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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 Nov 18. 2022

될 때까지 해봐야 후회가 없지

나는 뭔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오히려, 오기가 생긴다. 그래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한번 해 보자. 될 때까지 해보자는 마음 말이다.  그래야 나중에 후회를 조금이라도 덜 하게 된다는 걸 경험상 체득한 덕분이다.


 물론 여기서 수학은 제외다. 수포자라 수학은 될 때까지 할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까. 평소 아이들이 "안 될 것 같아서 포기했어요."라고 말하면 내 잔소리가 길게 이어진다. " 너는 해 보지도 않고 왜 그런 소리를 하니? 해 보고 나서 그런 말을 해도 늦지 않아."라고 말이다."

 

 지금 각 분야에서 대세로 떠오른 사람들도 일이 잘 안 풀리고 힘든 시기가 많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절실한 마음으로 계속, 될 때까지 자기 일에 매진했기 때문에  지금의 위치에 오르지 않았을까 싶다.

 

 대표적으로 드라마 작가 김은숙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녀는  회당 1억 원의 원고료를 받는다고 한다. 강릉 출신인 그녀는 가구공장 경리로 일하면서 7년 동안 악착같이 돈을 모아 25살에 서울예대 문창과에 입학했다.


 그 후 열심히 작가의 꿈을 키웠지만 여전히 궁핍함에 시달렸다. 대학 졸업 후 단칸방에 살면서 연극 대본을 쓰긴 했으나 수입이 변변하지 않아, 어떤 때는 새우깡 한 봉지로 사흘을 버틴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글을 썼다. 끊임없이 읽고, 쓰고 준비한 그녀에게 어느 날, 천금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드라마  피디였던 지인이 그녀에게 드라마를 써보라고 조언했고, 그녀는 다른 작가와 함께 월급 70만 원을 받고 시작했다. 그 드라마가 바로 최민수, 최명길 주연의 드라마 '태양의 남쪽'이었다. 지금은 <파리의 연인> <시크릿 가든><태양의 후예> <도깨비><더킹> 등을 집필한 최고의 드라마 작가인 그녀가 당시 생활고로 글쓰기를 포기했다면 어땠을까?

 

 김은숙 작가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열정을 가지고 끝까지 도전하는 편이다. 열정이란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이다.  주변인들 사이에서 나는 '열정이 넘치는 사람'으로 통한다.  남편은 내가 한 가지에 꽂히면 그것만 보고 다른 건 볼 줄 모른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 내가 지금껏 열정을 쏟은 분야는 무엇일까?  소소한 것에도 내 마음이 꽂히면 밤을 꼴딱 새우기도 한다.

 

1. 왕년의 '국민 SNS' 였던 싸이월드 미니홈피 사진 백업하기


 싸이월드가 폐업한 가운데, 과거 자료를 미처 백업하지 못해서 발을 동동 구른 사람들이 많았다. 몇천 장이나 되는 사진들을 고스란히 날리기엔 아쉬워서였다.  공식 홈페이지 로그인이 완전히 막히자 나도 적잖이 속앓이를 했다. 그러다 우연히 싸이월드 사진을 무료료 백업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그런데 문제는 기존 싸이월드 로그인 정보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뿔싸!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밤을 새우더라도 알아내겠다는 각오로 덤볐다. 아이디, 비번을 치고 또 치고 얼마나 반복했을까? 나는 결국, 그날 사진을 다 백업받을 수 있었다. 별거 아닌 일일 수도 있지만 내게는 몇천 장의 추억을 온전히 소환할 수 있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2021년에 작성한 글로 지금은 싸이월드 사진첩 복원 하기가 보다 쉬워진 걸로 안다.)



2. 촌 스테이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때 TV를 보는데, 자막으로 촌 스테이 공고가 나왔다. 정확한 주관처는 가물거리지만  도시 아이들을 한 달간 시골에서 살게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자기 부담금은 얼마 되지 않았고, 나라에서 거의 다 지원을 해주었다. 아들은 5학년 때부터 사춘기 이빨을 드러낸 탓에 나는 공고를 보자마자 '그래 이거다'라며 쾌재를 불렀다.  1, 2차에 나눠 총 100명의 아이들을 모집한다고 했다. 나는 절실한 마음을 담아 지원서를 썼다. 다행히 같은 지역에서 달랑 2명 뽑힌 1차 선발자 중 한 명이 우리 아들이었다.


 결국 아들은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어느 산골 마을에서 한 달간 살았다. 가방도 없이 논두렁길을 걸어 등교했고, 하교 길에는 새끼 노루를 만나기도 했단다. 숲에서 체험도 하고, 온 동네 아이들과 물놀이도 하고, 머루도 따 먹으면서 그렇게 지냈다. 아들은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천국 같은 시간이었다고 종종 말한다.  당시 나는 온 마음을 다해 그 프로그램만 생각했다. 그러니 선발에서 탈락했다면, 모르긴 몰라도 될 때까지 신청을 이어갔을 것이다.

 

 아무튼 한 번뿐인 인생, 그저 그렇게 밋밋하게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지 말자. 바라는 일이 있다면 쉽게 주저앉지 말고, 될 때까지 한다라는 마음으로 끝까지 해 보자. 무슨 일이든지 될 때까지 해봐야 후회가 없는 법이니까!

 


#될때까지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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