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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 Apr 24. 2023

믿을 수 없다.
그녀가 제라늄 여왕인 사실을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님을

 


책 모임에 다녀왔다. 벌써 10년 이상 이어온 모임이다. 우리 모임은 1년에 한 번씩 돌아가며 두 명이 회장, 총무를 맡는다. 올해는 내가 임원을 맡을 차례라 이번에는 총무를 맡았고, 나보다 한 살 어린 k가 회장을 맡았다. k는 학교 상담교사로 재직 중인데, 평소 성격이 확실하고, 항상 바쁜 직장인이다. 강의에도 능숙한 소질이 있는 편이라 우리 모임에서도 말을 제일 많이 하는 편이다.

 

 어제도 쉬지 않고 떠들어 대던 k가 집에서 키우고 있다며 제라늄 사진들을 보여줬다. 화분 몇 개가  아니라 색색의 제라늄들이 베란다 가득했다. “이 꽃 너무 예쁘지 않아요?”  ‘꽃 모음’이라고 적힌 폰 갤러리를 대방출한 듯 보여 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사진 소개에 여념이 없었다. 몇천 원 주고 산 것부터, 몇만 원 짜리도 있다고 했다. 이모가 화원을 하는 탓에 영향을 좀 받긴 했겠지만 의외였다.

 

 항상 긴 머리에 모임 나올 때마다 주로 원피스를 차려입는 스타일이지만 평소 조신한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떤 일에 대해서 깐깐하게  따지고 들 때도 있고, 공부에도 욕심이 커 시간적 여유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이렇게 공을 많이 들여야 하는 화초 키우기에 재능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자부심 뿜뿜 하는 얼굴로 자랑스레 보여주는 제라늄 사진들을 보니까 제라늄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유튜브도 찾아보고, 제라늄과 관련된 소셜 커뮤터니에도 가입해서 정보를 얻는다고 했다. 직장 동료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며 흐뭇하게 말했다.

 

 집에 있을 때 베란다에 앉아 제라늄을 넋 놓고 바라보면 외출하고 돌아온 아들이 “엄마, 나왔어. 나도 좀 봐주라.” 그럴 정도라니 얼마나  제라늄과의 사랑에 빠져 있는지 짐작이 간다. “네가 그럴 줄 몰랐는데.” “ 대단하다 정말” 모임 언니들의 반응은 이랬다. 나 역시 어떤 물건의 신기능을 새롭게 발견한 듯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그녀가 하는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는 요리도 못할 것 같고, 화분은 집에 들여놓는 족족 못 키우고 죽일 것 같은데  반전을 보인 거다. 10년 넘게 알고 지내온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로 말이다.


 우리가 흔히 사람을 볼 때 겉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고 하지만 실상 그게 잘 안된다. 나 역시 그랬다.  오늘 나는 k를 보고 다시 한번 깨달았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한 사람을 온전히 알지 못한 채 ‘저 사람은 이럴 것이다’라고 더는 단정 짓지 말자라고. 당장 거실 작은 화분에 물이나 주러 가야겠다.


2022.6.22 


#제라늄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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