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1학년 겨울방학이었다. 방학이었지만 아르바이트 때문에 고향에 내려가지 못해서 시골에 내려가는 친구들을 참 부러워했다. 당시 대구에 ‘oo서적’이라는 대형서점이 있었다. 대구 시민들의 약속 장소로 많이 이용되었고, 30대 이상이라면 아마 추억의 장소일 것이다. 동성로에 본점이, 반월당에 지점이 있었다.
친구 3명과 아르바이트에 지원할 때만 하더라도 당연히 서점에서 일할 거라 믿었다. 그런데 친구들 모두 본점과 지점에 파견된 반면, 나만 덩그러니 서점 창고에 파견되었다. 외모로 따졌을 때도 친구들과 견주어서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물론 내 생각이지만^^ ) 왜 나만 예쁜 유니폼도 입지 못하는 창고로 가야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거기서 난 친구 한 명을 사귀었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우리만 창고에 배정받은 이유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 친구와 나는 곰곰이 따져 보았다.
“우리가 그 친구들보다 뭐가 부족했을까?” “키? 비슷하잖아?”
"성적? 성적 증명서를 낸 것도 아니잖아.”
정답을 찾을 수 없는 와중에 열악한 근무환경 때문에 힘들었다.
아침 10시부터 밤 8시까지. 근무시간은 하루 10시간이었다. 쉬는 시간이라곤 점심시간이 전부였다. 2022년 올해 근로기준법으로는 하루 8시간을 근무하면 1시간의 휴게시간을 보장해 주어야 하고, 최저임금도 시급 9,160원이다. 하지만 그 당시는 근로기준법이니, 최저임금이니 하는 것들이 있는 줄도 몰랐고 설사 있다 해도 따지고 들 처지도 아니었다.
한겨울인데도 난로를 피워둔 사무실 말고는 따뜻한 공간도 없었다. 더구나 창고 소장의 갑질이 심했다. 조폭 우두머리같이 생긴 험악한 인상에 사무실에서 잠깐 밥 먹는 거 말고는 사무실에 있게 하지도 않았다. 엄연히 점심시간이 정해져 있었지만 창고장은 빨리 밥을 먹으라고 닦달했다.
"빨리 안 먹고 왜 그렇게 굼뜬 거야!" 창고장이 무섭게 소리쳤다. 나는 벽시계와 그를 번갈아 쳐다보며 '아직 점심시간이 남아있는데 왜 그러냐'는 표정을 지었다. 이미 알고 있다는 비열한 얼굴로 그가 또 한 번 목소리를 높였다. "바코드를 하나라도 더 붙여야 할 거 아냐! 빈둥빈둥 놀 생각 말고!"
하마터면 내 입에서 욕이 터져 나올 뻔했다.
화가 났지만 꾹 참고 열심히 일했다. 창고에는 책이 가득했기 때문에 난로도 피우지 않았다. 히터를 잠깐 켜 두긴 했지만 아주 잠깐씩만 켜서 늘 추위에 떨었던 기억이 난다. 창고 안에서 책 정리하는 것은 그나마 괜찮았지만 창고 밖 계단에서 바코드를 붙일 때는 종일 몸이 오그라들 정도였다. 지금이야 책에 바코드가 찍혀서 나오지만 그때만 해도 일일이 책에 바코드를 풀칠해서 붙였다. 바코드를 붙이는 일은 그 친구와 내가 항상 도맡았다.
바코드를 빨리 붙이면 일찍 집에 보내줄 것 같아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다 붙이고 나면 또 몇 박스씩 책을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몇 시간씩 계단에서 바코드를 붙이다 보면 손끝이 발갛게 다 얼어 있었다. 영천에서 올라와 자취를 한다는 그 친구와 함께라서 그나마 견딜 수 있던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나는 40일을 버텼다.
창고 재고관리를 담당하셨던 과장님은 창고장 보다 나이가 훨씬 많으셨다. 그런데도 새파랗게 젊은 창고장은 그분께 함부로 말하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아버지뻘은 될 것 같았는데 말이다. 그때 나는 아버지가 이런 식으로 힘들게 직장 생활을 하실 수도 있구나 싶어서 그 과장님 말씀을 잘 따랐던 기억이 난다.
창고 안에는 종일 라디오를 켜놨는데, 저녁 6시가 되면 배철수의 음악 캠프가 흘러나왔다. 음악 캠프가 시작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젊은 날, 그 열악한 환경에서 우리를 위로해준 건 음악뿐이었다. 음악 캠프가 끝날 시간이 되면 절로 설렜다. 음악 캠프 끝나는 시간이 퇴근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나는 우리만 창고에 배정된 이유를 알아냈다. 부모님이 갑질에 항의하기 위해 찾아오기 쉽지 않은, 그러니까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자취하는 아이들만 창고에 배정한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저급함에 치를 떨었다. 지금도 갑질은 사회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다. 지위와 권력이라는 무기로 누군가의 자존심을 갉아먹는 행위야말로 최악이 아닐까!
언 손을 호호 불며 바코드를 붙일 땐' 인생 참 어렵구나 '느끼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특별한 추억이다. 잊을 수 없는 스무 살 끄트머리 한 장면으로 기억된다. 그곳에서 힘들게 일한 덕분에 그 후 어지간한 일들은 힘든 축에도 들지 않았다. 거기에서도 버텼는데, 내가 무슨 일이든 못할까 싶은 생각이 드는 거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 힘든 일에 많이 부대끼며 산다. 그런 일들이 쓰나미처럼 몰려올 땐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는 다른 이들과 비교하며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할까 자괴감이 밀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무슨 일이든지 다 내 삶을 든든하게 다져주는 밑거름이 아닐까 싶다. 남을 해치는 일이 아니라면 쓸모없는 삶, 쓸모없는 순간은 없는 것이다. 언제 쓰일지 모르지만 내 인생을 더 빛깔 나게 만들어주는 양념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도 부디 우리 치열하게 살아내자!
"고통이 남기고 간 뒤를 보라! 고난이 지나면 반드시 기쁨이 스며든다." -괴테
"쉽고 편안한 환경에선 강한 인간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련과 고통을 통해서만 강한 영혼이 완성되고, 통찰력이 생기고, 일에 대한 영감이 떠오르며, 마침내 성공할 수 있다." -헬렌 켈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