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초등학생 때 나는 아이들 학교에서 2년에 걸쳐 재능 기부 수업을 했다. 작은아이가 3학년 때 학부모 재능기부 신청서를 가지고 왔다. 아이가 반장임에도 바쁘다는 핑계로 전혀 신경을 못 써주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1시간짜리 재능기부 수업은 해줄 수 있을 것 같아 신청서를 보냈다.
어느 날, 담당 선생님께서 전화를 걸어오셨다. “어머니, 죄송한데 신청하신 학부모님이 세 분 밖에 안 계셔서 어머님이 두 학년을 좀 맡아 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순간 안 된다고, 못 한다고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한 반은 어떻게든 하겠지만 여러반은 도저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국 나는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목소리를 듣자 하니 재능기부 담당 선생님이 큰아이 예전 담임선생님이었던 거다. 내 목소리를 선생님도 알아채시고는 “00 어머님 맞으시죠?” 라면서 먼저 아는 체를 하시는 거였다. 그렇게 해서 거절은 물 건너가고, 당시 반장이었던 아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참여했다가 2년이나 하게 된 거였다.
나는 아이들과 신문 수업을 했다. 3학년은 신문으로 이야기 만들기, 4학년은 신문의 구성요소를 알아보고, 직접 신문 1면을 구성해 보는 것으로 수업계획안을 짰다. 두 학년 다 6반까지 있고, 한 반에 보통 23~24명, 많은 반은 28명이었다. 혼자서 한 반씩, 두 시간을 연달아 수업했다. 1교시 ~4교시까지 4시간 다 수업이 있는 날은 출근하기가 바빠서 점심을 못 먹을 때도 있었다.
당시 3학년이었던 딸아이는 자기 반에 내가 수업하러 가는 날, 옷은 이거 입어라. 머리랑 화장도 좀 예쁘게 하고 와라. 요구사항이 많았다. 그래도 엄마가 선생님으로 자기 반에 들어가서 수업을 진행하니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특히 3학년들 수업은 딸 친구들이 많아서 재미와 부담이 두 배였다.
어느 반에는 나와 친하게 지내다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난 00 엄마의 아들이 있었다. 그 친구는 쾌활한 아이였는데, 엄마가 떠난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지 풀 죽어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다른 친구들은 열심히 신문에서 사진을 오리고, 쫑알대면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 아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다가가서 보니 신문에서 오려낸 사진들을 가위로 잘라서 조각조각 내고 있었다. “ 왜 그러고 있니?”라고 다정하게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오늘은 별로 할 기분이 아니니?” 평소 나를 잘 알고 있던 그 아이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억지로 시킬 수가 없어서, 그럼 하고 싶을 때 시작하라고 했다. 수업을 하는 내내 내 마음은 그 아이에게 가 있었다. 내색은 할 수 없었지만 자꾸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있던 그 아이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친구들을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사진을 오려 붙이고,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런 당황스러운 순간은 어찌해야 하는지 참 난감한 순간이었다.
열정적으로 수업을 하다 보니 목이 쉬는 일도 많았다. 수업이 다 끝나면 항상 소감을 한 단어로 표현해 보라고 했다. '판타스틱, 베리굿, 기쁨, 신남, 대박, 재미' 등등 이렇게 좋게 표현해주는 아이들은 나를 들뜨게 했다. 간혹 '짜증, 스트레스, 어려움'이 라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긍정적인 반응이 우세라 그저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수업은 하는 동안 시간은 잘 가지만 시끄럽고, 산만하고, 독서 수업보다는 몸이 확실히 두 배는 고단했다. 3~4학년 재능기부 수업을 다 끝냈을 땐 큰 숙제를 끝낸 듯 뿌듯하고 후련했다.
이것으로 재능기부 수업은 끝난 줄 알았다. 다음 해에는 안내장이 와도 절대 모른척해야지라고 다짐했다. 그런데 다음 해에 학교에서 먼저 전화가 왔다. 작년 재능기부 수업 반응이 좋았다며 올해도 부탁한다고 했다. 마음 약한 나는 또 거절을 못하고 그러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2년째는 2학년과 6학년을 맡았다. 부족함이 많았을 텐데도 다시 나를 재능기부 강사로 찾아줬다는 게 고마워서 역시나 첫해처럼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랬더니 감사하게도 학교에서 나를 자원봉사자 대회 봉사상 대상자로 추천을 해주신 거다. “지금까지 재능기부 해 주신 학부모님 중에 제일 많은 시간을 내주셨고, 가장 열심히 해 주셨어요.”라는 감사한 말씀을 하셨다. 덕분에 나는 그해 자원봉사자 대회에서 구청장상을 받게 되었다. 당시 지역에서 1년 이상 봉사를 해 온 사람에게 봉사상이 주어지는 조건이 있었는데, 나는 이미 가족봉사단에서 매달 봉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까지 받게 된 것이다.
처음 학교에서 재능기부 수업을 한다고 했을 때는, 부담감이 컸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인 데다, 그 많은 아이들을 잘 케어하면서 무사히 수업을 끝낼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 또 아이들 반응이 시큰둥하면 어쩌나 그것도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맞았다. 시작해 보니 어떻게든 다 해내게 되어 있고, 긴장되고 낯선 경험이었지만 나를 성장시키는 데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시간적 여유가 되면 다시 재능기부수업을 해 볼 생각이다. 내가 가진 하찮고, 조그만 재능이라도 어딘가에 쓰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보람된 일이기 때문이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낯선 도전을 통해 우리는 알게 모르게 조금씩 더 단단해지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러니 처음 해보는 일도 두렵게만 생각하지 말고 일단 시작해 보자. 하다 보면 어떻게든 다 해내게 되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