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사회생활은 스무 살 때 한 호프집 아르바이트이다. 오후 4시부터 새벽 12시까지 8시간이었다. 아르바이트생 모집 공고를 빤히 보면서 술집이라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기도 했다. 술도 안 마시는 내가 호프집에서 알바라니, 생각만 해도 무섭고 불편했다. 하지만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고자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겠단 생각에 용기를 내어 들어갔다. 예상외로 주인 내외분이 선한 인상이라 마음이 놓였다.
나는 안주를 준비해 서빙하는 일을 담당했다. 덕분에 마른오징어를 덜 질기게 굽는 방법, 양배추 채 써는 방법, 과일을 예쁘게 세팅하는 방법도 배웠다. 일을 하는 동안 그분들의 친절함이 참 좋았다. 어느 날, 아르바이트하러 가는 길이었다. 오토바이가 나를 치고 가는 바람에 내 몸이 휘청였다. 다친 데는 없구나 싶었는데 왼팔이 서서히 저리기 시작했다. 호프집에 도착해 사정을 말씀드리니 두 분이 나보다 더 화를 내며 걱정해주셨다. 왼팔을 거의 쓰지 않고 일할 수 있게 배려까지 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것도 모자라 그날은 일을 마치고 본인들의 집으로 가서 굳이 같이 자자고 하셨고, 다음날 아침엔 따끈한 아침밥도 차려 주시고, 당시 그 사장님 댁에서 거리가 멀었던 유명한 한의원에 데리가 가서 '봉침'이란 걸맞게 했다. 나는 신세 지는 것이 미안해서 눈치를 보았는데, 사장님이 되려 말씀하셨다. " 돈 벌어서 다 뭐할 건데, 이렇게 필요한 데 쓰라고 돈 버는 거지." 그 호탕한 말씀이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 말이 내 인생철학을 바꿔놓았다고 해도 무방하다.
"어디에 있건 내가 하는 경험은, 그것이 일이든 공부이든 , 나중에 내가 하는 일에 다 연결이 돼서 반드시 도움이 된다는 거였어." <알 판 판 알 비노비노> 中에서 p.41
지금 생각해도 참 고마운 분들이다. 일한 지 얼마 안 된 아르바이트생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고 마음을 내어준 훈훈한 행동을 잊을 수가 없다. 스무 살, 사회생활이 뭔지도 잘 몰랐고, 어떻게 사는 게 제대로 사는 삶인지 아무 생각도 없던 때였는데, 그분들에게 인생을 배웠다.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삐 살았던 사장님 내외는 그러면서도 늘 흥겹게 일을 하셨다. 인상을 찌푸리기보다는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항상 밝은 기운을 전해주셨다. 인심이 메마르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 있게 잘 나누어 주는 그런 분들이었다. 그래서 나도 그곳에서 일을 하면서 은연중에 베풀면서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 조금씩 스며들지 않았나 싶다. 나도 그렇게 늙어가고 싶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베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