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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 앞의 계절 Feb 19. 2021

내 친구는 CEO

  


  대학 다닐 때 유일한 내 친구는 단 한 명이었다. 그 친구 성은 약자로 M이다.  M은  광고회사 대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다. 처음엔 사장인 줄 몰랐다. 입학 마자마자 우리는 서로 나이를 들먹였다. 겉모습만 봐도 비슷한 연배 같아 보였다. 나이는 자랑이 아니다. 그렇지만 시쳇말로 민증을 까 보기로 했다. 그래야 옆에 두고 친구를 먹을 건지 말 건지 결정할 수 있다. 물론 나이로 친구가 되거나 말거나 하진 않는다. 기왕이면 또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작용했다. 그 친구는 나와 동갑이다. 키는 내가 조금 더 크다. 크다고는 했지만 거기서 거기다. 그 친구 피부는 까무잡잡하다. 까만 피부가 은근히 매력적이다. 평소에 난 까만 피부인 사람을 선호했다. 나와는  반대라서 그랬던 것 같다. 까만 피부를 가진 사람들 대부분은 피부가 탄력적이다. M도 그렇다. 게다가 언제나 활기가 넘쳐 통통 튀는 성격이다.  M은 살아 움직이는 활어 같다.

 그 친구도 나도 각자 직장생활을 하는 중이다. 그 친구는 광고 회사의 대표로 나는 월급 받는 직장인으로 위치는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사장과 사원이다. 직장 관련 이야기를 하게 되면 나와 그 친구는 늘 대립된다. 서로 상반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 친구는 오너고, 나는 월급쟁이고 당연히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사장과 사원의 생각은 같을 수가 없다. 갑과 을의 얘기는 항상 평행선이다. 절대 서로 만나 지지 않는다.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려보면 안다. 바로 눈 앞에 펼쳐져 있는 선로는 평행이다. 그러나 시야를 멀리 보낼수록 가까워지는 듯 보인다. 그런 줄 알고 다가가 보면 여전히 평행선임을 깨닫게 된다. 쉽사리 끝이 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구조 속에서 우리는 각자 학교 생활을 했다. 우리가 그래도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은 문학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어느 날, 그 친구에게 물었다. '넌 이미 한 회사의 대표인데 뭐하러 힘들게 이 공부를 해?' '갈래 머리 시절의 내 꿈이었어, 못 다 핀 꽃을 피우고 싶어서?' 이렇게 말하고 피식 웃곤 했다. 그러다 한 마디 더 보탠다. ' 회사 대표가 시인이면 더 멋지지 않니? 명함에 한 줄 더 넣을 수 있잖아' 호탕하게 깔깔깔 웃어대곤 했다. 그 친구는 아들만 둘이다. 중학교 때부터 큰 아들을 호주로 유학 보냈다. 나중에는 작은 아들마저 호주로 보냈다. 지금까지 두 아들은 그곳에서 지내고 있다. 그 애들은 친구네 집에 가서 사진으로만 봤다. 가끔 친구 핸드폰으로 보기도 했다. 학교 행사는 생각보다 많다. 돈을 내야 할 일들이 생긴다. 다른 친구들처럼 평범한 이십 대 학생이면 대충 넘어가도 될 일이다. 그러나 우린 그 나이 때가 아니다. 거기다가 직장인이다. 돈을 안 낼 수가 없다. 이럴 때 갑과 을은 역시 다르다는 걸 느낀다. 돈 내는 정도가 다르다. 예를 들면 그 친구는 몇 백만 원 내고 나는 몇십만 원 겨우 내게 된다. 역시 클래스가 다르다. 할 수 없다. 난 내가 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성의껏 낸다. 물론 그 친구도 그럴 것이다. 돈 버는 게 다르니 돈 내는 것도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그 친구에게 말을 안 했지만 민감해지곤 한다. 그렇다고 그 친구처럼 몇 백만 원을 턱 내놓을만한 상황이 아님을 나는 안다. 그런 행사가 아니라도 돈 들어갈 일은 많다. 학교 앞에는 분식집이 유난히 많다. 우리 학교 앞도 마찬가지다. 특히나 여대생들의 군것질은 유명하다. 쉬는 시간만 되면 떡볶이, 어묵, 도넛이 불티나게 팔린다. 여름엔 아이스크림으로 더위를 나곤 한다. 강의실을 떠올려보라. 학생들은 꽉 차 있고 냉방은 시원찮다. 굉장히 더웠다. 그 친구와 나는 가끔 친구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쏘거나 도넛을 쏘거나 했다. 나름대로 학교 생활의 재미였다. 문창과라 교수님들이 책을 출판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경우에도 책을 상당량? 정도 사곤 했다. 강요는 아니었다. 제자로서 역할을 하는 것뿐이었다. 선배 중에 출판사를 하는 선배가 있다. 학교 행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선배다. 그 선배는 모교에서 강의도 한다. 대부분의 교수님들은 그곳에서 책을 내곤 했다. 그 선배도 말하자면 오너다. 교수는 아니지만 강사다. 내 친구와 그 선배 사이엔 또 다른 모종의 관계가 성립된다. 나와 내 친구는 갑과 을의 관계지만 말하자면 그들은 갑과의 전쟁이다. 행사가 갈등의 원인이 된다. 그 선배를 볼 때마다 내 친구는 못마땅해했다. 그 선배는 행사 때마다 큰돈 내는 내 친구를 없는 사람처럼 취급한다. 행사 자리에서 그 선배를 볼 때마다 내 친구는 나에게 늘 그 선배 험담을 즐긴다. '글쎄, 저번에는 있잖아, 내가 돈을 얼마 내서 이 행사가 빛나게 됐다고 교수님이 학생들 있는 자리에서 말했는데도 그 선배는 나한데 일언반구 얘기도 없더라.' '지가 교수님 책을 무료로 만들어 줬다는 등 실컷 지 자랑질만 늘어놓더라' 이런 푸념을 여러 차례 들어줘야만 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했다. '갑과 을의 전쟁만 있는 줄 알았는데 갑은 또 다른 갑과의 전쟁이 있네.'' 사는 건 역시 전쟁이야' 이런 생각이 든다. 그렇게 전쟁 같은 학창 시절이 끝났다. 졸업 후에도 교수님들의 출판기념회는 이어졌다. 가끔 행사에 나가면 그 친구를 만난다. 행사가 아니라도 난 가끔 그 친구 회사에 들러 차 한잔 마시며 옛날이야기들을 나누곤 한다. 여전히 그 선배 뒷담화는 우리들의 안주거리가 되었다. 재작년 어느 날이었다.  은사님에게 톡이 왔다. 그 친구 신랑이 죽었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그 친구와 나, 그리고 은사님은 가끔 같이 만나 차 한잔을 하며 지내오고 있었다. 그 친구 신랑은 그 친구와 동갑이다. 그러니까 나하고도 동갑인 셈이다. 그런데 죽었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그럴 나이는 아닌데 이게 무슨 인가 싶었다. 은사님과 연락을 해서 같이 장례식을 가기로 했다. 장례식장 간 날짜를 기억한다. 1월 1일, 한 해를 시작하는 첫날이라 잊어버리지도 않는다. 그 날 그 장례식을 같이 가기로 하면서 은사님은 나에게 말했다. '새해 첫날 장례식장을 가면 그 해 운수 대통이래.' 이런 말을 주고받으며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그 친구 신랑은 이삼 년 전부터 암에 걸렸고 투병하다가 결국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그 신랑은 경기도에서 펜션을 운영하고 있었다. 거기까진 나도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다음이 문제였다. 펜션을 하면서 다른 여자랑 같이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신랑이 아프고 나서는 그 여자가 나 몰라라 했다는 것이다. 건강할 때는 옆에 찰싹 붙어 있다가 몸이 아프니까 떠나갔다는 것이다. '사람 사는 일이 참 그래, 그렇지?' '그러게, 참 모를 일이 사람 사이의 관계야, 그렇지?' 서로 그렇지를 연발하며 혀를 끌끌 찼다. 사업을 하는 친구였는데도 유난히 장례식장은 한산했다. 새해 첫날이라 그런가 생각보다 사람이 없었다. 은사님과 나는 한쪽 구석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밥을 꾸역꾸역 집어넣고 있었다. 그 여자는 장례식장에도 왔다 갔다고 한다. 호주에 갔던 아들 두 명이 상주였다. 그날 처음으로 그 친구 아들 얼굴을 봤다. 그 후 아들들은 다시 호주로 갔다. 엄마만 홀로 남겨둔 채. 내 친구는 지금도 열심히 산다. 회사를 운영하며 이것저것 배우러 다닌다. 그러나 그 친구 말대로 명함에 시인을 새겨 넣는 일은 달성하지 못했다. 난 등단을 했고 그 친구는 등단을 하지 않았다. 못한 건지 안 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도 열심히 시공부는 하고 있다. 언젠가 그 친구 말대로 시인이 될 것을 믿는다. 시인이 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자기만족일 뿐이다. 자기만의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것뿐이다. GOOD L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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