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필사를 한다. 필사란 글을 베껴 쓰는 것을 말한다. 몇 년 전 드라마 도깨비가 유행이었을 때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라는 감성치유 라이팅 북이 유행했다. 그 후 다양한 감성치유 라이팅 북이 지금까지도 유행하고 있다.
예전에 모 일간지에 실린 필사에 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디지털 시대의 '디톡스'필사 열풍, 쓰는 만큼 느려진다. 느려진 만큼 치유된다'는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급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필사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필사 모임이 생기기도 하고, 저마다 필사하는 이유를 찾아가고 있다. 젊은 직장인은 퇴근하고, 집에 와서 매일 하는 필사에서 휴식을 찾는다고 했다.
그럼 나는 왜 필사를 할까? 솔직히 거창한 이유는 없다. 동시나, 시도 필사하고, 책을 읽다가 눈에 들어오는 문장도 옮겨 적고, 신문에서 읽은 글을 베껴 쓰기도 한다. 김훈의 에세이 <자전거 여행>을 필사한 적도 있다. 예전에 한 번 읽었고, 두 번째는 밑줄 친 문장들만 필사했다. 분명 읽었던 책이었는데, 따라 쓰다 보니 생소한 문장들을 접할 때가 있다. 내가 활자를 따라가며 열심히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글의 의미보다는 활자를 더 집중해서 읽었던 게 아니었나 싶다.
내가 생각하는 필사의 좋은 점은 우선 필사를 하는 동안은 오롯이 '멈춘'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바쁜 일상과 다른 복잡한 일들을 뒤로하고 베껴쓰기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잠깐의 '쉼'역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서적인 안정에도 좋은 취미라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내가 어떤 책을 고를까? 또 통으로 필사하지 않는다면 어떤 문장을 필사할까? 필사할 글을 선택하여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고, 능동적으로 글을 찾아갈 수 있다.
소소하게는 맞춤법과 띄어쓰기도 익히며 빈약한 문장력을 보완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점점 스마트 시대가 되어가다 보니 sns상에서 의사소통을 주고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도 글쓰기를 할 때면 몇몇을 제외하고는 한숨을 푹푹 내 리쉬며 첫 문장 쓰기를 어려워한다. 쓰기도 전에 "쓰는 건 힘들어요."라고 하소연하는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긴 글 쓰기를 두려워하는데, 필사에 익숙해지면 글쓰기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좀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나중에 써먹을 요량으로 깊은 인상을 준 문구들을 베끼고 기이하거나 아름다운 단어의 목록을 작성했다."
-<달과 6펜스 >를 쓴 영국의 소설가' 서머싯 몸 '
또 나는 필사를 하면서 눈으로 읽었을 때보다는 더 깊은 울림을 경험하기도 한다.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필사를 하다 보면 그 글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어휘나 문장들이 기억 속에 더 오래 각인되는 장점이 있다.
피천득의 '봄'이라는 수필에서 옮겨 적은 이 문장들을 볼 때마다 매년 해마다 돌아오는 봄을 맞이할 수 있는 내가 더없이 고맙게 느껴지기도 한다.
민들레와 바이올렛이 피고, 진달래 개나리가 피고 복숭아꽃 살구꽃 그리고 라일락 사향 장미가 연달아 피는 봄, 이러한 봄을 사십 번이나 누린다는 것은 적은 축복이 아니다. 더구나 봄이 사십이 넘은 사람에게도 온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피천득 수필집 <인연> 中에서
필사를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고, 그냥 쓰고 싶은 것을 따라 쓰기만 하면 된다. 굳이 여러 문장이 아니더라도, 하루 한 문장이라도 매일 필사를 할 수 있다면 아마도 머지않아 한 문장보다 더 많은 글들을 베껴 쓰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나도 이런 글을 써봐야지' 하는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마구 샘솟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연유로 나는 오늘도 필사를 한다.
책을 읽다가 당신의 영혼을 뒤흔들거나 유쾌하게 만드는 문장을 마주칠 때마다 당신의 지적 능력만 믿지 말고 그것을 외우도록 노력해 보십시오. 그러면 어쩌다 고통스러운 일이 닥치더라도 고통을 치유할 문장이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