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잎과 추어탕
아파트 오솔길 쉼터 의자에서 쉬고 계시는 어르신을 만났다. 80대 후반에서 90대 초반쯤 되셨으려나. 아버지가 살아 계시면 저 정도 연세일 텐데. 마트 앞에서는 딱 엄마 나이대로 보이는 여자 어르신을 만났다. 씩씩하게 걸어가셨는데, 엄마 생각이 났다.
코너 돌아서 빵집 앞 도로변에서는 '새콤달콤 윙크하는 자두'를 만났다. 윙크하는 자두라니 자두 파시는 아저씨 센스가 좋으시다. 슬쩍 미소가 지어졌다. 첫아이 임신했을 때 아주버님이 갖다 주신 자두 한 박스가 떠올랐다 그때는 신 것을 좋아해서 나 혼자 앉아서 한 바가지는 먹은듯하다.
빵집을 지나올 때는 호박잎이 보인다. 아, 저것은 엄마가 추어탕을 끓이실 때 몸부림치던 미꾸라지를 대야에 담아 소금을 뿌려 문지를 때 썼다.
호박잎으로 빡빡 문지르면 거품이 나와 미꾸라지가 잘 해감된다. 어릴 때는 엄마가 추어탕을 끓여도 여러 마리가 몸부림치던 모습이 떠올라 징그러워 먹지 못했다.
내가 어른이 되어서도 엄마는 종종 추어탕을 끓이셨는데, 먹지 않았다. 엄마가 먹어보라고 자꾸 권하면 마지못해 나물 건더기만 젓가락으로 겨우 하나씩 건져먹는 수준이었다.
나이가 든 건지, 입맛이 변한 건지, 아니면 건강을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몇 년 전부터 추어탕을 먹기 시작했다. 지인이 어느 날 잘 가는 추어탕 집이 있는데, 비린내가 전혀 안 나서 맛있다며 사준다고 먹으러 가자고 했다.
추어탕은 못 먹는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막상 가보니 웬걸 추어탕 한 그릇을 다 비웠다. 비릿하지도 않고 맛있다. 추어탕을 먹을 줄 아는 사람으로 거듭났다.
문득 무슨 일이든지 '절대'라는 말은 함부로 쓰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내게 추어탕은 절대 못 먹을 음식이었는데, 지금은 추어탕을 한 번에 두 팩이나 포장해 오는 사람으로 바뀌었으니까.
영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입맛이 변했다. 아버지도 떠나셨고, 자두 먹던 임신부는 어느덧 사회인이 된 두 아이를 키워냈다. 호박잎으로 미꾸라지를 팍팍 문지르던 중년의 엄마는 이제 팔십 대 노모가 되었다.
어제는 유독 곳곳에서 만나는 모든 대상이 추억을 회상케 했다. 뭐가 됐든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건 없음을 다시금 생각했다. 그나저나 호박잎 한번 쪄 먹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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