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세 살 무렵 때만 해도 지금처럼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 그때는 블로그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새로 이사 간 동네는 또래의 젊은 엄마들도 잘 없었다. 우울한 날들을 보내던 차에 근처에 살던 지인이 놀러 왔다. 자기는 여성회관에 다니며 요리를 배운다고 했다. 수강료도 월 만원이고, 놀이방도 있어서 오후 1시까지는 아이도 봐준다고 했다. “세상에 그런 곳이 다 있어요? “그때만 해도 나는 세상 물정에 좀 어두운 편이었다.
그 후 나는 둘째를 업고서 셔틀버스를 타고 여성회관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자기 계발이 취미인 엄마가 되었다. 결혼 전에도 자취생활을 하면서 혼자 음식을 많이 해 먹었고, 요리에 흥미가 있다고 생각해 한식 조리사 과정에 등록했다.
한식을 4개월 배우고 나니 다른 요리도 배우고 싶어졌다. 양식, 중식, 일식, 제과, 제방까지 차례로 다 배웠다. 물론 조리사 자격증을 다 따지는 못하고, 한식, 중식, 양식 3개의 자격증만 취득했다. 이렇게 집 밖으로 나오면서부터 나의 활기찬 삶이 시작되었다.
나는 요리하는 것을 즐긴다고 생각했고, 그즈음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따져보니 지방에서 이런 분야로 나가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럼 출장 뷔페 같은 걸 해볼까?’ 예쁘게 상차림 하는 데에도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당시에는 현재에 내가 하고 있는 일들과는 전혀 상반된 쪽으로 진로를 정하고 있었다. ‘나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친구들이 나보고 칼질을 잘한다더라.’는 단순한 이유에서다. 또 막 결혼한 친구들이 나한테 반찬을 어떻게 하냐고 종종 물어왔기 때문에 나도 요리는 좀 할 줄 안다고 착각에 사로잡혀 있기도 했다.
그러다 둘째가 어린이집에 다닐 무렵 어느 날, 요리 배울 때 알던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어린이집에서 조리사로 근무 중인데, 보조하던 분이 그만두셨다고 하루 몇 시간만 일해 보라는 권유를 한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없는 시간에 4시간만 하는 것이니 해보겠다고 했다.
내가 들어간 곳은 조리실이었다. 앞치마 매는 것까지는 좋은데, 위생모까지 쓰란다. 조리실에서 음식을 하면 위생모 쓰는 건 당연한 거였는데, 미처 거기까지 생각을 못한 것이다. 나는 그때부터 서서히 알아가기 시작했다.
아이들 급식과 간식이라 크게 어려움은 없었지만, 조리를 마치고 나면 설거지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건 아니잖아.’ 내가 생각한 전개와는 전혀 달랐다. 어린이집 조리실에서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나는 고상하게 아이들이 먹을 점심과 간식만 예쁘게 차려 꾸며나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설거지? 그래 하지 뭐. 집에서도 하는 걸, 왜 못하겠어?'
점점 일이 익숙해지니, 문득문득 ‘내가 여기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다. 정확하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할 일은 따로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같이 일하던 그 언니는 굉장히 비관적인 사람이었다. 요리를 같이 배울 때에는 그 사람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나까지 괜히 침울해지고, 비관적으로 되어갔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고 사람이 나쁜 물이 든다는 것은 참 무서운 거였다.
같이 더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그만 두려는 찰나, 그 지인 언니는 퇴사하고 다른 분이 오셨다. 그래서 나는 새로 오신 분이 적응할 때까지만 있어 주자고 마음을 먹었다.
새로 온 조리사 선생님은 요리를 할 때마다 콧노래를 불렀다. 항상 신나게 흥얼거리고 행복한 얼굴로 일을 했다. “ 요리하는 게 즐거우세요?.”라고 물으면 “난 너무 좋아. 그래서 일하는 것도 덜 힘든 것 같은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 그렇구나. 이 분이야말로 정말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느낀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니었다. 한때 요리와 관계된 일을 하고 싶어 했으나, 나는 요리에 관심이 있었을 뿐 결코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린이집 조리실에서 일을 하면서 나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요리하는 것은 내 적성에 맞는 것이 아니라 단지 흥미가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8개월을 끝으로 그 일을 그만두었다.
보통 우리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이 일이 정말 내게 맞는 일인가’ 고민하게 될 때가 있다. 또 내가 하고 있지 않은 일을 바깥에서 바라볼 때는 그 일을 부러운 시선으로 보기도 한다. 그런데 이 일이 나에게 맞을까 안 맞을까 고민되면 일단 한번 시작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생각만 하지 말고 일단 그 속으로 뛰어 들어가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옆에서 보는 것보다 내가 그 안에 들어가서 직접 보는 것과는 큰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해보고 안되면 다른 일을 하면 되는 것이지, 늘 우거지상을 하고 일을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이 자기한테 맞는 일만 하고 살 수는 없잖아.”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이왕이면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면 힘든 순간이 와도 견딜 수 있는 힘이 크게 생기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에서 파트타임 일을 그만두고 다음 해 1월, 나는 독서논술지도사 수업을 처음 듣게 되었다. 그 순간 머리 위에 해가 반짝 뜨는 것 같았다. ‘그래, 바로 이거야’ , 수업이 재밌어도 너무 재밌는 것이다. 왜 이렇게 내가 먼 길을 돌아왔을까?’ 드디어 나한테 진짜 맞는 일을 발견한 것이다. 물 만난 고기처럼 이곳저곳에서 닥치는 대로 독서와 관계된 수업을 들었다.
그 후 나는 지금까지 내가 좋아하면서도 나름 잘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플러스가 필요한 것이다. 끊임없는 자기 계발! 이것이 더불어 주어졌을 때에는 상승효과가 있다. 내가 하는 일을 더 치고 나갈 수도 있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떨쳐버릴 수 있다.
그러니, 무슨 일이 나한테 맞을까 막막하다면, 내가 좋아하고, 앞으로도 좋아할 수 있고,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자! 그리고 부딪혀보자!
#적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