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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 앞의 계절 Feb 18. 2021

나에게 쓰는 편지

  


  안녕?  나하고는 처음이지? 처음 보는 친구에겐 어떤 인사말이 어울릴지 모르겠어. 안녕이라는 말 밖에 생각이 안 나네. 이렇게밖에 인사 못하는 나 이해해줄래? 처음 보는데 반가워 친구, 이렇게 인사할 수도 없잖아, 안 그래? 그러니 이쯤에서 인사는 한 걸로 치면 좋겠어. 생전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야. 뭐랄까, 음 아무도 없는 망망대해에 아주 깊은 바닷속으로 천천히 들어가는 기분이야. 그리고 아무도 찾지 않는 산골에 있는 동굴 속을 탐험하는 탐험가 같아. 미로 속을 빙빙 도는 느낌도 있어. 여러 갈래로 갈라진 길이 있어. 어지러워. 어디로 나가야 할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 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앞으로 나가 볼게. 그래야 널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렇지?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은 산뜻해. 우선 발걸음이 가벼워. 나도 모르게 룰루랄라 노래가 나오곤 해. 주변 사람을 의식하지 않아도 돼. 걱정하지 마. 큰 소리로 노래 부르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돼. 그동안 혹시 남의 눈치 보느라 큰 소리 한번 질러보지 못했다면 이 기회에 큰 소리로 외쳐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건 네 맘이니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누가 뭐라고 하건 상관하지 마. 그런 아무래도 괜찮으니까. 그동안 너 혼자 밀실에 처박혀 있느라 고생이 많았어. 외부인이 들어오지 않는 그 비밀스러운 방에서 얼마나 외로웠니? 안 봐도 비디오야.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비슷할 거라고 추리하곤 해. 일반적으로 합리적이고 타당한 말이긴 해. 줄거리는 누구나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 그러나 줄기에서 뻗어나가는 잎사귀들은 서로 다르거든.  크기, 모양, 잎맥의 형태 등 여러 면에서 매우 다양해. 또한 햇빛도 많은 작용을 하지. 햇빛을 받아야 키가 크고 몸도 자라지. 물론 마음도 훌쩍 클 수 있어. 에너지가 필요해. 내가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거든. 어떤 일을 감당해 낼 수 있으려면 어느 정도의 스킬도 필요하지. 특별한 비약이 필요하진 않아. 그냥 두근거리는 마음이면 돼. 저녁에 잘 때 기분 좋게 잠들면 돼. 통장 잔고가 적으면 어때? 아니지 이렇게 말해놓고 금방 후회했어. 통장 잔고는 필요하지. 어딘가로 보내야 할 때가 많거든. 그 정도는 꼭 있어야 하지. 돈도 그래,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아. 통장에 들어왔다가 어딘가로 자기 갈길을 찾아 떠나가거든. 나도 똑같아.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는 중이야. 이때 돈은 이성 같고 나는 감성 같아. 이성과 감성은 서로를 왕래하는 사이잖아. 익숙한 거래야.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거래의 형식이야. 이성이 자리 잡으면 감성이 자꾸만 자리를 잃어 가는 것 같아.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야. 익숙해지지 않으려 고심 중이야. 그러나 익숙하다는 건 좋아. 나이가 먹을수록 새로움이 자꾸만 두려워져. 불안해지기도 해. 동전의 뒷면처럼 확실하면 좋겠지만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거든. 시시때때로 그런 불안이 나를 움직이게 하기도 하지만 즐기진 않아. 불안은 호기심을 불러오기도 해. 호기심은 새로움을 유발하지. 호기심은 초록 초록한 풀 한 포기를 키우기도 해. 그렇게 한 두 개가 자라나면 나만의 정원이 생기지. 나만의 정원이라고? 물론, 너만의 정원이야. 다들 그렇게 알고 있지. 자기만의 정원인 줄 알고 있어. 그렇게 알고 있는 게 좋을 거야. 나만의 생각을 키우는 곳이니까 말이야. 그렇게 생각을 키우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만의 정원이 아니게 되는 때가 도래해. 그때부턴 나만의 정원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정원이 되는 거야. 나로부터 너에게로 너에게서 우리에게로 번져가지. 곳곳에 풀들이 무성해지지. 누군가는 그 풀을 뽑아 버릴 거야. 누군가는 그 풀을 꺾어 식탁 화병에 놓겠지. 또 누군가는 풀씨를 받아 다른 데에 뿌리려 들겠지. 정말 세상은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어. 인정해야만 해. 누구나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산다면 그건 세상도 아니야, 안 그래?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해. 그래야 내 세상도 넓어지는 거야. 수수께끼 같아. 어릴 때 수수깡을 먹어본 적 있어. 뻐석뻐석한 수수깡을 뚝 잘라 입에 물고 한참을 씹어 먹지. 그러면 입 가득 단내가 풍겨. 잠깐은 아주 황홀하지. 달달하다는 건 행복과 동의어 같아. 그 느낌 그대로 살고 싶어. 행복이라는 건 별게 아냐. 달달한 걸 먹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느껴지잖아. 그런 거야.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냐, 파랑새처럼 아주 내 가까이에 있어. 파랑새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명절에 시골에 갔다 왔거든. 그런데 참새 정말 많더라. 게네들은 한 마리씩 다니지 않아. 떼로 몰려다녀. 나무도 큰 나무에 앉지 않고 조그만 나무줄기에 앉더라. 이쪽 나무에서 우르르르 몰려와서 앉더니 금방 저쪽 나무로 쪼르르륵 날아가더라.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쁘던지 말이야. 조그만 참새를 보니 이제 막 돌 지난 손녀딸이 너무나 보고 싶어 지는 거야. 오물거리는 입하며 바둥거리며 걸어 다니는 모습 하며 모든 게 선명하게 떠오르는 거야. 참새들은 아마 쪼르륵 몰려다니는 시간이 쉬는 시간인가 봐. 나무에 걸터앉아 있는 시간은 수업시간일 거야. 공부를 잘하는진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교실은 꽉 찬 거 같아. 참새들이 정말 많았거든. 나도 그럴 때가 있었는데 하고 추억에 잠깐 기대고 왔어. 추억이란 기차 같아. 과거로 움직이는 기차 말이야. 너 그런 기차 봤니? 못 봤지, 실은 나도 못 봤어. 하지만 그 기차를 탔다고 상상을 하는 거야. 상상은 가능하니까, 어때, 우리 같이 추억으로 가는 기차를 타러 가볼래? 물론 추억만 먹고살 순 없어. 나도 알아. 추억은 가끔만 필요해. 다른 무언가가 필요해. 무겁거나 가볍거나 상관없지. 주변은 항상 줄줄이 사탕처럼 무언가 줄줄이 달려 나오거든. 그중에 하나만 잡아채면 되는 거야. 그것이 사탕일 수도 있고 입에 아주 쓴 사탕일 수도 있어. 어떤 것을 택하든 상관없어. 내 눈만 똑바로 뜨고 볼 수 있으면 되거든. 물론 너도 눈을 똑바로 뜨게 된다면 찾을 수 있을 거야. 시간은 많아. 걱정하지 마. 못 찾을까 봐 동동거리거나 그러진 마. 눈 앞에 아주 긴 활주로가 있어. 그 길로 걸어와. 아주 천천히 그 길을 음미하며 걸어 봐. 그러면 돼. 다른 건 생각하지 마. 그냥 앞만 보고 걸어. 그리곤 눈 앞에 펼쳐진 광활한 자연에 눈을 기울여 봐. 귀를 기울이는걸 잘못 말한 거 아니냐고? 물론 잘못 말한 건 아냐. 눈과 귀를 모두 기울여 봐. 눈으로 듣고 귀로 보면 돼. 그게 무슨 말이냐고? 반대로 생각해 봐. 항상 똑같은 생각 속에서는 다른 걸 찾을 수 없어. 늘 같은 것들만 보이거든. 생각을 바꿔 보는 게 중요해. 생각을 달리하면 다르게 보이거든. 그게 필요해. 그런 것들이 필요한 순간이 있어. 특히 네가 아닌 나를 필요로 할 때는 특히나 더 그런 관점이 필요하거든. 그렇게 주변을 살피다 보면 저쪽 한편에 서 있는 비행기가 보 일거야. 그 앞으로 걸어가 봐. 이제 비행기만 띄우면 되는데 혹시 비행기 운전할 줄은 아니? 모른다고, 하긴 나도 몰라. 비행기 운전 면허증은 없거든. 내가 생떽쥐베리는 아니거든. 생떽쥐베리는 글을 쓰기 전에 비행기 조종사였다고 하더라. 갠 재주도 많아, 그렇지, 하지만 나는 없거든. 시간도 있고 광활한 활주로도 있고 비행기도 있고 있을 건 다 있네. 이제 그 공간을 채울만한 에너지만 있으면 될 것 같아. 그러기 위해선 나 자신을 단단히 정비해야지. 물론 시행착오도 겪을 수 있지. 어느 정도 규칙을 정해놓고 그 규칙에 따라 움직이면 될 것 같아. 나 이기 이전에 자유인이니까 가능할 거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은 시간에 할 수 있으면 돼.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그냥 내 주변을 어슬렁 거리는 내가 되어 보는 거야. 지극히 평범하게 근처를 배회하면 되거든. 무계획이 계획이라는 말도 있잖아. 너무 허무 맹랑한 말인가? 그러면 어때. 생각나는 대로 하나씩 하나씩 해나가면 되지 뭐. 그러다 보면 앞뒤가 안 맞을 때도 있고 상당 부분 수정해가야 할 일도 생기겠지. 그렇다고 뒤로 가진 않아. 성격이 확 바뀌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아. 그런 건 걱정 안 해도 해. 어울리면 어울리는 대로, 어울리지 않으면 어울리지 않는 대로 나는 나답게 살면 돼. 한 숨 돌리는 시간도 필요해. 무조건 앞으로만 나간다는 생각에 매달리지 마. 그건 너무 피곤한 일이야. 피곤하면 금방 싫증이 나곤 하지. 너무 팽팽하게 조이는 건 숨이 막혀. 더러 헐렁하게 풀어주는 것도 필요해. 적절히 조절하는 스킬이 필요하지. 그리곤 그중에 하루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도 필요해 보여. 어떻게 아무것도 안 할 수가 있지? 이렇게 반문하겠지만 잊어버리는 것 또한 다른 생각을 불러올 수 있는 일이 되기도 하거든. 그럴 땐 그냥 하릴없이 밖으로 나가 바람이나 쐬러 쏘다녀 봐. 쏘다니면서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눈과 귀를 기울여 봐. 재즈에 몸을 맡겨보는 것도 추천해. 리듬에 따라 악기에 따라 다른 소리가 새어 나오는 심오한 멋을 느껴 보는 것도 좋아.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겨보는 거야. 그러다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거지. 나에게로 돌아왔다가 어느 순간 또 숨이 턱턱 막히는 그 날이 오면 다시 또 나가면 되니까 겁먹진 말고. 우리가 사는 일은 시나리오대로 흐르진 않아. 물론 각본대로 가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아. 살다 보면 난감한 일들이 닥칠 때도 많아. 그럴 땐 허심탄회하게 그걸 받아들이려고 노력해.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지. 듣기 좋은 말만 들으며 세상을 살 순 없어. 나쁜 말이 나에게 득이 될 때도 있거든. 필요악이야. 판단은 스스로 알아서 해. 어쨌든 나하고의 관계도 괜찮은 관계였으면 좋겠어. 내면을 통통하게 살 찌우고 침묵의 시간으로 다스리며 자연의 빛을 받아 자신을 키울 수 있으면 좋겠어. 많은 시간들도 내 편이 되어주길 바라. 물론 시간이 나를 기다려주진 않겠지만 적극적으로 시간을 활용해 나갈 생각이야. 실감 나게 살아갔으면 좋겠어. 지금까지 많은 말을 했지만 나도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어. 그래도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좋은 일이야. 다음에 또 편지할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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