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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 Nov 29. 2022

독서논술지도사로 밥 먹고 삽니다.

 작은 아이가 여섯 살 때 어린이집 파트타임 일을 관두고 쉬는 동안 나는 독서논술지도사 자격증을 땄다. 독서논술을 배운 일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그때까지 나는 독서논술을 가르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물론 글을 읽고 쓰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가르치는 건 또 다른 일이라고 생각했다. 


  동네 문화회관 소식지를 보던 어느 날, '어머니 독서논술지도사 고급과정'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초급, 중급, 고급으로 나뉜  총 9개월짜리 강의였다. 별생각 없이 첫 수업에 들어갔는데, 그야말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게 바로 이런 거잖아.’ 수업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열성적으로 9개월 과정을 이수한 건 물론이고, 도서관, 여성회관, 대학교 평생교육원 등에서 개설된 독서지도 관련 수업을 닥치는 대로 수강했다. 결국 첫 번째 독서논술지도사 자격증은 평생교육원에서 한 교수님의 스파르타 수업을 통해 취득했다. 


 문화회관에서 9개월 과정 수업이 끝나던 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업시연'이란 걸 해봤다.  준비하는 동안 더듬거리지 않고 잘할 수 있을까 불안감에 시달렸다.  나는  고정욱 작가의 <안내견 탄실이>라는 책으로 첫 번째 순서로 시연을 했다. 


 아무도 먼저 하겠다고 나서지 않자 '매도 먼저 맞는 편이 낫다'는 심정으로 내가 손을 든 것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침착하자' '편하게 하자'라고 계속 주문을 걸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잘하고 있다'며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해가면서 미리 짠 계획안대로 수업을 해나갔다. 강사님은 짓궂게도 아이 입장으로 돌아가 "선생님, 저 질문 있는데요." 라며 여러 번  돌발 질문에, 돌발행동을 하면서 내 대처 능력을 살펴보았다. 순간 당황했지만  여유롭게 잘 넘겼다. 수업과 관계된 재밌는 농담도 하면서 유쾌하게 수업 분위기를 이끌어 갈려고 했다.  준비해 간 안대로  장애체험을 하고, 소감도 돌아가며 나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결국 나는 박수를 받으며 무사히 수업을 끝냈다. 


  나는 아주 큰 산을 넘은 기분이었다. 다행히 강사님은 별 다섯 개를 주고 싶다고 말씀하시며 나를 격려해주셨다. "선생님은 원래 수업하시던 분 같아요." 강사님이 내게 해 준 이 말에 힘을 얻었다. 소심하고  자신감 없던 내가  아이들을 가르쳐 볼 수 있겠다는 용기가 처음 생겨난 순간이다. 그리고 강사님은 이 날  자기가 운영하는 독서논술 학원에서 실습을 해보지 않겠냐고 내게 제안을 해 주셨다. 


 다음 해 나는 본격적으로 독서논술 지도사로 일하게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은 항상 하얀 도화지에 스케치를 하고, 색칠을 해 나가는 과정 같다. 그 도화지에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색칠을 해 나가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아이들마다 어쩜 그렇게 성향이 제각각인지 내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일이 생길 때도 있지만, 나를 힘나게 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수학은 어려워서 머리 아픈데, 독서논술 수업은 재밌다며 맨날 했으면 좋겠다고 사탕을 건네는 아이,  또래보다 어눌하지만 마음이 천사같이 예뻤던 아이는 나만 보면 "목, 안 마르세요?"라고 물었다.  내가 가지고 다니는 물병에 물어 떨어진 걸 보면 괜찮다고 해도 얼른 달려가 물을 채워주려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에게 나는 뭐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가지고 일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축복받은 일인지도 모른다. 수업 필독서로 여러 분야의 책을 골고루 활용하니 시간이 지날수록 짧았던, 내 배경지식이 업그레이드되어 간다. 


 독서논술 수업은 자잘한 업무와 학부모 상담이 늘 공존한다. 그래서 가끔 스트레스가 쌓이기도 하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통해 아이들과 성장할 수 있어서 뿌듯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독서논술지도사로 밥 먹고 산다!


진정한 성공은 평생의 일을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서 
찾는 것이다. 

-데이비드 매컬로 


#독서논술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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