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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 앞의 계절 May 09. 2021

어서 와, 면접은 처음이지?

 


  정식 면접은 생전 처음이다. 그동안 한 번도 면접을 본 적이 없다. 전 직장은 친구 소개로 이력서 들고 가서 부서장에게 인사만 하고 입사했다. 그렇다고 직원이 적은 회사는 아니다. 지금은 천명이 넘는다. 내가 입사할 때만 해도 설립 초기라 나처럼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지금은 정식 면접을 거쳐야 된다. 그 직장을 정년퇴직할 때까지 다녔다. 그러므로 면접 볼 기회가 없었다. 그랬던 내가 면접을 보러 다녔다.  


  정년퇴직 후 나오던 실업급여가 사라질 무렵, 몇 군데 이력서를 넣었다. 그동안 하던 일과는 전혀 다른 생뚱맞은 곳, 학교에 응모했다. 전 직장은 학교와는 1도 같은 점을 찾아볼 수 없는 회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코로나 시대라 대부분 이메일로 이력서를 받아서 좋았다. 이력서를 넣으면 반응이 아주 다양하다. 메일만 열어보는 곳, 메일조차 열어보지 않는 곳, 메일 잘 받았다고 연락을 주는 곳도 있다. 가장 짜증 나는 곳은 이력서를 직접 들고 오라는 곳이다. 물론 아쉬운 마음에 이력서를 들고 가긴 한다. 그냥 이메일로 받아도 될 걸 굳이 먼 걸음을 하게 만드는 곳, 정말 대박 왕짜증이다. 그렇다고 뽑아주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몇 군데에서 1차 서류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학교라 면접은 수업이 끝난 오후에 이루어진다. 대여섯 군데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어떤 날은 하루에 세 군데 면접을 본 적도 있다. 다행히 30분 간격으로 시간차는 있었다. 한 군데 면접이 끝나면 부리나케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결국 세 번째 면접장 소엔 십 분 정도 지각했다. 다행히도 그곳은 면접 자체가 늦어지고 있는 상태였다. 


  면접관은 3명이었다. 면접자는 혼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간혹 면접자를 같은 자리에 불러놓고 면접을 치른 경우도 있었다. 나랑 같이 면접 보는 사람이 경험자인 경우가 있었다. 경험자인 면접자는 이것저것 말할 것이 많다. 준비된 자료도 많다. 한 번은 나도 모르게 그 면접자를 힐끔 거리곤 했다. 이게 무슨 못난 모습인가? 정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을 정도다. 그런 나의 모습을 생각하면 정말 화가 치민다. 그런 내 모습을 면접관들도 눈치챘을 것이다. 정말 창피한 일이다. 면접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사람이 제대로 준비해온 옆 사람을 구경한 것이다. 준비하지 못한 것뿐만 아니라 마음가짐 자체도 준비가 덜 된 상태라는 걸 들킨 셈이다. 그런 나를 뽑아줄 학교는 없다. 나이가 있어서 떨리진 않는다. 다만 준비되지 못한 자의 모습을 보이고 만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좀 더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가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쉽게 생각했다. 뭐 이쯤이야 라고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생판 모르는 분야임을 망각한 나의 실수였다.  


  면접관들이 물어보는 질문은 한결같았다. 이번에 하고자 하는 일이 경험도 없고 전에 하던 일과는 전혀 다른 일인데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공통적으로 하는 질문이었다. 면접관이 그런 말을 내뱉으면 나는 이내 기가 죽었다. 솔직히 30년 넘게 한 직장만 다니던 사람이 전혀 다른 곳에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부담이 된 건 사실이다. 그 와중에 그런 말을 들으면 더욱더 긴장된다. 준비해 갔던 말들이 나오다 말고 꼬리를 감추곤 했다. 입 밖으로 나오는 말들은 두서가 없고 횡설수설이 되기 일쑤다. 솔직히 면접이 처음이라 준비도 제대로 못한 상태였다. 나는 처음이지만 상대는 그렇지 않았다. 해마다 나 같은 사람들의 면접을 보아온 면접관들은 눈치가 빠르다. 몇 마디만 해보면 저 사람이 어떤 상태라는 걸 금방 알아챈다. 더군다나 나 같은 초짜라면 눈빛만 봐도 알아챌 정도로 빠삭하다. 


  가장 마지막에 면접을 본 학교는 정말 이상했다. 1명을 뽑는 자리에 세명이 면접을 보러 왔다. 택시를 타고 갔음에도 면접 시간에 십분 늦은 그곳이다. 다행히 면접은 시작되지 않았다. 면접 시간이 십오 분 정도 지났을 때 그중 한 명을 불러갔다. 우린 당연히 그 사람이 면접 보러 갔음을 예상했다. 삼십 분 정도 있다가 그 면접자는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더니 집으로 가지 않고 도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서로 초면인지라 물어볼 수가 없었다. 속으로만 생각했다. 저 사람은 면접이 끝났는데 왜 안 가는 거지? 이런 눈빛만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5분 정도 후에 그 면접자는 또다시 면접장소로 불려 갔다. 나와 다른 면접자 1명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러더니 기다리던 면접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너무 이상하지 않아요? 아까 분명히 면접을 봤을 텐데 또 불러가고 뭔가 있는 게 분명한 것 같아요? 그죠? 우린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급기야 우리는 "우리는 어려울 것 같죠? 그냥 집으로 갈까요?" 이런 말까지 나올 정도로 면접은 길어졌다. 그리고 삼십 분 정도 뒤에 1번 면접자는 우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가방을 챙겨 교실 밖으로 나갔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설명이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솔직히 지금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난 3번이었는데 2번 면접자는 짧게 면접이 끝났다. 물론 나도 짧게 끝났고 결국은 불합격이었다.


  탈락 이유는 1번 면접자와는 무관하다. 나의 경우는 내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떨어진 게 당연하다. 그렇다고 쳐도 1번 면접자의 경우는 여전히 의문점이 많다. 내 생각엔 1번 면접자가 합격했다고 믿고 있다. 확인해 본 봐는 없다. 여하튼 그날 세 군데 면접 본 곳 중에서 가장 먼저 면접을 본 학교에서 합격 문자를 받았다. 난 내가 생각해봐도 너무 솔직한 게 탈이다. 가장 먼저 면접을 본 학교에서 나는 담당 샘과 면접관들에게 말했다. 30분 뒤에 다른 곳 면접을 보러 간다고. 그랬더니 면접 순서를 1번으로 지정해 줬다. 그리곤 면접도 짧게 끝내줬다. 면접을 끝내고 나오는 길에 담당 샘이 다른 곳 면접 잘 보라는 인사말까지 건네줬다. 그리고 합격 여부를 바로 문자로 주겠다고 했다. 솔직히 이런 경우, 나를 좋아할 곳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합격 문자를 주고 전화까지 친히 해줬다. 나중에 다른 곳이 됐냐고 나한테 물어보길래 안됐다고 말했더니 미소로 넘기며 살짝 안타까운 눈빛까지 보냈다. 이렇게 그 학교의 인연은 시작됐다. 이 곳이 결정되고 나서 또 다른 학교에서 1차 서류 합격했으니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합격한 곳보다 페이도 높고 조건도 좋았다. 그러나 난 그곳에 면접을 보러 못 간다고 정중하게 사양했다. 다른 곳에 취직했노라고 말했다. 나를 믿고 선택해 준 학교를 배신할 수 없었다. 한번 준 믿음은 그 사람을 믿게 하는 강력한 힘이 작용한다. 그 힘을 나는 믿기로 했다. 


  면접을 여러 번 보면서 느낀 점이 많다. 면접을 본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과대 포장해서도 안되지만 과소 포장해도 안된다. 그 적절한 경계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솔직하게 자신을 알려주는 것이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단점이 장점이 될 수도 있고 장점이 단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처럼 처음 면접을 보는 사람들은 면접 자체만으로도 설레고 좋다. 취업이 부담으로 다가오긴 하지만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점에서 살짝 긴장도 되고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높은 나이의 사람들은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일 수도 있다. 같은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로의 발돋움은 까치발을 해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눈감고 있으면 안 된다. 그러니 도전해 볼만하다고 감히 말한다.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모든 것이 낯설다. 설렘으로 가득 찬 길이다. 하얀 눈이 펑펑 내린 폭설 한 귀퉁이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흰 도화지다. 자, 이제 첫 발자국을 내디디면 된다. 내가 했듯 당신도 도전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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