통일한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을 존중하는 호주, 캐나다 등 중견국(middle power country)과 함께 미국(20세기), 영국(19세기) 등이 담당하던 세계경찰(world police)의 역할을 수행하면 어떨까.


세계경찰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미, 영, 불, 중, 러), 과거의 전범국(일, 독)이 수행하는데 부담이 있고, 인구 1억명 이상인 대국이 담당하는 것도 부적당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와 같은 중견국가가 수행하는 것이 세계평화와 안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통일한국의 국호는 대한민국이다


통일한국의 국호는 그대로 대한민국이 되어야 한다. 전에 남북간에 논의되던 고려연방제는 틀렸다. 일본이 강제병합 전까지 나라 이름이 대한제국(大韓帝國)이었다. 그러다 1945년 해방이후 국제연합(UN)이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를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하였다. 과거의 대한제국(大韓帝國)에서 대한민국(大韓民國)으로 바뀐 것이다. 즉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바뀐 것이다.


북한과 논의과정에서 나오는 고려연방제는 남쪽은 대한민국이고 북쪽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국호니까 한(韓)과 조선(朝鮮) 대신 그 이전의 나라였던 고려(高麗)라는 명칭을 쓴 모양이다. 서양어로 고려는 Corea 또는 Korea가 되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건 대한제국을 우리 역사에서 제외한 모습이 된다. 그리고 한(韓)은 역사적으로 2천년 전에도 쓰인 명칭이었다.


독일은 통일과정에서 서독의 헌법(독일기본법)에 의해 통일이 되었고, 동독의 5개 주가 독일연방공화국에 가입한 형태였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 2021년『푸른 정치와 시민기본소득』 123~131쪽을 조금 고쳐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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