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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 앞의 계절 Jan 30. 2021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시어머니는 꼬부랑 할머니다. 꼬부랑 할머니 동요는 들어봤다. 결혼하면서 꼬부랑 할머니를 직접 만난 것이다, 우리 시어머니가 꼬부랑 할머니일 줄은 몰랐다. 내가 결혼했을 때 이미 허리가 굽은 상태였다. 90이 낼 모래다. 키는 작달막하다. 피부는 시골에 살아서 까맣다. 몇 가구 안 되는 촌 동네다. 시골이 아니고 도시였다면 귀여움 받고 자랐을 것이다. 작고 귀엽다. 어린 손자를 놀이방 보낸다는 며느리에 맞서 서울로 상경했다. "돌도 안 지난 아이를 어떻게 놀이방에 맡길 수 있냐?" 도무지 며느리가 이해 안 된다는 이유를 들어 손자를 본다는 명목으로 상격 했다. 아이들은 돌 정도까지 봐주셨다. 애들은 두 돌이 되기 전에 놀이방에 보냈다. 손자는 시어머니가 보기 힘들 정도의 무게가 됐다. 손녀도 있다. 손자 손녀가 놀이방으로 출근한다. 나도 신랑도 출근한다. 


  도시의 아파트에서 시어머니 혼자서 할 일은 없다.  상가 노인정도 있었지만 그곳은 싫다고 한다. 노인이 노인 되기를 거부하듯 그곳을 거부했다. 혹시 나도 늙으면 거부할지도 모르겠다. 스스로는 인정하기 싫은 법이다. 늙어 간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인정하게 만든다. 주변이 아무리 그런 환경을 만들지라도 최대한 거부할 일이다. 할머니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죽어야지' 우리 시어머니도 늘 입에 달고 산다. 그러나 그 말은 죽지 말아야지와 같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직장에도 비슷한 말을 달고 사는 사람이 있다. '이 놈의 직장 당장에 때려치워야지' 이런 말은 하지만 절대 그만두지 않는다. 말만 그렇다는 걸 우린 다 안다. 어머니는 소파와 단짝 친구다. 거의 한 몸이다. 자석처럼 늘 붙어있다. 티브이보다 꾸벅꾸벅 존다. 어떤 땐 소파도 흔들리는 것처럼 보인다. '졸리면 들어가서 주무세요, 어머니' 내가 말하면 '내가 언제 잤다고 그러냐? 자는 거 아니다.' 물론 잔적 없다. 단 소파랑 노는 중이다.  티브이 보고 있다. 이렇게 말한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조금 있다 보면 또 고개가 왔다 갔다 한다. 처음엔 그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자주 있다 보니 이젠 그러려니 한다. 우리 친정 엄마도 똑같다. 어쩜 그렇게 두 분이 똑같은 지 모른다. 두 분 다 할머니라 그렇다. 시어머니가 친정 엄마보다 훨씬 연배가 높다. 행동은 비슷하다.

  

  도시로의 상경은 노인들에겐 좋지 않다. 우선 공기도 안 좋고 특별히 갈 데가 없다. 시골생활과는 다르다. 네모난 상자 아파트 생활은 불편하다. 아파트 생활에 적응 못할까 봐 걱정이 태산이었다. 시어머니는 도시에서 살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만 계속 살았다. 적응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 서울로 올라왔을댄 신경이 많이 쓰였다. 그런데 그것은 나의 기우였다는 걸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아파트 환경에 금세 적응했다. 시어머니 최애 장소가 생긴 것이다. 그것도 세 군데나. 

  

  첫 번째는 아파트 정자나무 아래다. 볕이 좋으면 그곳으로 마실 간다. 아파트에서 아름드리나무는 딱 한 그루다. 나무 아래 큰 테이블이 있고 의자가 있다. 여름이면 할머니들 수다 장소다. 시어머닌 단골손님이다. 여름엔 그곳이 제격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이야기들이 나뭇잎처럼 나부낀다. 일부 할머니들은 상가 내 노인정에도 간다. 노인정과 정자를 드나들곤 한다. 그렇게 할머니들과 안면을 텄다. 다행히 우리 아파트엔 할머니들이 많다. 할아버지들도 몇 분 계신다. 할아버지에 비해 할머니들이 훨씬 많다. 통계가 맞는 것 같다. 여자들 수명이 긴 것은 확실해 보인다. 멀리 볼 것도 없다. 당장 우리 아파트만 봐도 증명된다. 정자의 수명은 가을 까지다. 겨울엔 추워서 정자에 앉아 있을 수가 없다.


  두 번째 장소는 상가 내에 있는 미용실이다. 시어머니가 발굴해 낸 장소다. 그런 걸 보면 우리 시어머니는 창조자다. 무언가를 발굴해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도시스럽다. 전혀 시골스럽지 않다. 미용실은 동네 사람들이 많이 드나든다. 거기다가 미용사 언니는 자연스레 수다쟁이가 된다. 시어머니가 드나들어도 싫은 소리 한번 안 한다. 머리를 하러 온 손님도 아닌 시어머니가 마냥 좋을 리는 없다. 그렇다고 노인더러 가라고 하지도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또 인연을 만들었다. 아예 미용실로 출퇴근을 하기도 한다. 집에서 하지 못한 며느리 흉을 거기 가서 보고 오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천만다행이다. 집에선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런 거 보면 우리 시어머니는 정말 대단한 분이다. 며느리랑 살면서 잔소리 안 할 시어머니는 없다. 며느리 하는 일이 맘에 들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저렇다 말씀이 없다. 대놓고 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난 살가운 성격이 아니다. 거기다 이쁜 며느리도 아니다. 다만 막내며느리일 뿐이다.


  세 번째로 최애 하는 장소가 생겼다. 그것은 다름 아닌 홍보관인지 떴다방인지 하는 곳이다. 아파트 할머니들과 같이 가는 모양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곳에 재미를 붙였다. 소녀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듯 할머니들도 우르르 몰려다녔다. 처음엔 그곳에 어떤 곳인지 몰랐다. 낮 시간에 무얼 하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잘 지내시면 다행이다 싶었다. 별 탈 없이 잘 지내는 것 같았다. 거길 다니면서 집에 올 때마다 뭔가를 들고 온다. 처음엔 싼 물건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비싸졌다. 휴지, 식용유, 미역, 옥팔찌 등. 시어머니는 돈이 별로 없다. 우린 부자가 아니다. 시어머니도 부자가 아니다. 자식들이 용돈을 드린다고 해도 거액을 가지고 있진 않다. 그나마 그것이 다행이었다. 몇 백만 원짜리 사달라고 조르진 않았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한도 내에서 사들고 왔다. 뭐라고 탓할 순 없다. 거기 가면 그렇게 재미나게 해 준다고 자랑삼아 이야기하곤 했다. 집에서 우린 시어머니를 즐겁게 해주지 못한다. 우리가 못해주는 거 그 사람들이 대신해주는 거다 생각했다. 그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그곳을 들락거렸다. 그래도 저녁 먹을 시간이면 늘 집으로 와서 우리랑 같이 저녁을 먹었다. 이젠 그으로 출근을 했다. 말로는 장소도 수시로 바뀐다고 한다. 그때마다 할머니들은 또 우르르 몰려다녔다. 이쪽에서 하면 이쪽으로 저쪽에서 하면 저쪽으로.

 

  지금으로 말하면 아이돌 그룹 구경 가서 굿즈 사는 거랑 같을까? 잠시 그런 생각을 해봤다.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대면서 구경하는 관객들이 있다. 예전의 팝가수들이 내한 공연할 때처럼 말이다. 물론 상황은 다를 것이다. 다만 우리 시어머니가 구경하러 간 곳도 그런 공연장과 비슷하다. 그곳에 가면 할머니들 혼을 빼놓는다고 한다. 주머니 돈을 안 뺏기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그렇게 신나고 즐거운 생활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런대로 잘 지내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사건이 터졌다. 저녁 먹을 시간이 지나도 집에 오지 않았다. 보통은 저녁 먹을 시간만 되면 집에 오곤 했었다. 그때도 계절은 지금처럼 겨울이었다. 겨울은 해가 짧다. 금방 해가 진다. 저녁 9시가 돼도 시어머니가 집에 오지 않았다. 동네 상가, 미용실 다 찾아봐도 없다. 동네 할머니들 몇 명에게 수소문해봐도 모르겠다는 말 뿐이었다. 구경을 가도 저녁이면 늘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래서 그런 곳에 가지 말란 말도 하지 못했다. 바깥은 점점 어두워지는데 소식은 감감무소식이었다. 


  경찰서에 신고를 할까 생각도 해봤다. 그건 마지막 단계에 가서 할 일이다. 우선은 조금 더 찾아보기로 했다. 수소문 끝에 모 건물에 할머니들이 모여 있을 거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신랑과 나는 얼른 그 장소로 갔다. 정말 늦은 시간이었다. 상가 건물 2층이었다. 건물 입구에 들어서자 음악 소리가 쾅쾅 들렸다. 큰 공간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순간 깜짝 놀랐다. 공간이 너무 커서 놀랐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빽빽하게 앉아 있어서 두 번 놀랐다. 중간중간에 사람 다닐 정도의 간격을 두고 사람들이 주르륵 앉아 있었다. 몇 백 명은 돼 보였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소설과 영화가 있다. 난 단연코 말할 수 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고. 그곳이야말로 노인을 위한 나라다. 젊은이들은 전혀 모르는 나라다. 나도 처음 봤다. 우리가  모른다고 존재하고 있는 나라가 없어지진 않는다. 인정하든 안 하든 존재한다. 우리가 들어가자 안내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못 들어가게 제지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랑과 나는 무대뽀로 사람들을 헤치고 나아갔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후문 쪽이었다. 한걸음 한걸음 사람들을 제치며 앞으로 전진했다. 안내자들이 우리를 저지하는 걸 무릅쓰고 나갔다. 난 안내자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이 늦은 시간까지 노인들을 붙잡아 두고 뭐 하는 짓이냐?" 소리를 버럭버럭 질렀다. 그땐 정말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시어머니가 길이라도 잃어버렸을까 봐 노심초사하다가 시어머니가 거기 있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은 상태였다. 여기저기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수군거렸다. 무시했다. 


  난 시어머니만 찾으면 된다. 열심히 눈을 부라리며 찾았다. 결국 시어머니를 찾았다. 그런데 세상에나 우리 시어머니 맨 앞줄에 앉아 있었다. 작은 노인네라 잘 보려고 아마 가장 첫 줄에 앉은 모양이었다. 생각해 보시라. 상상해 보시라. 몇 백명의 사람들을 뒤 흔들어 놓고 공연도 망친 나의 모습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큰소리치며 시어머니 손을 잡고 그곳을 나왔다. 물론 공연은 끝나지 않았다. 시어머니를 보자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안심의 눈물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어머니 손을 꽉 잡고 걸어왔다. 우리의 놀란 모습을 보고, 시어머니도 놀란 모양이다. 그때만 해도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라 연락할 길이 없었다. 무작정 찾아다닐 수밖에 없다. 우린 그렇게라도 시어머니를 찾았으니 천만다행이었다. 그 사건 이후로도 시어머니는 가끔 그런 곳으로 구경을 가곤 했다. 그러나 저녁이 되면 꼭 집으로 온다. 저녁 늦게까진 그곳에 있지 않겠다고 우리와 약속했다. 그 약속은 꼭 지켰다. 참으로 웃지 못할 추억이다. 우리 시어머니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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